어깨(22)
-
물을 찾아서
2008.09.08 월요일 3교시, 우리 반은 운동회 때 단체로 할 우산 무용을 연습하려고, 준비해 온 우산을 들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그리고 다른 반들과 모여 넓게 줄을 서서 우산 무용 연습을 시작했다. 그런데 따갑던 햇볕이 점점 커지더니,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운동장에 엄청난 태양빛이 쏟아져 내렸다. 연습하던 아이들은 화살을 맞은 듯, 갈수록 찡그린 표정을 지었고, 내 목은 사막에 발을 담그듯, 천 갈래 만 갈래로 타들어갔다. 무릎을 숙일 때마다 허벅지에 있는 열기가 느껴졌고, 심지어 우리들의 살이 익는 냄새까지 나는 것 같았다. 지도 선생님께서 눈치를 채셨는지, 다른 때보다 일찍 연습을 마쳐주셨고, 아이들은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정수기가 있는 급식실로 뛰어갔다. 급식실 가는 길은 물을 마..
2008.09.09 -
끔찍한 축구 시합
2008.05.16 금요일 4교시 체육 시간, 운동장에 나가 남자는 축구, 여자는 피구시합을 하였다. 남자들은 제일 축구 잘하는 아이 2명을 주장으로 뽑고, 뽑힌 주장 2명이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자기 팀에 넣고 싶은 애를 차례대로 집어넣었다. 팀이 다 채워져 가고, 나 말고 3명이 남았다. 나는 이성환이라는 애가 주장인 팀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성환이는 나를 자기 팀에 넣어주지 않았다. 시합 시작하기 전, 아이들은 나는 수비수 할 거야! 나는 공격 미드필더 할 거야! 하면서 역할을 정하는데, 나는 뭘 해도 못하니 딱히 할 게 없어 팔짱을 낀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런데 내가 몸집이 커서 공을 잘 막을 것 같다고, 아이들이 우르르 나를 골키퍼로 몰아세웠다. 난 마음속으로는 '어어, ..
2008.05.20 -
꼴찌를 위하여
2008.05.06 화요일 5일간에 기나긴 휴일이 끝나고 다시 학교 가는 날이다. 그리고 오늘은 운동회 날이기도 하고! 무거운 책가방은 벗어던지고, 모자를 쓰고 물병만 달랑 손에 들고 가니 발걸음이 가볍다 못해, 붕 뜨는 것 같았다. 아직 교실에는 아이들만 몇몇 와있고, 선생님은 안 계셨다. 나는 김훈이라는 아이와 미국 광우병 수입 소 이야기로 한숨을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교실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선생님께서 쌩하고 들어오셔서 칠판에 '운동장으로 나가기'라고 적어놓고 다시 급하게 나가셨다. 운동장에는 벌써 많은 아이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우리는 교장 선생님 연설을 듣고, 국민 체조를 하고 본격적으로 운동회에 돌입하였다. 오늘은 소 체육대회라서 그렇게 많은 행사는 없었다. 줄다리기, 각 반에서 모..
2008.05.07 -
벚꽃입니다!
2008.04.07 월요일 간밤에 나는 악몽을 꾸었다. 그리고는 아침에 깨어나서 "휴~ 살아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야!"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오늘따라 엄마의 잔소리도 왠지 정답게 들렸다. "상우야, 입에 묻은 밥풀 뗘야지! 아구, 그건 영우 신발이잖아! 눈은 어따 둬?" 하고 외치는 엄마에게, 나는 다른 때보다 더 능글맞은 웃음을 보이며 "아이~ 해도 쨍한데 좀 봐줘요!" 하며 여유를 부렸다. 아파트 복도를 지날 때, 창가에 비치는 햇살이 이제부터 벌어질 뭔가를 알리듯, 눈부시게 파고들어 왔다. 공원 트랙을 따라 학교 머리가 보이는 언덕에 올라서니, 진짜 뭔가 벌어졌다. 지난 주말 못 본 사이 거짓말처럼 도롯가에 벚꽃이 일제히 만발했기 때문이다. 연분홍 구름처럼 복실복실 탐스러운 벚꽃 나무들이 기..
2008.04.08 -
맘모스와 호랑이 놀이
2008.03.19 수요일 2교시 쉬는 시간, 나는 우석이를 만나러 옆반 4학년 3반 교실에 들러보았다. 거기서 우석이와 잠시 놀고 나가려는데,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였던 우빈이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나를 덮쳤다. 우빈이는 양팔로 자기 어깨를 감싼 자세로 계속해서 내 어깨를 밀어붙였다. 나는 어어 밀리다가 맞서서 같이 밀어붙였다. 우리는 팔짱을 낀 상태에서 코뿔소처럼 씩씩거리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밀고 밀리다가, 우석이까지 합세하여 밀기 놀이에 열을 올렸다. 갑자기 복도를 지나가던 고학년 형아들이 우리를 보더니, 나와 우빈이에게는 "뚱뗑이!" 하고 외쳤고, 우석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뼈다귀!" 하고 외쳤다. 그 말을 들은 우석이는 화를 내며 "나 뼈다귀 아니야~! 얘들도 뚱뗑이 아니구!" 하고..
2008.03.21 -
아침
2008.03.04 화요일 4학년의 첫 아침이다. 나는 아주 당연한 일처럼, 다른 때보다도 훨씬 일찍 일어나, 아직 자고 있는 엄마를 깨워 밥 달라고 졸랐다. 엄마가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밥을 준비하시는 동안, 나는 졸음기를 이기지 못하고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잤다 깼다를 반복하였다. 집을 나선 시간은 7시 30분, 날은 흐리고 우중충했다. 게다가 공원 입구는 시커먼 구름과 안개가 깔려있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거대한 용이 엎드려 있는 것처럼 으스스한 느낌이 났다. 어제는 입었던 겨울 잠바가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땀을 많이 흘렸다. 그래서 오늘 얇은 잠바로 갈아입고 나왔더니, 이번엔 뼈가 으들들거릴 정도로 춥기만 했다. 나는 이게 학교 가는 길이 맞나? 의심이 들었다. 왜냐하면, 공원 길엔 학교 ..
2008.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