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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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 희망
2009.11.09 월요일 우리 반은 지난주, 말하기 듣기 쓰기 시간에 이란 시를 공부했다. 이 시의 내용은 이렇다. 아버지가 문 짜는 공장 직공인 주인공은, 사회시간에 장래 희망을 발표한다. 나도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아 문 짜는 기술자가 희망이라고. 그러자 반 아이들이 그게 무슨 희망이냐고 모두 비웃는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앞뒤 생각 없이 대통령, 국회의원, 의사, 변호사 하는 것보다 백배, 천배 나은 꿈이라며 칭찬하시고, 주인공은 그제야 어깨를 편다는 내용의 시다. 그리고 숙제로 똑같은 제목의 시를 써서 오늘 발표하기로 했다. 드디어 선생님께서 "90쪽 펴기 전에 지난번에 했던 숙제 89쪽 펴보세요! 자아~ 9번!" 하셨다. 마침 내가 딱 걸렸다. 나는 내가 공들여 쓴 장래 희망이란 시를 더듬더듬 ..
2009.11.10 -
주사 맞는 친구
2009.10.14 수요일 학교 끝나고 친한 친구 석희가, 상가에 있는 소아과에 독감 예방 주사를 맞으러 간다고 했다. 석희가 "상우야, 어차피 집에 가는 길인데 나랑 병원에 같이 가주면 안될까?"해서, 나는 흔쾌히 함께 갔다. 병원 문을 들어서니 석희 할아버지께서 미리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석희는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나, 주사 맞기 싫은데, 꼭 맞아야 돼?" 하며, 할아버지 무릎에 덥석 올라앉아, 어린아이처럼 어깨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난 그걸 보고 흐훗~ 웃음이 쏟아졌다. 대기실 소파에 앉아 석희에게 "주사가 무섭지는 않니?"하고 물었다. 그러자 석희는 할아버지 앞에서 아기처럼 촐랑대던 목소리와는 다르게, 원래 굵은 목소리로 돌아와 당차게, "내가 아기도 아니고, 왜 주..
2009.10.15 -
은지와의 대화
2009.08.16 일요일 우리 가족은 아빠 친구, 동규 아저씨 가족을 만나, 중국 요리집으로 들어갔다. 동규 아저씨가 우리가 대구에 온 기념으로 맛난 것을 사주셨다. 우리는 신이 나서 떠들며 가족석으로 줄줄이 들어갔다. 나는 영우와 나란히 앉고, 나랑 나이가 같은 친구 은지와, 은지 동생 민재는 맞은 편에 앉아 자리를 잡았다. 낮에는 할아버지 생신이라 한식을 배불리 먹었는데, 저녁엔 중국 음식이라~ '이거 오늘 땡 잡았군!' 하면서 팔보채, 탕수육, 자장면을 쩌접쩌접 먹었다. 그중 자장면이 제일 맛있어서, 나는 후루룩~ 씹지도 않고 넘겼다. 엄마가 나와 은지에게 자꾸 대화를 나눠보라고 하셨지만, 우린 그럴 때마다 안녕? 응~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영우는 마주 앉은 민재에게 툭툭 장난을 치며 먹었고, ..
2009.08.19 -
내년에 만나자 물로켓!
2009.04.07 화요일 오늘은 드디어 물로켓 발사하는 날! 3교시가 되자 나는, 며칠 동안 내 머릿속에서 함께 했던 상상 속의 조종사 한 명과 마지막 화이팅을 외치며, 기대에 들떠서 교실 밖으로 나왔다. 지난주 토요일은 과학 행사의 날로 온종일 물로켓을 만들었고, 월요일인 어제 운동장에서 발사하려 했는데, 펌프에 이상이 생겨서 오늘로 미루어진 것이다. 4학년까지는 글짓기를 선택하여 써냈는데, 이번에는 글짓기 종목이 사라져서 처음으로 물로켓 발사에 도전해 보았다. 나는 처음이라 익숙하지 않아서, 어떻게 하면 잘 만들 수 있을까? 잘 날게 할 수 있을까? 밤 늦게까지 아빠랑 설명서를 보고 연구하고, 인터넷을 뒤지며 고민했었다. 그러면서 왠지 신이 났다. 우리 반은 물로켓 발사하는 모습이 가장 잘 보이는 ..
2009.04.08 -
어지러운 지하 세계
2008.12.25 목요일 저녁 6시, 엄마랑 나랑 영우는 명동 지하상가 입구에서, 엉덩이에 불을 붙여 튕겨나가듯 차에서 내렸다. 외할머니와 6시에 롯데 백화점 정문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거의 다 와서 차가 꽉 막혀 옴싹달싹 못하길래, 내려서 걸어가기로 한 것이다. 우리 맞은 편에는 건물 벽 전체가 거대한 반짝이 전구로 뒤덮여, 물결처럼 빛을 내는 롯데 백화점이 서 있었다. 백화점 주변의 나무들에도 전구를 휘감아. 엄청난 반짝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백화점은 가까운 거리였지만, 도로를 꽉 메운 차들과,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이 없어서 잡힐 듯 말듯 멀어 보였다. 우리 뒤에도 역시 번쩍거리는 상가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앞으로 포장마차가 마치 이순신의 일자진처럼 모락모락 김을 뿜으며, 끝도 없이 늘어서 ..
2008.12.27 -
뚱뚱이는 나만 있는 게 아냐!
2008.11.06 목요일 오늘은 방과 후 열리는 힘찬이 교실에, 처음으로 들어간 날이다. 나는 집에 들러 가방을 내려놓고, 줄넘기를 들고 다시 학교 보건실로 달려갔다. 보건실에는 나보다 먼저 힘찬이 교실에 다니던 친한 친구 경훈이가 와 있었다. 선생님께서 지난주 체지방 측정할 때 내주신, 식사 습관 적어오기 숙제를 검사하시고 나서 "자, 모두 강당으로 가자!" 하셨다. 나는 볼이 포동포동하고 배가 불룩한, 나와 닮은 모양의 아이들과 함께 이동하며, 잔뜩 긴장이 되었다. 나는 마음이 들떠서 큰소리로 경훈이에게 "지금 우리 뭐하러 가는 거야?"하고 물었다. 경훈이는 "쉿! 지금은 조용히 해야 해. 그리고 우리는 지금 강당에 음악 줄넘기하러 가는 거야!"했다. 강당에 도착하자 보건 선생님께서 새로 온 아이들..
2008.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