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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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핸드폰
도둑맞은 핸드폰 2011.03.16 수요일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 날씨는 맑은데 꽃샘추위 바람이 살을 엔다. 나는 마음이 천근만근 무겁기만 하다. 마음속은 바짝바짝 타고 있고, 하늘은 무심하게도 이런 날을 골라 맑은 햇빛을 온 세상에 비춘다. 대문 앞에서 열쇠를 꽂아넣은 손이 덜덜 떨린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온몸이 으슬으슬 떨리면서 오금이 저린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범수와 동영이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교문 앞이 보이는 언덕길을 오르고 있을 때였다. 나는 학교에 가져왔던 핸드폰에 다시 전원을 켜려고, 잠바 주머니 안에 손을 넣었다. 원래 우리 학교에선 핸드폰 사용 금지를 규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을 보니 핸드폰을 안 가지고 다니는 애는 드물었다. 학교 수업 시간엔 전원을 ..
2011.03.18 -
닿을 수 없었던 경기장
2010.12.05 일요일 나는 아침부터 너무나 들떠 있었다. 그리고 "아빠! 오늘 약속했잖아요!" 하며 아직 주무시는 아빠를 흔들어 깨웠다. 머릿속에서는 오직 하나의 생각뿐이었다. 바로 태어나 처음으로 축구 경기장에서 축구 경기를 직접 생생하게 본다는 사실을! 그것도 챔피언 결정전 마지막 경기를! 며칠 전 내 동생 영우는, 기특하게도 친구에게서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리는 K리그(우리나라 프로축구 리그)의 챔피언 결정전을 볼 수 있는 표를 얻어왔다. 그것은 어린이 무료권과 어른 50% 할인권이었다. 그런데 어린이는 1명만 무료라서, 나는 아쉽게도 나만 입장료를 내야 한다고 밥 먹다가 투덜거렸는데, 할아버지께서 입장료를 만 원 주시면서 다녀오라고 하셨다. 영우와 나는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에 빠져..
2010.12.08 -
친구 집에서 잠들기는 어려워!
2010.12.03 금요일 어제 난 처음으로 외박하였다. 기말고사도 끝났으니 우리 반 지호네 집에서 자고 오겠다고 했는데, 엄마는 안된다고 그러셨고 아빠는 된다고 그러셨다. 내가 지호네 집에서 잔다고 하니까 은철이도 엄마한테 허락을 받아서, 우리는 셋이 같이 자게 되어 뛸 듯이 기뻤다. 지호와 은철이는 학교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한정거장 거리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 산다. 지호네 집에서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영화를 보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지호집의 수많은 카드를 모아서 카드 게임을 하고, 지호네 엄마가 정성스럽게 차려주신 저녁을 먹는 시간은 꼭 빠르게 흐르는 강물처럼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어느새 창밖이 진한 블랙커피 색깔처럼 어두워지고, 우리는 마루에 깔린 이부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2010.12.04 -
내가 생각하는 좋은 가정
2010.11.24 수요일 오늘 선생님께서 내주신 일기 주제는 이다. 나는 언뜻 내가 생각하는 좋은 가정의 모습을 떠올렸을 때, 우리 가정이 그 예가 아닐까? 생각했다. 뭐 특별히 내세울 건 없지만, 가족 모두 살아 있고, 팔다리는 멀쩡하고, 부모님은 이혼하지 않았고, 이 정도면 완벽한 가정의 모습이 아닐까? 사실 뭘 더 바라는가? 우리 주변의 많은 가정은 심하게 아픈 사람이 있어서 슬픔과 피로에 잠겨 있거나, 가족끼리 사이가 안 좋아서 불행하다고 느끼고, 심지어는 불의의 사고로 가족과 이별하기도 하고, 부모님께서 이혼을 해서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일도 많은데... 그에 비해 제대로 된 가정이라도 가지고 있는 우리는 복 받은 것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곰곰 더 생각해보니 그냥 가정이 온전한 틀만 가지고..
2010.11.27 -
아빠와 함께 도서관에서 공부를!
2010.08.18 수요일 오늘은 아빠와 같이 저녁때 종로 도서관에 가서 공부했다. 오늘은 어린이 도서관이 아니라,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즐겨 찾는 거대한 종로 도서관이다. 사직공원 계단을 높이 올라가면, 보라색인데 어두침침한 보라색이라서 조금 갑갑해 보이는 건물이 나온다. 그 건물의 옆면 창가와 벽에는 담쟁이 덩굴이 살짝살짝 초록색으로 덮여 있고, 군데군데 낡아서 금도 조금 가 있었다. 도서관 입구에는 금색의 조금 벗겨진 쇠붙이로 이라고 글자가 크게 박혀있다. 아빠랑 나는 아빠의 손가방에 공부할 것들을 잔뜩 넣어서 함께 출발했다. 가파른 계단들을 올라오니, 종로도서관의 입구가 하마처럼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종로도서관을 흐린 날 멀리서 봐왔기 때문에, 무시무시한 고성 같은 느낌이었는데, 입구를 들어서..
2010.08.25 -
자장면 한 그릇
2010.07.03 토요일 오늘은 우리 동네 아파트 입구에 있는 자장면 집이,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여는 날이다. 그래서 그 기념으로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자장면을 한 그릇에 천 원에 파는 행사를 했다. 우리 가족은 자전거를 타고 자장면 집에 도착했다. 예상은 했었지만, 사람이 미어터지도록 많았다. 마침 비 온 뒤 날이 개자, 아파트의 모든 가족이 자장면을 먹으러 나온 듯, 쭉 이어진 줄은 세상 끝까지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겨우 마지막 줄에 껴서 턱걸이로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기말고사 후유증 탓인지 늦잠을 자버렸다. 그래서 늦게 일어나서 허둥지둥 학교 가느라 아침을 못 먹었고, 토요일이라 급식도 안 나왔다. 지금은 오후 1시 30분! 서서히 배가 졸이듯 고파왔다. 난 처음에 참..
2010.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