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2008. 5. 4. 09:39일기

<고향>
2008.04.30 수요일

우리 가족은 저녁때 전에 살던 동네 할인점에 들렀다. 물건을 사고 나서 돌아오는 길옆에,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살던 아파트와 공원이 보였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울컥하면서 폭포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손을 뻗으면 가 닿을 것 같은 집인데, 이제 다시는 갈 수가 없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내가 눈물과 콧물이 범벅 되어 숨을 헐떡거리자, 엄마, 아빠는 깜짝 놀라서 공원 한옆에 차를 세우셨다.

나는 차에서 내려 내가 살던 집 5층을 하염없이 올려다보았다. 5층에 있는 우리 옛집 창문에서 보석처럼 불빛이 흘러나왔다. 내가 3살 때 처음 이사 와 8년 동안 살았던 집,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작고 낡고 담벼락 여기저기 구정물 같은 때가 번져 있지만, 그 집은 어둠 속에서 하얀 대리석 궁전처럼 빛나는 나의 정든 집이었다.

이사하는 날, 조금이라도 더 있으려고 침대 위에서 악착같이 누워 일어나지 않으려고 했던 나 때문에 가족들은 애를 먹었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이사 가고 전학 가는 친구들을 보며 섭섭해했으면서, 정작 왜 나는 이사 갈 거란 생각을 못했을까?

씁쓸한 기분으로 발길을 돌려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트랙을 돌았고, 약수터 앞에 모여 배드민턴을 치고, 줄넘기를 하였다. 눈을 감고도 모든 게 똑같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약수터에서 물 한 바가지를 떠 벌컥벌컥 마시고 공원 트랙 오르막길을 올라가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느티나무, 푸른 곰과 만났다. 나는 두 손을 높이 들어 깃발처럼 흔들며 푸른 곰에게 다가갈 때,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푸른 곰도 나를 알아보고 바람결에 출렁출렁 이파리를 흔들어 주는 것 같았다. 영우랑 나는 푸른 곰을 붙들고 엉엉 울었다. 아빠 엄마도 우리를 말리지 못하셨다. 한참을 울고 나니, 내 마음속에 내가 항상 상상했던 푸른 곰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울렸다.

'상우야, 울지마~ 난 언제나 이 공원을 지키고 있을게. 넌 더 큰 세상을 지키는 나무가 되어야 해~! 그리구 넌 인생의 10분에 1밖에 안 살았어. 나머지 9를 멋지게 채워야, 네 어린 시절의 고향도 영원하게 남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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