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24. 02:27ㆍ일기
<마약 추어탕>
2013.08.21 수요일
이틀 전 개학날, 빨리 학교에 가고 싶다던 마음과 다르게 몸이 탈 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학날 다시 만난 반 친구 인사말이 "너 방학 지나고 다크서클이 정말 진해졌구나!"였다. 쉬는 시간엔 복도에서 2학년 때 담임 선생님과 마주쳤는데 "상우야, 너 왜 이렇게 몸이 자꾸 말라가니?" 하셨다.
마치 끔찍한 것을 본 듯, 눈쌀을 찌푸리시는 선생님의 걱정스런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걸을 때도 중력이 더 강해진 것처럼 자꾸 주저앉으려 하고, 하다못해 책가방을 맨 어깨에 멍이 들었으니! 집으로 돌아와 나는 풀썩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 팔굽혀펴기를 해 보려고 끙끙 용을 썼지만, 팔에 힘이 하나도 주어지지 않아 다시 벌렁 쓰러졌다.
요즘 기가 허하고, 힘이 없고, 자꾸 잠만 자려 하는 문제는 지금뿐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종종 더운 여름에 겪었던 일이다. 특히 더웠던 이번 여름에도 역시 거르지 않고 하루하루 눈병, 피부병, 코감기, 치질을 돌아가며 시름시름 앓았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끼니는 입맛이 없어 거르고, 마음엔 답답증이 생겨서 항상 이상한 감정이 북받쳐 울렁울렁거렸다. 배 고프면 태양초 고추장을 잔뜩 넣어 위가 아프도록 시뻘겋게 비벼 먹었다. 이러니 늘어나는 건 엄마의 태산 같은 걱정이었다.
엄마는 오늘 나를 추어탕 집으로 데려가셨다. 엄마가 보양식을 고민하다가 인터넷에서 우리 동네에 잘한다는 추어탕 집을 찾아내셨다고 한다. 엄마는 눈가에 물기가 어린 채로 내 팔을 끌어안으며 고무줄 같이 말랐다고 하셨다. 그리고 주문할 때 "이집이 추어탕을 잘 한다고 해서 왔습니다. 우리 아들 먹이려고요." 하며 자신의 것은 주문하지 않고 죄송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계속 추어탕의 효능에 대해서 설명하셨지만, 나는 추어탕을 한번도 먹어 본 적이 없었고, 미꾸라지를 잡아 넣은 음식이라는 말만 맴돌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한 친구가 계곡에서 잡아 온 미꾸라지를 반에서 키운 적이 있었는데, 이름 그대로 미끌거리며 촉촉한 피부를 가진 그 친근한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어서 밥상에서 다시 본다! 으~ 전혀 반갑지 않았다. 추어탕이 나오는 순간 긴장 하며 제일 먼저 숟가락으로 추어탕을 헤집어, 진짜로 미꾸라지가 들어있는지 확인부터 해 보았다. 미끌거리는 미꾸라지가 통째로 들어있지는 않았지만, 미꾸라지 어디로 갔지? 미꾸라지 육수를 낸 건가? 자꾸 미꾸라지를 찾게 되었다.
엄마가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어쩜 그렇게 순진하냐? 미꾸라지는 곱게 갈려서 탕 안에 들어갔으니 안심하고 먹어도 돼." 하셨다. 추어탕 국물을 한숟가락 떠서 호로록~ 입으로 넣어봤을 때 처음 느낀 것은 맛이 색 다르다는 것이었다. 매콤하고 짭잘하면서도 순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 까다로운 입맛에 아주 맛있다! 평가를 줄만큼 대단한 맛까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자꾸만 멈출 수 없이 추어탕으로 숟가락이 갔다. 사래가 들려 켁켁~ 기침을 할 때까지, 추어탕 먹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먹으면 먹을수록 몸 속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꼭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내 몸에 헬륨가스를 가득 채워 넣어, 몸이 두둥실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엄마가 놀라며 "그렇게 맛있어?" 하셔서 나는 추어탕 한숟가락을 엄마의 입에 가져갔는데, 엄마는 한사코 먹지 않으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셨다. 난 순간 울적했지만, 더 강요하지 않았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추어탕을 국물 한 점 남기지 않고 다 먹는 것이란 걸 깨닫고 숨도 쉬지 않고 먹었다. 그러니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어, 산소 호흡기를 단 사람처럼 입에 계속 추어탕을 달고 빨아들였다. 양이 푸짐해서 요즘 밥을 적게 먹던 내가 밥 한그릇을 더 시켜, 남은 추어탕에 말아 국밥을 먹었다. 진짜 시골에 살아본 적은 없지만, 추어탕을 먹으니 없던 시골의 어린 시절 추억마저 만들어져, 마치 어린 시절에 먹던 맛 같다는 착각까지 느끼며 훌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