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22. 21:09ㆍ독서
<비둘기>
2015.03.28 토요일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열린 책들' 출판사
최인훈의 '광장'처럼 교과서에서 배우는 소설부터, 할머니의 피난 경험담까지, 현대사회에서 전쟁이 낳은 참상을 아는 방법은 아주 많다.
이 책은 좀 다르다. 전쟁의 참상을 직접 언급한 부분은 단 한 구절도 없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전쟁이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망치는지 알 수가 있으므로. 하지만, 주인공 '조나단 노엘'이 신체적인 장애가 있거나 정신병이 있는 것도 아니다.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셋방살이 집세를 한 번도 밀린 적이 없고, 지각이나 결근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성실한 은행 경비원이며 친절한 이웃이다. 적은 봉급이지만, 30년 동안 단칸방에 살면서 검소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에게는 나름의 여윳돈이 있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낡아빠진 단칸방에 살면서 빵과 치즈, 정어리 통조림 외에는 먹질 않고, 코딱지만 한 방을 깨끗이 꾸미는 것 외에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지 않는다. 이 부분을 읽을 때만 해도 사실 나는 그가 존경스러웠다. 나는 당장 주중에 5일을 다 빠지지 않고 야자를 하는 것도 제대로 못 하는데,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일관적으로 성실하고 검소할 수 있는가!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수수께끼가 풀린다.
그가 단칸방에 사는 이유, 변화라고는 없는 쳇바퀴 같은 생활을 계속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검소해서가 아니다. 돈을 모아서 이루고 싶은 커다란 소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그렇게 살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어서 항상 두려움에 쩔어 있다. 매일매일 성실해 보이는 그의 모습은, 똑같은 하루를 연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조용한 투쟁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가령 내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이지, 공부를 안 하면 살 수가 없어서가 아니다. 아니 가끔은 '공부가 재미있어서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사람은 공부에서 재미를 느끼고 보람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찾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불쌍한 주인공 조나단 노엘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녕 숨 쉴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쟁으로 없어진 어머니와 아버지, 총상과 이질의 고통에도 고분고분했던 군 복무 시절의 기억, 다른 무엇보다 그저 평화로운 생활을 위해서 결혼한 아내가 1년도 되지 않아 자기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떠났던 일... 그가 어리고 젊었을 적, 그가 살았던 모든 순간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마을을 떠나 그를 머나먼 파리의 작고 어두운 7층 단칸방에 몰아넣었고, '사람들을 절대로 믿으면 안되고, 그들을 멀리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신념처럼 그의 가장 작은 세포 조각에 하나하나 새겼다.
어린 시절 참혹한 기억은 내일, 미래와 같은 것들을 꿈 꾸는 대신, 나이 오십이 넘도록 유일한 단칸방에서의 평화에만 집착하게 만든다. 그는 닫혀 있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다시 사람들 속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어느 전쟁보다 치열한 줄다리기가 계속된다. 그가 고통 받은 순간들의 기억이 그를 무너뜨리려고 하면, 그의 성실하고도 매일 같은 규격으로 정해져 있는 하루 일과가 그를 일으켜 세운다. 하지만 아무리 준비를 열심히 해도 우리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에 의해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그도 그렇다.
세상과 사람들과 심지어 자기의 자아까지도 바라보지 않고 문을 닫고 살아가던, 완벽히 닫혀 있던 삶에 그가 예상할 수 없는 변수가 들어오고 만다. 비둘기 한 마리! 그것이 전부다. 그게 이 책에서 나오는 사건의 처음이자 끝이다. 비둘기 한 마리가 그의 오래된 아파트 복도에 앉아 있다. 그것도 늘상 그랬던 것처럼 아침 일찍 사람들이 깨어나지 않는 틈을 타, 공중 변소에 가려고 문을 열었을 때 마주친 섬뜩한(?) 비둘기! 그는 죽을 만큼 놀라며 그의 평화는 산산이 부서진다.
난 사람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는 그 사람이 자라온 환경이 9할의 영향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전쟁이 그를 만들었다. 그를 버린 부모가, 아내가 그를 만들었다. 그에게 무슨 책임이 있는가? 어떤 책이든 주인공에 감정 이입은 되지만, 비둘기의 주인공 노엘은 감정 이입보다는 모성애를 불러일으킨다. 그의 옆에 있어주고 싶다. 그를 안아주고 싶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그를 그렇게 대해줬다면 그는 이렇듯, 눈과 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마저 멀어 버린 기형아가 되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자, 우리의 불쌍한 조나단 노엘은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