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광장 위의 새털구름

2013. 7. 23. 00:29일기

<물빛광장 위의 새털구름>

2013.07.19 금요일


기말고사가 끝난 나의 하루 일과는 별 볼일 없다. 방학을 앞두고 친구들은 물 만난 고기마냥 활기차다. 친구들끼리 단체로 반대항전 게임을 하러 우르르 피시방에 갈 때도, 나만 혼자 빠져나와 집으로 힘 없이 걸어온다.


집에 오면 굳은 얼굴로 방문을 닫고 커튼을 닫고 방을 어두컴컴하게 만든다. 그안에서 누에고치처럼 틀어박혀 있다가,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다시 방에 틀어박혀 기면증 환자처럼 쓰러져 잠이 든다. 아무 일에도 의욕이 없고 무료하고 지루하며 생산적이지 못한 날들.


저녁에 엄마, 아빠가 집에 들어오셔서 잠깐만 바람 쐬러 가자고 하면서, 나랑 영우를 반강제로 차에 태워 어디론가 끌고 가셨다. "어디 가는 거예요?", "여의도에!" 차창 밖엔 장맛비가 잠간 멈춘 틈을 타, 바람이 빌딩숲을 지배하고 있었다. 차 안에서 창문을 활짝 여니 거센 바람이 들이닥쳐, 누군가 두손으로 내 코와 입을 막아버린 것처럼 "합~"하고 숨이 막혔다. 나는 숨통을 막아버리는 바람을 뚫고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창 밖으로 용감하게 얼굴을 내밀었다.


바깥 공기는 아주 습기 차고 후덥지근했고, 바람은 내 얼굴을 쥐고 마구 흔드는 것처럼 불었다. 팥빙수를 먹을 때처럼 코가 뻥 뚫렸다가 머리가 띵하고 다시 숨이 막힐 정도로 시원하였다. 바람이 온몸을 덮치자 그동안 속에 쌓여있던 피로, 스트레스, 묵은 체증이 순간 날아가는 것처럼 시원함을 느꼈다. 창 밖의 사람들은 모두 나와는 다른 세상의 사람들처럼 아주 아주 멀게 느껴졌고, 빌딩이나 가로수, 모든 풍경이 현실 같지가 않고 세밀하게 그려진 하나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갑자기 온힘을 다해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앙아~!" 하고 창밖을 향해 괴성을 질렀다.


창문 너머의 사람들이 나를 봐 주었으면 했는지, 바람소리랑 내 목소리랑 뭐가 더 큰지 내기하려 했는지,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달리는 차안에서 야생에서 길 잃은 배고픈 멧돼지처럼 계속 괴성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 으흐하아아~ 으아아아아아앗~!" 옆에서 영우는 겁먹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엄마는 목이 쉴까 봐 걱정하셨다. 한강 다리를 건널 때 아빠도 갑자기 나처럼 "으와아아아아~!" 하고 계속 고함을 질렀다. 나도 질세라 짐승처럼 발광하며 "으으항~ 으아아아아아아아아~" 괴성을 내지른지 한 몇 분쯤 되었을까? 우리는 여의도 공원에 도착했고 바람은 잠잠해졌다.


처음 와 보는 여의도 공원은 거대한 도시 한복판에 세워진 완벽한 숲이었다. 소나무 냄새를 맡으니 마음이 좀 진정되었고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다. 우리 가족은 공원 트랙을 한바퀴 돌다가, 한강 앞에 있는 물빛광장이란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빠가 최근에 여의도에 일이 있어 자주 왔었는데, 나를 꼭 여기 데려와야지 생각했던 곳이라고 한다. 넓은 시멘트 광장 위에 종아리가 잠길 정도의 물이 가득한 곳으로, 물빛광장 너머엔 길게 한강이 펼쳐져 있었다. 광장에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발을 담그고 참방참방 거닐며 물장구도 치고, 어린 아이들은 아예 몸을 담구어 물놀이를 하고, 꼭 거대한 야외 공중 목욕탕 같았다.


물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나, 물가 주위에 돗자리를 펴고 야식을 먹거나, 물을 바라보며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였다. 나도 영우랑 광장을 덮은 물 속으로 신발을 벗고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바닥엔 끈적거리고 미끌미끌한 이끼같은 게 깔려 있어 조심조심, 저벅저벅 거닐었다. 바지를 붙잡고 한참을 걷다가 쉬려고, 물가 자리의 젖은 시멘트 언덕 위로 올라갔다. 차가운 물바닥에서 다리를 건져 올리니 시멘트 언덕이 따뜻하게 발을 말려주었다. 나는 그 위로 몸을 눕히고 밤하늘을 보았다. 이렇게 넓은 하늘을 본 것이 언제였을까?


하늘은 내게로 쏠려있었다. 하늘을 덮은 옅은 구름 사이로 시퍼런 밤하늘과 달이 언뜻언뜻 보였다. 그리고 구름은 파도가 해안가에 부딪혀 부서지는 모양으로 변해갔다. 구름 사이로 비치는 달이 바다 위에 비치는 달 같았다. 땅바닥에서 본 하늘은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두눈에 다 담을 수 없는 것을 발견했다는 기분이 들어, 아빠, 엄마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누워 있는 옆으로 어떤 남자와 여자가 와서 심하게 말다툼을 했다. "오빤 내가 힘든 건 생각 안하는 거야?" 여자는 일방적으로 화를 내며 소리 질렀고, "나한테 말 시키지 마!"하며 저쪽으로 가버리고 남자는 "거기 서!"하며 쫓아갔다. 나는 그냥 눈을 감고 모르는 척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