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30. 17:06ㆍ일기
<해뜨기를 기다리며>
2016.01.28 목요일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끝이 없는 바다를 바로 코앞에 마주하고 있으니, 모든 어지러운 생각이 해안가에 부서지는 파도 거품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날씨가 흐려 일출은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아침 7시, 내게는 방학 내내 일어나 보지 못했던 시간이건만, 여행지에 와서 일출을 볼 생각에 자연스레 눈이 깼다.
다시 누워서 더 자고 싶었다. 그러기로 했다. 뜨는 해를 보는 기대감도, 뜨는 해와 같이 부지런한 사람이 되겠다는 계획도, 모두 이불속에 묻고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진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퍼뜩 생각지도 못한 말 한마디가 오래도록 생각을 어지럽게 한다. 방학하기 얼마 전 체육시간, 1학년 아이들과 축구를 하던 날, 축구실력이 출중하고 부담스럽도록 열심히 뛰었던 어떤 1학년 아이가, 공을 쫓다가 지쳐 잠깐 앉아있는 친구에게 말했다. "그게 니 전부야?"
"응? 갑자기 무슨 소리야?", "발 한번 쭉 뻗고 그걸로 끝이냐고! 그게 니 전부야?" 크게 소리 지르지 않으면서 절제된 말투가 청춘 드라마 대본을 읽는 것 같았지만, 이 말을 바로 옆에서 들은 나는 뭔가에 관통된 것만 같았다. 정말 최선을 다했는가? 이 질문이 계속해서 가슴을 옥죄였다.
물론 저 질문은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옭아맬 때 주로 쓰이는 말이기도 하지만, 나는 부끄러울 정도로 게으르다. 일 년에 한번 오기 힘든 여행의 아침에, 단지 몸이 편해서 일출을 멀리하고 이부자리 속에 몸을 파묻는 게 아닌가. 그때 그 1학년 아이의 말이 또 떠올랐다. "그게 니 전부야?"
부끄러웠다. 새 마음으로 온 여행지에서 안락함의 노예가 되고 있다니. 일출을 보고 싶다는 기대감보다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에 쫓기듯 방문을 나섰다. 항상 한걸음이 힘들다. 숙소 문밖으로 나오자마자 선뜻 차가운 공기에 온몸이 깨어났다. 7시 20분, 겨울의 게으른 해가 아직 뜨지 않은 시간, 숙소부터 해안으로 가는 발걸음은 초조했다.
혹시 일출을 놓쳤으면 어쩌나, 이불속에서 뒹굴거리느라 인생의 귀중한 경험을 놓친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 다행히 주변엔 온통 반가운 어스름이 깔려 있었고, 저 멀리 수평선 끝만 조금씩 붉은빛이 감돌고 있었다. 한참 해안가에서 갈매기를 쫓다가 오랜 시간에 걸쳐 구름 사이로 뜨는 해를 보았다. 바다에 잠겼다가 떠오르는 것 같은 장엄한 광경은 절대 아니었다. 그저 해는 반짝하고 빼꼼하게 떴지만,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았고 오랜만에 본 아침해가 반갑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