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의 미로
2010. 5. 21. 09:00ㆍ영화
<판의 미로>
2010.05.18 화요일
비디오 가게에서 <판의 미로>를 빌려 보았다. <판의 미로>는 그 언젠가 텔레비전 예고편을 보고, 꼭 한번 보고 싶어했던 영화였다. 그런데 시작할 때부터 피를 뒤집어쓴 여자 아이가 나와, 나와 영우를 아빠 품 속으로 숨어들게 하였다.
나는 이 영화를 꿈과 상상의 나라가 펼쳐지는, 재미있고 행복한 영화인 줄로만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보니 시작부터 으스스한 게 무서운 분위기를 풍겨왔다. 그리고 1944년, 스페인의 내전 상황이라는 자막과 함께 본격적으로 영화가 막을 올린다!
어린 소녀 오필리아는 전쟁 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와 함께 반군을 막아주는 군 주둔 시설로 간다. 그 속에서 새 아버지와 새 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한 엄마와 살게 된다. 그러나 새 아버지는 천하에 악독한 대령이다. 꼭 세상의 안 좋은 면을 모두 떼어서 갖다 붙인 것 같은, 얄밉고 욕이 나오게 하는 나쁜 사람!
한 편, 책을 좋아하는 오필리아는 어느 날 요정의 부름을 받아, 마을 밖의 미로로 들어가고, 그 안에서 늙은 염소 요정 '판'을 만나, 자신이 지하 세계의 공주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판은 오필리아를 다시 지하 세계로 데려가 공주로 만드는 임무를 받았고, 오필리아를 도와 3가지 임무를 보름달이 뜨기 전까지 수행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여러 괴물을 만나고, 역경을 거쳐서 결국에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다는 그런 내용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오필리아의 모험보다, 더 잔인하고 비참한 현실의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나온다. 게다가 이 영화를 볼 아이들은 생각을 안 하는지, 피가 나오는 잔인한 장면이 너무 많이 나오는 바람에, 나는 수도 없이 "으으으~." 하며 눈을 손으로 가려야만 했다. 사실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관심 있게 보았던 것은, 오필리아보다 오필리아의 새 아빠 대령이었다.
고문하는 것을 즐기고, 사람을 밥 먹듯이 죽여도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자만심에 차서 자신보다 직위가 낮은 자드를 깔보고 무시하며 노예 버러지 취급한다. 자비는 털끝만큼도 없고, 자기편도 꼬투리 잡아서 죽이는 데는 도가 텄다. 이런 잔혹한 사람을 새 아버지로 맞은 오필리아의 기분은 안 봐도 뻔하다. 오필리아가 만났던 거대 두꺼비와 아이 잡아먹는 괴물도 이 사람보다 무서울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오필리아였다면 아마 죽음을 무릅쓰고, 멀리멀리 대령이 없는 곳으로 도망쳤을 것이다. 아마도 지하 세계의 이야기는, 이 잔혹한 대령과 끔찍한 전쟁의 틈에서 피어난, 오필리아의 실낱같은 꿈이 아니었을까? 그 괴물들도 사실은 이 잔인한 대령을 보며 생겨난 꿈많은 오필리아의 상상인 것 같다.
오필리아의 어머니도 그다지 현명하지 못한 것 같다. 대령의 사회적 직위만을 보고서 힘들다는 이유로 재혼해버린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죽은 남편의 자리가 크더라도, 도무지 그런 인간성 0점의 대령과 결혼을 한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쩌면 그래서, 오필리아의 말을 듣지 않아서, 벌을 받아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아, 꼬마 오필리아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지막에 대령에 총에 맞아 쓰러졌을 때, 눈물이 찔끔 나오고, 내가 영화 속으로 들어가 어떻게든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대령을 죽이고 싶은 충동이 들었으니까! 그래도 다행히 악독한 대령은 반군에게 죽고, 오필리아는 대령에게 죽임을 당하여, 자신의 진짜 어머니와 아버지가 기다리는 지하 왕국으로 돌아가 공주가 되며 막을 내린다. 그런데 행복해야 해야 할지 슬프다 해야 할지 모르겠다. 꼭 가슴 속 응어리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도중에 멈춰버린 말로 하기 찜찜한 느낌이다.
결국은 오필리아가 대령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얘기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너무 비극적이어서 그런 생각을 하기가 싫다. 그래서 나는 오필리아가 자신의 지하왕국으로 돌아갔다고 굳게 믿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오랜만에 신비한 모험과 상상 속에 푹 빠져보려고 빌렸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세상살이가 언제나 꿈처럼 아름답지 못하단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럼에도, 오히려 아름다운 모험과 상상의 영화보다, 나은 점이 있다고 느껴지는 건 왜일까? 차라리 허황된 꿈만 가득 찬 영화에 익숙해진 요즘 아이들에게, 이 영화는 쓴 약이 되지 않을까?
2010.05.18 화요일
비디오 가게에서 <판의 미로>를 빌려 보았다. <판의 미로>는 그 언젠가 텔레비전 예고편을 보고, 꼭 한번 보고 싶어했던 영화였다. 그런데 시작할 때부터 피를 뒤집어쓴 여자 아이가 나와, 나와 영우를 아빠 품 속으로 숨어들게 하였다.
나는 이 영화를 꿈과 상상의 나라가 펼쳐지는, 재미있고 행복한 영화인 줄로만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보니 시작부터 으스스한 게 무서운 분위기를 풍겨왔다. 그리고 1944년, 스페인의 내전 상황이라는 자막과 함께 본격적으로 영화가 막을 올린다!
어린 소녀 오필리아는 전쟁 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와 함께 반군을 막아주는 군 주둔 시설로 간다. 그 속에서 새 아버지와 새 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한 엄마와 살게 된다. 그러나 새 아버지는 천하에 악독한 대령이다. 꼭 세상의 안 좋은 면을 모두 떼어서 갖다 붙인 것 같은, 얄밉고 욕이 나오게 하는 나쁜 사람!
한 편, 책을 좋아하는 오필리아는 어느 날 요정의 부름을 받아, 마을 밖의 미로로 들어가고, 그 안에서 늙은 염소 요정 '판'을 만나, 자신이 지하 세계의 공주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판은 오필리아를 다시 지하 세계로 데려가 공주로 만드는 임무를 받았고, 오필리아를 도와 3가지 임무를 보름달이 뜨기 전까지 수행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여러 괴물을 만나고, 역경을 거쳐서 결국에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다는 그런 내용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오필리아의 모험보다, 더 잔인하고 비참한 현실의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나온다. 게다가 이 영화를 볼 아이들은 생각을 안 하는지, 피가 나오는 잔인한 장면이 너무 많이 나오는 바람에, 나는 수도 없이 "으으으~." 하며 눈을 손으로 가려야만 했다. 사실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관심 있게 보았던 것은, 오필리아보다 오필리아의 새 아빠 대령이었다.
고문하는 것을 즐기고, 사람을 밥 먹듯이 죽여도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자만심에 차서 자신보다 직위가 낮은 자드를 깔보고 무시하며 노예 버러지 취급한다. 자비는 털끝만큼도 없고, 자기편도 꼬투리 잡아서 죽이는 데는 도가 텄다. 이런 잔혹한 사람을 새 아버지로 맞은 오필리아의 기분은 안 봐도 뻔하다. 오필리아가 만났던 거대 두꺼비와 아이 잡아먹는 괴물도 이 사람보다 무서울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오필리아였다면 아마 죽음을 무릅쓰고, 멀리멀리 대령이 없는 곳으로 도망쳤을 것이다. 아마도 지하 세계의 이야기는, 이 잔혹한 대령과 끔찍한 전쟁의 틈에서 피어난, 오필리아의 실낱같은 꿈이 아니었을까? 그 괴물들도 사실은 이 잔인한 대령을 보며 생겨난 꿈많은 오필리아의 상상인 것 같다.
오필리아의 어머니도 그다지 현명하지 못한 것 같다. 대령의 사회적 직위만을 보고서 힘들다는 이유로 재혼해버린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죽은 남편의 자리가 크더라도, 도무지 그런 인간성 0점의 대령과 결혼을 한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쩌면 그래서, 오필리아의 말을 듣지 않아서, 벌을 받아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아, 꼬마 오필리아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지막에 대령에 총에 맞아 쓰러졌을 때, 눈물이 찔끔 나오고, 내가 영화 속으로 들어가 어떻게든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대령을 죽이고 싶은 충동이 들었으니까! 그래도 다행히 악독한 대령은 반군에게 죽고, 오필리아는 대령에게 죽임을 당하여, 자신의 진짜 어머니와 아버지가 기다리는 지하 왕국으로 돌아가 공주가 되며 막을 내린다. 그런데 행복해야 해야 할지 슬프다 해야 할지 모르겠다. 꼭 가슴 속 응어리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도중에 멈춰버린 말로 하기 찜찜한 느낌이다.
결국은 오필리아가 대령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얘기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너무 비극적이어서 그런 생각을 하기가 싫다. 그래서 나는 오필리아가 자신의 지하왕국으로 돌아갔다고 굳게 믿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오랜만에 신비한 모험과 상상 속에 푹 빠져보려고 빌렸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세상살이가 언제나 꿈처럼 아름답지 못하단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럼에도, 오히려 아름다운 모험과 상상의 영화보다, 나은 점이 있다고 느껴지는 건 왜일까? 차라리 허황된 꿈만 가득 찬 영화에 익숙해진 요즘 아이들에게, 이 영화는 쓴 약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