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16. 17:25ㆍ일기
<화장실에서 도시락 먹기>
2015.03.09 월요일
어제와는 다르게 엄청난 꽃샘추위가 살을 파고드는 월요일이다. 1학년 때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2학년 들어 큰맘 먹고 신청한 방과 후 야간자습의 첫날이기도 하다.
학교 후문에서 전해 받은 엄마의 도시락을 안고 면학실로 들어가려는데, 대청소 한다고 나가란다. 그러면 면학실에서 나가 도시락을 먹어야 하는데 참 난감했다.
야간자습 전의 석식 신청을 제때 하지 못하여, 내가 유일하게 있을 곳인 면학실을 뺏겨버린 셈이라 막막했다. 날은 어두워지고 학생들은 전부 환하게 불 켜진 교실을 찾아 석식을 먹으러 삼삼오오 모여가는데, 나 혼자 불 꺼진 복도와 계단을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며 한 바퀴를 돌고 있다.
벌써 지겹고 지나온 사람들을 또 마주친다. 그냥 집에 갈까? 몸이 아프신데 방금 막 도시락을 전해 준 엄마를 생각하면 못할 일이지! 대충 사람이 없는 곳, 아무 데나 찾아서 엉덩이나 붙이고 있어야지... 어느덧 계단을 올라 신관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걷고 있었다. 불 꺼진 복도를 걷는 건, 학생 경력이 11년 차인데도 익숙하지 못한 것 같다. 점점 컴컴해지는 복도가 어두운 밤바다의 파도처럼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어두운 파도에 떠밀려 마냥 돌아다니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처음 보는 신관 화장실에 들어가 보았다. 여기 불 꺼진 화장실이라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혼자 있을 수 있겠다. 어두운 화장실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은 창문 밖으로 비치는 달빛을 받아 음울해 보였다. 무언가 혼자서 하는 것이라면 도가 텄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불 꺼진 화장실에서 저녁 먹을 것을 생각하니 참...
거울 속에 나를 보며 씩~ 웃어주었다. 그마저도 처량해서 보기 싫었다. '후ㅇ의이이~ ㅍ ㅡ ㅣ이이~' 야자수업 3교시까지 마치면 밤 9시, 체육관 다녀오면 11시 반, 집에 들어와 대충 짐 풀고 가방 싸고 자고 다시 일어나면 학교다. 이런 2학년 생활이 시작되면서 내 상상력도 잠들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이상한 소리가 지금 내 머리 위를 감싸듯이 들렸다. 그리고 소리와 동시에 이번에는 화장실에 모든 조명이 다 켜졌다.
뜬금없이 시작했던 이상한 소리도 점점 알아들을 수 있는 가락으로 바뀌었다. 휘파람 소리처럼 아주 기분 좋은 단소 소리가 '엄마가 섬 그늘에~ 구울 따러 가면~' 하는 익숙한 멜로디를 불어주었다. 사람이 들어올 때 자동으로 켜지게 되어 있는 음악과 조명인 걸 알아챘는데, 그전 상황이 비참해서 잠시 동안은 '나를 위해 켜진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더 처량하지 않다. 화장실이라기에는 조명도 카페처럼 옅은 주황빛으로 고급스러웠다.
화장실벽에는 피카소의 그림과 몇몇 화가들의 그림이 걸려 있구나.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된 화장실이라 냄새도 안 나고, 분위기도 좋고... 첫번째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 누가 들어올까 봐 신경이 많이 쓰였다. 저벅저벅~ 발소리 하나가 크게 화장실 쪽으로 다가오더니 다시 멀어져갔다. 눈알은 화장실 문쪽을 계속 노려보면서, 손은 젓가락질하며 김밥을 연거푸 입으로 쑤셔 넣느라 숨쉬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만약 다음번에, 그 누군가 혼자 밥 먹을 장소를 물어본다면 망설이지 않고 신관 2층 화장실을 추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