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23. 02:34ㆍ일기
<시원하게 자른 머리>
2013.06.22 토요일
나는 더위를 잘 타지 않는 편이지만, 요즘 들어서 날로 길어진 머리카락 때문에 머리에 오토바이 헬멧을 쓴 것처럼 답답하고 쉽게 땀이 차서, 언젠가 날을 잡아서 머리를 자르겠다고 별렀고 마침 오늘 여유가 생겼다.
미용실은 주말이라 손님이 있어서 좀 기다려야 했다. 두 명의 손님이 자리에 앉았다가 몇 분 뒤 말쑥해진 얼굴로 일어났고, 내 차례가 되었다. 미용사 아주머니는 내 어깨에 파란 천을 두르며 물어보셨다.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
"어, 그냥 시원하게 잘라주세요." 아주머니는 가위로 내 머리카락을 한줌 한줌씩 쥐고 깎아가기 시작했다. 내 머리에서 검은 머리카락 뭉치들이 떨어질 때마다 사그락~ 사그락~ 사과 껍질 깎을 때 나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가 날 때마다 점점 머리에 쓴 헬멧이 벗겨지는 것처럼 가벼워졌다. 나는 시력이 매우 안 좋아서 안경을 벗은 지금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에서, 머리 위 검은 덩어리의 크기가 작아지는 것이 눈으로 흐릿하게 보였다.
덩어리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내 몸을 덮은 천과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의 수도 점점 늘어났다. 어느새 바닥에는 낙엽이 떨어진 것처럼 검은 머리카락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실처럼 작은 머리카락도 코끝에 떨어져 간지러워 재채기가 나올 것 같다. 마지막으로 뒷머리를 바리깡으로 미는데, 바리깡의 감촉이 부드럽게 내 뒷통수와 뒷목에 전해져서, 간지러워 몸이 살살 떨리고 입에서 웃음이 나올려고 했다.
여드름이 나고 콧수염이 생기는 나이가 됐는데도 아직 간지럼을 이기지 못하다니? 나는 입에 지퍼를 채우는 상상을 해가며 웃음이 새어나오는 입을 막고, 그것도 안되니 몸에다가 나무 막대기를 묶어 고정시킨다는 상상을 하며 몸의 떨림을 고정시켰다. 머리를 다 자르고 머리 모양을 확인하지도 않고 후닥닥 일어나 세면대로 향한다. 얼굴을 세면대 안에다 넣고 손으로 더듬더듬 수도꼭지를 찾아 물을 틀었다. 쑤와아~! 더운 날씨에 차가운 물줄기가 내 머리 위에 떨어져, 얼굴과 뒷목을 타고 흘러 등과 가슴으로 얼음장 물방울이 흘러드니 그렇게 시원할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