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gwooDiary.com(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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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2016.02.24 수요일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독서 기록장에 남겨야 한다는 책임감에 묶여서 감상해야 한다면, 나는 거부감이 먼저 든다. 이 영화를 보러 가는 길은 그것과 마찬가지로 나를 묶는, 그러나 훨씬 더 중요하고 깊은 무언가가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피해자가 있다. 20만 명이나... 일제시대에 강제로 끌려가 처참하게 인생을 빼앗긴 어린 소녀, 여성들의 수가 20만 명, 그중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238명, 현재 살아계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수는 44명이다. 생존해계신 할머니들은 아직 제대로 사과조차 받지 못한 채 삶의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다. 전쟁을 빌미로 소중한 몸을 파괴하고 여성의 인생을 망가트린 최악의 범죄자들에 대해 위안부 할머니들이 받은 거라고는, 범죄자들과 결탁한 정부의 일..
2016.03.29 -
해뜨기를 기다리며
2016.01.28 목요일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끝이 없는 바다를 바로 코앞에 마주하고 있으니, 모든 어지러운 생각이 해안가에 부서지는 파도 거품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날씨가 흐려 일출은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아침 7시, 내게는 방학 내내 일어나 보지 못했던 시간이건만, 여행지에 와서 일출을 볼 생각에 자연스레 눈이 깼다. 다시 누워서 더 자고 싶었다. 그러기로 했다. 뜨는 해를 보는 기대감도, 뜨는 해와 같이 부지런한 사람이 되겠다는 계획도, 모두 이불속에 묻고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진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퍼뜩 생각지도 못한 말 한마디가 오래도록 생각을 어지럽게 한다. 방학하기 얼마 전 체육시간, 1학년 아이들과 축구를 하던 날, 축구실력이 출중하고 부담스럽도록..
2016.01.30 -
세스 마틴과 함께하는 세계 민중 음악의 밤
2015.11.02 월요일 10월 31일, 그러니까 지난주 토요일 6시 우리 가족은, 신촌 체화당 카페 지하 강당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았다. 우리 가족을 초대한 사람은 음악가 세스 마틴(Seth Martin)! 그는 미국인이다. 며칠 전부터 들떠 있던 영우는 신이 나서, 친한 친구 4명과 함께 공연장에 들이닥쳤다. 세스 마틴과 그의 친구들에 노래와 연주, 성문밖 학교 학생들의 연주와 풍물놀이로 이어진 공연은 아기자기하면서도 힘이 넘쳤다. 오랜만에 본 공연도 감동적이었지만, 나는 여기서 미국인 세스 마틴을 소개하고 싶다. 그는 자신을 세스 마운틴, 한국 이름은 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자기를 '미국 바보'라고 말하며 해맑게 웃는다. 그가 사는 마을은 산이 있고 산맥이 보이며 주민들이 700명쯤 되는 아주 ..
2015.11.02 -
가장 점잖은 지옥 <힐>
2015.07.20 월요일 지난달 말, 라페스타로 이사 한 출판사 에 엄마와 방문한 적이 있었다. 지난번 사무실도 백석역 앞이라 자주 들러봐야지 하면서도 그렇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고, 오랜만에 안병률 대표님과 김남순 실장님이 뵙고 싶었다. 마침 2쇄가 나왔으며, 김남순 실장님께서 처음 출간하신 장편소설 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북인더갭이 있는 오피스텔 건물 6층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똭~ 내리니, 나는 순간 멈칫했던 기억이 난다. 겉보기에 틈이 없이 꽉 막힌 시멘트 기둥 같았던 오피스텔은, 복도 가운데에 구멍이 뻥 뚫려 있어 천장부터 옥상, 아래로는 1층 복도까지 전부 볼 수 있었다. 한눈에 담기에는 너무 커서 웅장함과 위압감이 느껴졌는데, 단순히 뚫린..
2015.07.20 -
세월호 1주기
2015.04.16 목요일 날씨가 맑아질 것 같지가 않다. 운동장에 모래가 하늘로 모두 옮겨 심어진 것 마냥, 하늘빛이 뿌연 황토색이다. 사막의 모래바람 같은 흑색의 하늘... 한줌의 습기도 없을 것 같은 하늘에서는 습하고 무거운 비가 내린다. 주룩주룩 서럽게 울다가 지치면, 쉬었다가 다시 우는 것처럼 하늘에서는 죽은 아이들의 눈물이 비가 되어 흐른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1년째 되는 날, 국가원수는 해외로 내뺐다. 정부는 추악한 발톱으로 유가족의 상처를 헐뜯기에 바빴고, 그의 하수인 언론과 방송은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의 울음을, 돈을 더 받아내겠다는 욕심으로 매도하는 여론을 조성하기에만 혈안이다. 검찰도 이에 미쳐 날뛴다. 이건 소설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다. 1년이 지났지만, 아직..
2015.04.16 -
비둘기
2015.03.28 토요일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열린 책들' 출판사 최인훈의 '광장'처럼 교과서에서 배우는 소설부터, 할머니의 피난 경험담까지, 현대사회에서 전쟁이 낳은 참상을 아는 방법은 아주 많다. 이 책은 좀 다르다. 전쟁의 참상을 직접 언급한 부분은 단 한 구절도 없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전쟁이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망치는지 알 수가 있으므로. 하지만, 주인공 '조나단 노엘'이 신체적인 장애가 있거나 정신병이 있는 것도 아니다.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셋방살이 집세를 한 번도 밀린 적이 없고, 지각이나 결근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성실한 은행 경비원이며 친절한 이웃이다. 적은 봉급이지만, 30년 동안 단칸방에 살면서 검소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에게는 나름의 여윳돈이 있다. 그런데도 그는..
2015.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