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규, 부드러운 남자

2013. 10. 15. 20:44일기

<철규, 부드러운 남자>

2013.10.15 화요일


철규는 자기 책상에 놓여 있던 뾰족한 바늘을 들어올린 뒤, 순식간에 천에 한 면의 박음질을 끝내버렸다. 그것도 재봉틀로 박은 것처럼 빠르고 촘촘하게!


바느질이 서툰 대부분의 아이들은 주섬주섬 이제 네바늘 정도 꿰매고 있었다. 나도 손 바느질이라면, 바느질이 생판 처음일 남자 아이들보다 훨씬 잘 할 자신이 있었다.


한때 외과의사가 되어 응급환자의 수술을 하는 게 꿈이었기 때문에, 의료기구 박람회에 가서 꿰맬 때 쓰는 가위를 직접 사서, 베개나 이불, 양말을 수시로 꼬매 본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다른 애들보다 빠르게 착착 바느질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앞에 앉아 있는 철규는 이미 한 면을 다 꿰매고 반대쪽 면을 해치우려고 한다! 사람을 외모로 평가해서는 절대로 안되지만, 나는 미안하게도 철규와 같은 반이 되기 전인 1, 2학년 때에는, 멀리서 철규의 얼굴만 보고 '아, 저 아이는 세상에 불만이 많은 아이구나!', 또는 '저 아이와 시비가 만들어질 일은 하면 안되겠다.' 생각했었다. 철규와 처음 만났던 중학교 1학년 때 일이 떠오른다.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철규와 어깨가 부딪혔다. 그때 나는 살짝 부딪혔었는데도 크게 휘청하며 밀려났다. 지금 와서 안 거지만, 철규는 예전부터 수영을 오랫동안 진지하게 해서 어깨가 딴딴한 것이었다. 나는 갑자기 크게 부딪혀서 놀란 마음을 추스리고 있는데, 철규가 '널 죽이겠다~!'하듯이 위엄있는 말투의 중저음으로 "미안~!" 하며 나를 무섭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철규가 나한테 뭔가 마음에 안드는 점이 있어서 일부러 세게 부딪힌 것이 아닌가 하며 급히 자리를 벗어났었다. 같은 반이 되고도 철규의 그 강렬한 인상, 입 안에 바람을 불어넣은 것 같은 볼살, 툭 째려보는 듯한 광채가 나는 눈, 위로 치켜올려진 눈썹, 한올도 남김없이 빡빡 민 머리카락 때문에 쉽게 먼저 접근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나의 마음 속에 철규는 아주 남성적이고 자기 주장이 강할 것 같은 우락부락한 인상의 아이였다.


그런데 그런 철규가 내 앞에서 아주 섬세한 손길로 물 만난 고기마냥 바느질을 척척 해나가니, 평소 생각했던 철규의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저~ 철규야, 바느질을 왜 이렇게 잘 해?" 하고 묻자, "초등학생 때부터 십자수랑 뜨개질이 취미여서 요즘도 연습하고 있거든!" 대답했다. 나는 바느질감을 잠시 손에서 내려놓고 철규를 바라보았다. 철규는 신 난 듯이 "요즘은 날씨가 추워져서 여동생 주려고 목도리를 뜨고 있어!" 했다. 철규는 그말을 하면서 뜨문뜨문 웃는데, 입이 쭉 찢어지고 볼에는 보조개가 푹 패인다.


'사람은 얼굴로 평가하면 정말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한번 머릿속을 맴도는데, 빠른 손놀림으로 바느질을 하며 보조개가 우물처럼 파이도록 웃는 철규의 모습이, 아직은 적응이 안 돼 철규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어느새 철규는 선생님께서 지정해주신 양을 훨씬 넘어 자신의 특별한 작품을 완성해 나가고 있었다. 작품이 순조롭게 완성이 되어가니 철규는 기분이 좋았는지 여학생처럼 조잘조잘 떠들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철규의 다른 모습을 알게 된 충격에, 고수 앞에 있는 신입생처럼 얌전하게 바느질만 끄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