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바지

2011. 8. 23. 08:01일기

<찢어진 바지>
2011.08.20 토요일

오늘따라 왠지 교복 바지의 움직임이 자유롭고, 다리를 마음껏 벌릴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교실에서 편한 바지의 느낌을 즐기기 위해, 마이클 잭슨처럼 문워크도 흉내 내고 허벅지를 뱅뱅 돌렸다.

교복 바지는 몸에 딱 맞아서 다리의 움직임이 한정돼 있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그렇지가 않았다! 아마 수업이 짧은 토요일이라서 마음이 가벼워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하며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1교시는 진로 교육으로 TV에서 박태환 선수의 이야기가 주르륵 나왔다. 악재를 딛고 다시 한번 세계선수권대회 1등을 한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선수를 보다가,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바지 아래쪽으로 무언가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 풀려, 삐쭉삐쭉 삐져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어, 이게 무슨 일이지?' 당황스러워서 자세히 살펴보니 가랑이 한가운데에 구멍이 퐁! 뚫려 있었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혹시 누가 본 것은 아니겠지?' 나는 좀 우울해졌다. '교복값도 비싼데 엄마한테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지?' 다행히 다리를 딱 붙이면 보이지 않는 부분이어서, 적당히 다리를 붙이고 군인처럼 빳빳이 걸으면, 구멍 난 데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웬만하면 움직이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었고 걸을 때는 불편하지만, 다리와 다리를 딱 붙여서 걸은 덕분에 4교시 내내 무사히 어떤 아이에게도, 바지에 난 큰 구멍을 들키지 않고 교문까지 나설 수 있었다. 함께 교문을 나서던 우석이가 "어떻게 하면 블로그로 그렇게 유명해질 수가 있니?" 하고 물었다. "음, 오랫동안 꾸준히 하면...", "상우야, 너 걸음걸이가 조금 이상해!"

"아, 지금 내가 좀 곤란한 상황이라서...", "무슨 일인데 그래? 말해 봐?", "절대 말하면 안 돼?", "응!", "내 바지에 구멍이 났어!" 한동안 우석이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우석이는 걱정스러운 듯이 "어떻게 괜찮겠어?" 하고 물었다. "몰라, 빨리 집에 가서 갈아입고 싶어. 걸음도 군인처럼 똑바로 걸어야 돼!" 나는 조심조심 각도를 맞추어 걷다가 편의점 앞을 지날 때, 토요일의 기분을 참지 못하고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아이스크림을 입가에 묻힌 채, 우석이와 TV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와 '슈퍼스타K'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그만 신이 나서 어떤 가수의 노래를 흉내 내 부르며 나비처럼 나풀나풀 춤도 추었다. 그런데 편의점 앞을 지나는 고양이가 놀라 도망을 쳤다. 나는 우석이에게 "쫓아가자~!" 말을 끝내기도 전에 쏜살같이 고양이를 쫓아 달렸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바지가 김밥 옆구리 터진 것처럼 완전히 찢어지고 말았다!

찢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