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파도타기

2013. 8. 12. 00:49일기

<촛불 파도타기>
2013.08.10 토요일

저녁 7시, 서울 시청 광장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참석 하러 가는 길! 광화문 네거리, 횡단보도를 건너 쏟아지는 인파를 뚫고 아빠를 놓치지 않으려 나랑 영우는 기를 쓰고 따라붙고, 저 멀리 뒤에 엄마가 땀을 닦으며 따라오신다.


지난 촛불집회 때는 3만 명이 모였다고 하는데, 오늘은 사람들이 얼마나 모일까? 혹시 내 옆의 사람도, 그옆의 사람도 촛불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바삐 걷는 건 아닐까? 서울광장 가는 도로변에는 경찰버스가 끝 없이 늘어서 있다.


도로에는 경찰들이 조를 이루어 이리저리 계속 왔다갔다 하였고, 6.25 전쟁 흑백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사이로 사람들이 오고가느라 북새통인데, 자꾸 누군가가 "서울 광장에 10만 명 동원한다고 큰소리 떵떵 치더니 2,3천 명 밖에 안 왔다고 합니다!" 하며 확성기에 대고 비웃듯 소리를 흘려보냈다. 서울광장 가는 길은 개구리 가족이 바다를 향해 무모한 여행길에 나선 것처럼 힘들게 느껴졌다. 습하고 더운 날씨 때문에 땀을 너무 많이 흘려 어지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서울광장에는 정말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는 것이다. 아니, 많다는 말로는 그 엄청난 숫자를 표현하기에 부족할 정도로, 드넓은 서울광장이 미어터질 듯 했고 앞이 보이질 않았다.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물결이 치는 것 같았고, 저너머 앞에 앉은 사람들의 머리가 개미만하게 보였다. 누구 하나 지시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사람들은 질서정연하게 안내대에서 피켓과 초를 받아들고, 차례대로 자리를 잡고 앉아 초에 불을 켰다. 사람들이 거의 서울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어서 우리는 맨 끝쪽에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 아빠, 영우, 엄마는 앞자리에, 나는 엄마 뒷자리에.


나는 촛불이 무서웠다. 어릴 때 손가락을 불에 데인 적이 있어, 불을 무서워 했기 때문에 촛불 받는 걸 순간 꺼려했는데, 어느 새 엄마가 종이컵에 꽃힌 초를 내 손에 쥐어 주고, 다른 사람 촛불로부터 불을 빌려 와 내 초에 붙여주었다. 촛불은 금새 타올랐고 촛불이 반짝 타오르는 순간, 나는 그제서야 서울광장 시민 집회장의 진지한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뒤에는 경찰버스와 사람만한 방패를 들고 있는 경찰들이 벽을 만들고 있어서 진지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했지만, 사람들의 얼굴은 평화로왔다.


내 옆에 앉은 안경 쓴 대학생 형아, 대머리 할아버지, 아줌마, 누나들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피하지 않고, 꼭 낯익은 얼굴 대하듯 입가엔 살며시 미소를 담고 있었다. 비록 말은 나누지 않았지만, 무언가를 공유했다는 미소의 느낌이 쫘르르~ 전달되었다. 민주주의를 회복 해야겠다는 의지와 확신이 담긴 미소의 의미를 어린아이들도 아는 걸까? 집회장엔 어린아이들이 종종 눈에 띄었는데, 유모차에 앉아 쌕쌕 자는 아기들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으로 보이는 어린아이들이 촛불을 들고 엄마, 아빠 옆에 앉아서,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촛불집회의 분위기를 흡수하고 있었다.


어둑어둑한 하늘의 검푸른 색이 점점 짙어지고, 촛불이 더 밝게 느껴지는 순간이 올 무렵, 이제 막 시작한 촛불집회는 초반부터 후끈 달아올랐다. 사람들이 앉아서 한곳을 바라보는 머나먼 무대의 정면에 개미만한 사회자 한 분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행사를 진행하였다. 사람들 틈에 앉아 있을 때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무대 모니터를 통해 서울광장에 사람들이 정말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무대에 나와 연설 하는 사람들과 공연자들에게 열렬히 촛불로 화답하고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따라불렀다. 무대에 나온 연설자 중 표창원 경찰대 교수님이 이렇게 외쳤다.


"제가 24년 전에는 집회 시위를 관리하는 경찰관의 신분으로 맞은 편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다 잡혀가는 입장이었는데요, 제가 지금은 교수직을 사퇴하고 잡혀가지 않고 할 말 다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민주화를 이루고 진보시키려 노력하신 민주 시민들 때문이고, 이자리를 빌어 정말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경찰은 혐의를 포착했으면 사냥개처럼 물고 늘어져야 합니다. 사냥개처럼 물고 늘어져 악착같이 수사를 해야되는데, 오히려 혐의 사실을 덮으려 했습니다. 누가 이렇게 하도록 시켰습니까?" 시민들의 성 난 환호소리가 서울광장 하늘을 넘어 달까지 닿는 듯 했다. 그렇게 집회가 무르익어 가는데 사회자가 획기적인 제안을 하였다.


중간 중간 카메라 기자들의 포토 타임이 있었는데, 촛불 파도타기를 보여주자고 했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모여, 바로 옆옆옆 사람부터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고, 한번도 호흡을 맞춰 본 적이 없는데 파도타기는 성공할까? 아니나 다를까, 엄마, 아빠는 한참 떨어진 곳에서 촛불 물결이 올라오고 있는데도 어안이 벙벙한 채 그냥 촛불을 들고 계셨다. 그사이 영우는 엄마 무릎을 베고 잠에 빠져 있었고, 나는 엄마, 아빠를 지나 영우 촛불까지 두 개를 높이 쳐들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우워어~!' 하며 마음 속의 리듬을 탔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엄마, 아빠, 2명의 실수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고, 파도타기는 아주 멋지게, 촛불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장관을 연출해냈다. 이것은 분명 내가 살아 숨쉬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역사적 사실이고, 우리나라 공중파 언론, 1면 헤드라인 초대박 뉴스감이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