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낭콩 심는 날

2008. 4. 23. 09:39일기

<강낭콩 심는 날>
2008.04.22 화요일

오늘은 선생님께서 우리가 준비해 온 페트병에, 며칠 동안 불려놓았던 강낭콩 씨를 심어주시는 날이다. 나는 아빠와 함께 페트병 입구를 똑바로 잘라 주둥이를 천으로 둘둘 막고, 거꾸로 세워서 깔때기처럼 깐 다음 그 안에 부드러운 흙을 담아왔다. 그 흙을 아기가 덮을 이불이라 생각하며!

 2교시 쉬는 시간에 선생님께서 강낭콩에 대해 말씀하실 때, 나는 강낭콩 씨 심는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목이 빠져라, 선생님을 우러러보았다. "강낭콩은 높은 온도에서 잘 자라요. 35도쯤에서 잘 큰다고 하죠."

그리고 3교시 쉬는 시간에 선생님께서는 차례대로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 페트병에 물을 받아오라고 하셨다. "수돗물을 틀고 받으면 물이 막 튀겠죠? 그러니까 두 손을 모아서 이렇게 받아 병에 담으세요." 선생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물을 받았다.

두 손을 모아 받은 물을 병에 쏟아부으니, 처음엔 깔때기에 담긴 흙이 부글부글 진흙 물처럼 일어났다. 그러다가 물이 천으로 감싼 주둥이 밑으로 줄줄 빠지면서 병 아래에 물이 찼다. 나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안고 교실로 돌아와 교탁 위에 올려놓았다.

5교시 수학 시간에 우리가 각도기로 도형을 재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 페트병들을 일일이 교실 창가에 올려놓고, 모종삽으로 흙을 골고루 일궈 씨를 촘촘히 심으셨다. 나는 멀리서 선생님이 씨 심는 모습을 바라보며 내건 심으셨을까? 씨를 몇 개나 넣어주셨을까? 궁금해하며, 목을 쭉 빼고 기웃거렸다.

선생님께서 씨를 심고, 흙을 다독다독하고 컵으로 물까지 부어주실 때, 나는 그 흙에 묻힌 강낭콩 씨가, 꼭 나인 것처럼 뿌듯하고 만족스러워서 헤헤 웃으며 각도기를 재다가, 수학 책에 나도 모르게 답 대신 강낭콩 씨를 그려넣은 걸 보고 지우개로 박박 지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