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발을 씻으며

2008. 5. 13. 08:26일기

<아버지 발을 씻으며>
2008.05.11 일요일

학교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노고를 덜어 드리라는 뜻으로 부모님의 발 씻기 숙제를 내주었다. 나는 목욕탕에 있는 세숫대야 중에 제일 큰 대야를 골라 샤워기로 한번 씻어내었다. 그런 다음 다시 샤워기를 틀어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았다.

물 온도가 아빠 발에 맞을지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아빠는 적당하다고 하셨다. 아빠는 발을 내밀기가 부끄러운 듯 머뭇머뭇 하시다가, 바지를 걷고 대야에 발을 담그셨다.

나는 비누에 물을 묻혀 손바닥에 칠하고, 박박 문질러 뽀글뽀글 거품을 내었다. 그리고 크림 같은 거품이 잔뜩 묻은 손을 아빠 발에 꼼꼼히 문질렀다. 마치 내 손이 붓이 되어 페인트칠을 하는 기분으로 부드럽게 아빠 발을 닦았다.

특히 무좀이 심해서 고생하셨다는 발가락 사이사이를 더 신경 써서 닦아 드렸다. 그리고 손으로 대야에 잔물결을 일으키며 아빠 발을 뽀드득뽀드득 헹구어 내고, 그 물을 변기에 버렸다.

다시 새 물을 조금 받아 아빠 발을 찰랑찰랑 헹구어 드렸다. 아빠는 내가 발을 씻겨 드리는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어색하지만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셨다. 다 씻겨 드리고 나니, 아빠 발이 방금 구워 낸 따끈따끈한 도자기처럼, 김이 모락모락 났다.

아빠 발을 씻으며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평소에 아빠가 내 발을 씻겨주실 때, 마음이 어땠는가를! 아빠 발을 씻으며, 이상하게 나는 내가 아빠가 된 기분이었다. 그건 묘하게도 아빠의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된 듯한 기분이기도 했다.

항상 나를 걱정하고, 나와 같이 있고 싶어하며, 나를 언제나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빠의 발을 수건으로 문지르지 않고, 아빠가 내게 해주셨듯이 톡톡 두드리며 말려주었다. 그리고 나자 아빠는 씩 웃으시며 당연하다는 듯, 다시 내 발을 씻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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