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솜사탕

2013.09.08 01:55일기

<가을 솜사탕>

2013.09.07 토요일


오후 5시, 여의도 공원에 도착해 중앙 야외 무대를 찾았다. 동생 영우가 속한 매동초등학교 탈춤 동아리가 이제 막 공연을 시작하려고 하였다.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무슨 행사라는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단지 아침에 영우가 "오늘 내 탈춤 공연 보러 올 거야?


올 거면 평생학습 축제장으로 와! 올 거야?" 되물었는데, 무뚝뚝한 소리로 "시간 없어." 했던 것이 기억 난다. 중간고사 준비로 시간을 쓰려 한 주말이었고, 초등학교 6학년 탈춤 공연을 내가 꼭 봐야되나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날 설득하셨다.


영우가 탈춤 공연에 참가하고 싶어 오디션을 봤는데, 학교 대표로 뽑혀서 대회에 출전하는 거라고, 여름내내 땀 흘려 연습한 공연인데 함께 가서 축하해 주는 게 좋지 않겠니? 하시는데 거절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영우는 2시에 종로 북촌 마을 문화제에도 참가 해 공연을 펼치고 왔다고 한다. 공연이 열리기 전 무대 뒤편에서 엄마와 함께 영우를 만났는데, 헝클어진 머릿결에 새까맣게 그을은 얼굴로 나를 보고 찡긋 웃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알록달록한 색동옷을 입은 꼬마들이 쪼르르 무대 위로 나왔다. 초등학교 고학년이지만, 내 눈에는 꼬맹이로 보였고, 현대판 음악에 맞추어 드디어 아이들은 일사불란하게 뒤뚱뒤뚱 몸을 흔들었다. 관람석에서는 공연단의 재롱에 손뼉과 웃음이 터져나오고, 내 눈을 잡아끄는 것은 역시 영우의 춤사위였다. 내가 춤동작은 잘 모르지만, 영우가 동작을 최대치로 표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 표정!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이 너무 신나 죽겠다는 얼굴 표정이 제일 눈에 띄었다.


만약 밝게 웃는 것이 심사 기준이었다면, 아마 영우가 1등이지 않았을까 싶다. 영우는 다음 주엔 만들기 대회, 그 다음 주엔 글쓰기 대회에 학교 대표로 출전 한다고 하니 참 악착 같은 녀석이다. 재미있던 영우의 재롱을 다 보고나니 그 나머지 무대는 시선을 끌지 못했다. 뭐, 고등학교 댄스 동아리 공연, 락밴드 공연, 7080 세대의 밴드 공연, 부채춤 공연까지 이어졌지만, 무대는 점점 내 관심 밖에서 벗어났고 난 자리에서 일어나 맑은 날씨의 세상 구경을 하였다. 오른쪽으로는 거대한 빌딩숲이 높은 하늘을 가려버렸고, 왼쪽에는 여의도 공원의 초록 나무숲이 우거져 있고, 앞으로는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지평선 끝까지 뻗어 있어 여러 풍경이 조화를 이룬다. 거기다 날씨까지 좋다!


유난히 덥고 답답하고 화 나고, 아프기까지 했던 여름을 보내고 어느새 가을이 온 것이다. 올 가을엔 제대로 된 세상이 우리 앞에 다가오지 않을까? 쾌적한 날씨에 왠지 감이 좋아 공원을 걷다가 솜사탕 파는 수레를 발견 했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과, 그 안에 폭신하게 떠 있는 작은 뭉게 구름 뭉치들과 똑같은 솜사탕을 발견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 나의 어린시절 환상 중에 하나는 솜사탕이었다. 알록달록 연하게 빛을 반사하는 색깔, 따뜻한 솜털같이 부풀어 있는 솜사탕을 한입 가득 베어 물면, 정말 기분이 황홀할 것 같았는데 먹고나서 배신감을 느꼈던 그맛! 입 안에 넣자마자 뭘 넣었는지도 모르게 사라져 버려 포만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냥 설탕을 퍼 먹은 것 같이 달고, 부풀어져 있는 솜사탕 때문에 입 안과 입술 주위, 손에도 설탕이 찐득하게 잔뜩 묻어, 먹고 난 뒤의 기분도 안 좋았었는데... 그 뒤로 솜사탕은 거들떠 보지 않았다. 그렇게 10년 정도가 지난 오늘, 여름은 다 지나고 오랜만에 시원한 가을 날씨가 찾아와서 기분은 무장해제 돼 있고, 솜사탕이 날 배신했다는 앙금은 거의 풀려있는 상황이다. 동생이 탈춤 공연 하느라 여의도 공원까지 왔는데, 솜사탕 하나쯤 먹어주면 완벽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지 않을까? 행사가 끝나고 공원을 나오는 길에 나는 작전대로 엄마에게 솜사탕을 사 달라고 졸랐다.


영우는 "무슨 솜사탕? 자장면이지~!" 했고, 엄마는 튕기는 척 하다가 결국 솜사탕 사 먹을 돈을 주셨다. 나는 솜사탕을 처음 보았던 어린 시절의 기분으로 돌아가 잔뜩 신이 나서, 솜사탕을 덥석 받아들어 한참을 먹지 않고 감상 했다. 분홍색에 크고 포동포동한 것이 정말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가끔 뜯어진 솜이불 사이로 보이는 이불 안에 솜덩어리 같다. 드디어 조심스럽게 크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솜사탕의 첫 한 입을 아주 크게 물어 뜯는 순간, 상상은 끝났다. 삼키는 동시에 거의 사라졌고, 조금 달달한 맛이 남았고 설탕의 찝찝함이 오래도록 입 안과 입 주위에 묻었지만, 아름다운 날씨와 뭉게 구름을 보며, 이 솜사탕을 저 구름에서 뜯어왔다고 생각 했다. 구름 맛이 그정도면 아주 훌륭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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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vicon of http://blueman88.egloos.com BlogIcon Blueman2013.09.09 13:12

    ㅎㅎ 무척 좋은 날이었나보네요.
    가을 솜사탕이라... 이제 가을로 접어드네요.
    좋은 한주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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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vicon of https://blog.sangwoodiary.com BlogIcon 상우2013.09.23 07:54 신고

      블루맨님, 추석연휴 잘 보내셨나요?
      월요일인데 다시 신체 리듬을 찾았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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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2013.09.10 10:52

    춤 추면서 솜사탕 만드는 아저씨 동영상이 생각나네요...
    http://youtu.be/MYsT5TiJs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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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vicon of https://blog.sangwoodiary.com BlogIcon 상우2013.09.23 07:56 신고

      아저씨, 마이클잭슨 음악에 맞추어 춤추는 아저씨 잘 보았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솜사탕도 멋있게 만드는 지 예술이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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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다경2015.11.07 21:56

    흐흐 이 글을 읽을땐 그렇지 너무 달고, 먹고나면 손이 매우 끈적끈적해지는 솜사탕...으...그래도 솜사탕을 들고있는 사진을 보니, 하얗고 폭신폭신한 솜사탕이 먹고 싶어지네요!ㅋㅋㅋ

    매년 운동회가 있는 날엔 아저씨가 하얀 봉지 속, 알록달록하고 폭신폭신해 보이는 솜사탕을 하늘위에 걸어놓았던 기억이 나요!
    그땐 솜사탕을 먹고 싶었지만 주머니 속에 돈이 없어, 군침만 흘리며 바라보고 있는데
    솜사탕 아저씨가 그런 나를 딱하게 생각했는지 '먹고싶니? 옛다! 이제 가라~'하며 만들다가 망한 솜사탕을 주셨던 생각이 나네요 하하...
    그땐 한 웅큼 떼어먹고 베어물어 손과 얼굴이 끈적끈적해져도 마냥 솜사탕을 얻었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했던 생각이나네요. 흐흐 솜사탕을 볼때면 항상 어린이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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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vicon of https://blog.sangwoodiary.com BlogIcon 상우2015.12.13 22:10 신고

      강다경님, 오랜만입니다.
      이글은 중3때 일기군요, 근데도 꽤 먼먼 옛일같이 느껴져요.
      글을 한동안 안써서 그럴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