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14. 02:25ㆍ일기
<비오는 밤의 낙서>
2013.07.13 토요일
비가 징글맞게도 내린다. 생각은 장맛비처럼 징글징글 내려와 머릿속을 덮는다. 비가 무슨 죄냐만 블로그의 하얀 공간에 뭘 써내려갈지 모르겠는데, 비는 자꾸 추적추적 내려서 내 집중력을 방해하니 기분이 안 좋다.
내가 지금 듣고 있는 음악은 스크릴렉스(skrillex)의 뱅가랭(bangarang)으로 어지러운 일렉트로닉 음악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음악 듣는 취향은 점점 더 자극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이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들으면서 무언가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가사도 없고 어지러운 비트가 계속 귀를 강타하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생각을 빼내기에는 딱 좋은 음악같다. 소형 선풍기 바람은 정말 애매하다. 내 몸쪽으로 계속 고정시켜 놓으면 몸이 시렵고 머리가 차갑게 띵한데, 그렇다고 선풍기 고개를 돌리게 놔두면 바람이 부는 게 감질 난다. 요즘은 기분의 기복이 심해서 기분이 좋을 때는 뭐든지 끈기를 가지고 열심히 하지만,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조금만 노력하면 될 것을 그냥 던져버리는 안 좋은 버릇이 생겼다.
이렇게 글을 막 팽개치듯 쓰고 싶은 충동이 든다. 그냥 언젠가 글 쓰는 걸 그냥 던지고 싶다. 던지고 다시 새로 시작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내가 뭘 원하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아직까지 어릴적 꿈에 빠져서 사는지도 모르고 벌써 무의식 중에 내 인생을 포기했는지도 모르지. 이렇게 외계말이 한없이 터져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오오웅어ㅏ어ㅗㅇ우어ㅗㅓㅇ워오어오ㅓㅗ어ㅜ어ㅝ오ㅓㅇ우어ㅗ엉우얼어로나ㅓ로나얼우러ㅏㅓㅗㄹㄴ어~'
기분이 안 좋다. 과연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일까? 혹시 건물주 공화국 아냐? 600일이 넘게 철거 농성을 하는 북아현동 철거민 가족의 사태는 어떻게 결말이 날 것인가? 며칠 전부터 우리 동네에는 전경들이 삼삼오오 깔려 진을 치고 있는데, 대학생들의 시국선언과 광화문 국정조사 촛불집회 소식을 뉴스와 언론에서는 눈뜨고 찾아볼 수 없으니 답답해서 욕이 나온다. 4.19때도 부정선거로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지 않았나? 하, 제기랄~
날씨는 심하게 덥고 습하고, 치질은 더 악화된 것 같다. 엉덩이 사이에 뭔가 뭉쳐 있는 이느낌이 진짜 싫다. 안경에 끼어 있는 얼룩이 싫다. 윗옷을 벗고 있어서인지, 선풍기 바람을 오래 쐬어서인지, 새벽 2시가 되도록 잠을 안 자서인지 띵한 머리가 싫다. 헤드셋 줄이 목을 간지르는 느낌이 거슬린다. 내방 책장에 아직 읽지 않은 책들, '유도교본', '수영100배 즐기기', '오너백과' 처럼 내 관심사가 아닌 주제를 다룬 책들이 눈에 거슬린다. 좋은 책을 꽉꽉 채우고 싶은 욕심이 똥이 흘러넘치듯 넘친다. 노트북이라 그런지 타자를 치는 느낌이 감질 맛 나서 싫다. 아, 노트북은 그냥 싫다.
너무 싫은 것만 쭉 쓴 것 같다. 모르는 사람은 이글을 보면, 내가 정신병자인줄 알겠지. 좋은 것을 써 보자. 헤드셋 사이로 흘러나오는 이 시끄러운 기계음이 좋다. 두서 없게 흐트러져 있는 내 방의 책무더기가 좋다. 정갈하게 꽃혀져 있는 나머지 책들도 좋다. 밝으면 지저분하고 어수선해 보이겠지만, 밤의 어둠으로 내방의 분위기를 더해주는 이밤의 어둠이 참 맘에 든다. 밤하늘이 완전히 검은색이 아니고 살짝 노란빛이 나는 것도 맘에 든다. 윈도우7의 작업표시줄의 맑은 파랑색이 정말 맘에 든다. 지금은 컴퓨터가 없어서 쓰지 않지만, 파란색 조명과 은색 버튼들을 가진 오디오가 참 좋다. 언제부터 있는지 오랫동안 스피커 위에 올려져 자리를 지켜주는 저 지구본도 맘에 든다.
물을 마시고 싶은데 그럴려면 아래층으로 내려가야 한다. 지금 내려가서 불을 켜면 할머니께서 잠을 설칠지도 모르고 이 글을 쓰는 흥이 깨질 것 같다. 내가 타이핑을 할 때 동생에게 물 갖다 달라, 뭐 갖다 달라 부탁하면, 싫어하는 척 하면서도 마지못해 들어주는 녀석인데 좀 아쉽다. 그러고보니 동생은 참 착한 녀석이다. 아직 많이 어려서 그렇지 착한 행동에는 일가견이 있다. 맞은 편 방에서 자고 있는 동생의 얼굴이 보고싶다고 생각하면서, 벽에 걸려있는 그림 속 아저씨의 얼굴 표정을 보니 참 무섭다. 밤이라 그런가 보다.
책가방이 비딱하게 뉘어져 있다. 좀있다 자기 전에 똑바로 세워 놔야지. 요즘 학교에서는 기말고사가 끝나고 다들 노는 분위기가 한창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공부를 아주 잘하는 아이들은 특목고 입시준비를 위해 열심히 뛴다. 안하는 애들은 시험 보기 전이나 본 후나 똑같이 지내지만, 나는 그 사이에서 길을 잃은 아이 같다. 같은 나이에 서로 다른 리그에 산다는 현실이 기묘하고 기괴하게 느껴진다. 학교에서는 2학년 때 싸웠던 건우에게 말을 걸기가 두렵다. 3학년 올라와서 거의 못보고 지냈는데, 얼마 전에 같이 게임을 하다가 내가 실수를 너무 많이 해서 참패를 당했기 때문에 부끄럽고 미안해서 뭐라고 할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