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24. 22:29ㆍ영화
<내 가슴에 떨어진 영화, 변호인>
2013.12.23 월요일
노무현 대통령께서 살아계셨을 때는, 내가 초등학생이라 어려서 그분을 잘 몰랐다. 그저 어른들 대화를 통해 흘려 들은, 너무나 인간적인, 소탈한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아, 그리고 그분은 어른들 술자리에서 욕도 많이 먹었던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나는 그때 태어나서 아빠가 서럽게 우는 것을 처음 보았다. 아기 때 내가 폐렴에 걸려 응급실에서 죽었다 살아났을 때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아빠가, 두루마리 휴지 한통을 다 쓸 정도로 슬퍼했던 대통령의 죽음이었다.
나는 그 죽음의 이유가 너무 어이없음에 분노했고, 한나라의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 서서히 눈을 뜨게 되었다. 서민 출신이고, 진정으로 국민을 사랑했던 민주적인 대통령을 받아들이지 못할만큼, 이나라의 정치 역사는 개판이었다. 나는 화가 났지만, 두려웠다. 기득권의 더러운 정치를 불신하게 되었고, 알면 알수록 정치에 관심을 두려 하지 않았다. 아니, 피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원래 사람이 모여사는 세상은 정치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법인데, 중요한 것에 무심해지니, 팥 없는 붕어빵처럼 무기력하고 이기적이고, 우울한 사춘기를 보내게 되었다. 내 또래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런 것처럼... 나는 지금도 정치판이 정말 싫다. 어떤 특정한 정치인이나 정당이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국민을 위한다고 하면서 서로 자기의 잇속만을 위하여 죽도록 싸우고 치고 받는 모습이 혐오스럽기 때문이다.
정치란 국민의 삶이 질적으로 양적으로 나아지도록 법과 제도를 끊임없이 정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치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는 정부에서, 또는 국회에서, 법원에서 하는 일들이 과연 그런가? 현재 2013년, 국민들의 삶이 보다 나아졌으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노무현 대통령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변호인>도 정치적 성향이 강할 것만 같아서, 처음 개봉한다고 했을 때 걱정부터 했다. 혹시 정치적인 이유로 영화 <천안함>처럼 상영 조기중단 당하는 건 아닐까? 정말로 영화 내용은 왜곡됨 없이 진실만을 담았을까? 하는 생각에 말이다.
오늘 학교 체험학습으로 피카디리 영화관에 갔을 때, 볼 수 있는 영화의 종류는 2가지였다. <변호인>과 <토르2>! 거의 모든 학생들이 변호인을 선택했고, 선생님들도 앞다투어 변호인에 줄 섰다. 드디어 영화의 막이 오르고, 뭐하러 그런 걱정을 하였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화면 속의 젊은 변호사 노무현에 푹 빠져 들었다. 정치적인 것은 생각할 수 없고 다만, 인간으로써 꼭 지켜져야 할 권리를 지키는 것, 그것만이 손끝에서 땀을 쥐게 만들었다. 이 영화를 보고 누가 감히 좌파 성향의 영화라고 할 수 있으랴?
영화를 다 보고 나왔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돼지국밥이 먹고 싶다!'였다. 그다음으로 꽉 차오는 생각은 노무현 대통령은 정말로 존경받을만 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젊은 노무현은 인권을 땅에 내팽개치는 정부와, 그런 정부 비위에 맞춰 자기들 잇속을 채우려는 부패한 법원 때문에, 젊은 학생들의 인권과 존엄성이 유린 당하는 것을 묵인하지 않은 참된 인간이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건, 내가 혹시 그동안 노무현의 길을 외면하고 살지 않았는가? 하는 자책감이었다.
자신의 부른 배와 따신 등을 위해, 더러운 정부의 만행을 눈 감고 나와는 상관 없다고 위로하며 귀를 막고, 절규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무시하는 인간이라면... 소름이 끼쳤다. 아, 나는 노무현을 잊은 게 아니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유토피아는, 노무현 같은 사람이 많아진 세상이 아닐까 싶다. 부조리를 잘못됐다고 말 할 수 있는, 나는 그런 용기가 있을까? 이것은 감동을 의도한 영화가 아니라, 노무현 삶의 참된 모습을 소재로 한 영화라 감동 이상의 놀라움을 준다. 뭐니뭐니 해도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노무현이 법정에서 학생들을 변호하는 장면이다.
신군사 정부의 횡포 때문에 말도 안되는 명목으로 끌려 온 학생들은, 정부의 눈치만을 살피는 법원 탓에 말도 안되는 판결을 받을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그때, 이를 묵인하지 않은 유일한 변호인, 돈만 알던 속물적인 세무 변호사의 모습에서 탈피한 변호사 노무현이 등장해, 높은 사람들의 꼭두각시 인형극같던 재판장을 뒤엎어버린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는 곧 국민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말을 아무도 마음놓고 할 수 없는 세상에서, 단 한사람의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와서, 닫혀있던 강줄기가 우렁차게 흐르며 눈과 귀가 열리고, 어둠 속 같았던 재판정이 한사람의 힘으로 진실의 빛으로 가득 찬다. 어느덧 관객들도 그 진실의 힘에 이끌려 하나 둘, 가슴 속에 응어리졌던 봇물같은 눈물이 터져 나온다. 노무현 연기를 한 송강호 배우 역시 칭찬 받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만큼은 영화가 아니라, 정말 살아있는 노무현을 눈 앞에서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악역을 맡은 배우들도 연기, 정말 잘한다. 정부의 개가 되어 죄 없는 학생을 비인간적으로 고문한 악덕 검사 역할을 맡은 곽도원 씨, 미안한 말이지만, 정말 연기를 잘 하셔서 영화 보는 내내 매부리코의 검사의 퉁퉁한 얼굴을 후려치고 싶었다.
대통령의 죽음:http://blog.sangwoodiary.com/entry/20090523-be-the-death-of-a-former-President
내 가슴에 떨어진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http://blog.sangwoodiary.com/492
하늘의 눈물:http://blog.sangwoodiary.com/entry/20100524-tears-in-hea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