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동물원에 간 날 - 2탄
2010. 5. 6. 09:00ㆍ일기
<할머니와 동물원에 간 날 - 2탄>
2010.05.02 일요일
이제 동물원에는 마지막 하루해가 뜨겁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주홍빛으로 빛나는 해를 머리 위에 짊어지고, 우리는 이번 동물원에 클라이막스! 맹수들을 보러 갔다.
갈색 곰은 꼭 '시턴 동물기'에 나온 곰을 연상시키고, 엄청난 덩치이지만 꼭 덩치만큼이나 마음은 따뜻할 것 같았다. 온몸에 촉촉하게 젖은 땀이 햇빛에 빛나니, 꼭 야생의 곰을 보는 것처럼 신비하고 마음을 잡아끌었다.
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사각 철창에 표범, 치타, 재규어 같은 조금 작은 맹수들을 지나치다, 어느 순간 철창이 없어지고 큰 산같이 올록볼록한 지형이, 인도에서 멀리 떨어져서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여유롭게 앉아서 낮잠을 즐기고, 어깨를 웅크리고 사나운 눈빛으로 번뜩이는 호랑이들이 보였다!
호랑이는 특이하게도 몸을 잔뜩 숙여서 얼굴을 어깨보다도 아래로 내리고, 어깨뼈를 들썩이며 꼭 먹이를 노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꼭 하늘 높이 솟아오를 것 같던 호랑이는, 그 자세로 햇빛이 안 드는 그늘에 들어가서 낮잠을 자려고 털썩 옆으로 누워버렸다. 순간 웃음이 피식 나왔다. 사실 호랑이의 날카롭고 번뜩이는 모습보다는, 저렇게 누워서 장난치며 휴식을 취하는 것이 진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닐까? 행복한 듯이 다리를 앞뒤로 쫙 뻗고, 혀를 날름거리는 호랑이가 친근하게 보였다.
긴 호랑이 계곡을 지나고 무언가 새하얀 인형 같은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인형이 아니었다. 사각형의 나무판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앉아, 고개를 오른쪽으로 뻣뻣하게 돌리며 시퍼런 눈으로 '내가 너희보다 우월하다!' 하고 말하는 것처럼 위풍당당한 것은, 바로 백호였다! 백호는 그냥 호랑이와 달리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폭발적인 시선을 느끼듯이, 꼭 일부로 폼잡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조각 같은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백호의 파란 눈 안에는 온 하늘이 담겨 있는 것 같고, 백호의 시선도 사실은 사람들이 아니라 저 넓고 넓은 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이 꼭 돈을 모아서 신세를 벗어나려는 거리의 춤꾼 같아 보이는 건 왜일까? 씁쓸하고 안쓰러웠다. 호랑이나 곰은 한 쌍 씩 같이 있기라도 했지만, 저 하얀 백호는 홀로 쓸쓸히, 자신이 10만 분의 1 확률로 태어난 백호라는 이유로, 가족도 없이 '내일은 좀 더 나아지겠지!' 하면서 그냥 살아가는 것 같아 보인다. 나도 백호 꿈을 태몽으로 꾸고 난 호랑이띠라서 그런지,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저 백호를 대신해서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나가는 문에 얼마 안 남았을 때에 눈에 띈 것은 바로 사자들이었다. 사자 가족은 준비된 평원에서 무리를 이루어서 행복하게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아주 측은해 보이는 것이 가까이 가도 화를 내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내 또래 만한 아이들이, 사자들을 향해 돌을 던지는 것이었다. 이런~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 멈추게 하고 싶었지만, 그 아이들과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다행히도 아이들이 던진 돌에 사자는 맞지 않았고, 오후의 따뜻한 햇볕 아래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인간과 동물 모두가 사자처럼 편안한 모습과 마음으로 태연하게 낮잠을 잘 수 있다면, 세상은 풀리지 않는 일 없이 모두가 행복하리라! 나는 가족과 특히, 할머니와 동물원에서 보낸 하루가 꿈만 같았다. 할머니는 우리보다 더 순진한 어린이처럼 "물개야! 돌고래야!"를 크게 외치셨고, 보는 동물마다 입이 떡 벌어진 채로 사진기를 막 누르셨다. 나는 할머니 손을 잡고 동물원을 걸었으며, 고릴라 벤치에 앉아 할머니 어깨에 기대어 사진도 찍었다. 햇살과 땀에 절어 몸이 노골 노골 했지만, 동물원에 왜 가족이 함께 와야 하는지를, 새삼 느낀 감사한 하루였다.
2010.05.02 일요일
이제 동물원에는 마지막 하루해가 뜨겁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주홍빛으로 빛나는 해를 머리 위에 짊어지고, 우리는 이번 동물원에 클라이막스! 맹수들을 보러 갔다.
갈색 곰은 꼭 '시턴 동물기'에 나온 곰을 연상시키고, 엄청난 덩치이지만 꼭 덩치만큼이나 마음은 따뜻할 것 같았다. 온몸에 촉촉하게 젖은 땀이 햇빛에 빛나니, 꼭 야생의 곰을 보는 것처럼 신비하고 마음을 잡아끌었다.
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사각 철창에 표범, 치타, 재규어 같은 조금 작은 맹수들을 지나치다, 어느 순간 철창이 없어지고 큰 산같이 올록볼록한 지형이, 인도에서 멀리 떨어져서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여유롭게 앉아서 낮잠을 즐기고, 어깨를 웅크리고 사나운 눈빛으로 번뜩이는 호랑이들이 보였다!
호랑이는 특이하게도 몸을 잔뜩 숙여서 얼굴을 어깨보다도 아래로 내리고, 어깨뼈를 들썩이며 꼭 먹이를 노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꼭 하늘 높이 솟아오를 것 같던 호랑이는, 그 자세로 햇빛이 안 드는 그늘에 들어가서 낮잠을 자려고 털썩 옆으로 누워버렸다. 순간 웃음이 피식 나왔다. 사실 호랑이의 날카롭고 번뜩이는 모습보다는, 저렇게 누워서 장난치며 휴식을 취하는 것이 진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닐까? 행복한 듯이 다리를 앞뒤로 쫙 뻗고, 혀를 날름거리는 호랑이가 친근하게 보였다.
긴 호랑이 계곡을 지나고 무언가 새하얀 인형 같은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인형이 아니었다. 사각형의 나무판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앉아, 고개를 오른쪽으로 뻣뻣하게 돌리며 시퍼런 눈으로 '내가 너희보다 우월하다!' 하고 말하는 것처럼 위풍당당한 것은, 바로 백호였다! 백호는 그냥 호랑이와 달리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폭발적인 시선을 느끼듯이, 꼭 일부로 폼잡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조각 같은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백호의 파란 눈 안에는 온 하늘이 담겨 있는 것 같고, 백호의 시선도 사실은 사람들이 아니라 저 넓고 넓은 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이 꼭 돈을 모아서 신세를 벗어나려는 거리의 춤꾼 같아 보이는 건 왜일까? 씁쓸하고 안쓰러웠다. 호랑이나 곰은 한 쌍 씩 같이 있기라도 했지만, 저 하얀 백호는 홀로 쓸쓸히, 자신이 10만 분의 1 확률로 태어난 백호라는 이유로, 가족도 없이 '내일은 좀 더 나아지겠지!' 하면서 그냥 살아가는 것 같아 보인다. 나도 백호 꿈을 태몽으로 꾸고 난 호랑이띠라서 그런지,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저 백호를 대신해서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나가는 문에 얼마 안 남았을 때에 눈에 띈 것은 바로 사자들이었다. 사자 가족은 준비된 평원에서 무리를 이루어서 행복하게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아주 측은해 보이는 것이 가까이 가도 화를 내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내 또래 만한 아이들이, 사자들을 향해 돌을 던지는 것이었다. 이런~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 멈추게 하고 싶었지만, 그 아이들과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다행히도 아이들이 던진 돌에 사자는 맞지 않았고, 오후의 따뜻한 햇볕 아래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인간과 동물 모두가 사자처럼 편안한 모습과 마음으로 태연하게 낮잠을 잘 수 있다면, 세상은 풀리지 않는 일 없이 모두가 행복하리라! 나는 가족과 특히, 할머니와 동물원에서 보낸 하루가 꿈만 같았다. 할머니는 우리보다 더 순진한 어린이처럼 "물개야! 돌고래야!"를 크게 외치셨고, 보는 동물마다 입이 떡 벌어진 채로 사진기를 막 누르셨다. 나는 할머니 손을 잡고 동물원을 걸었으며, 고릴라 벤치에 앉아 할머니 어깨에 기대어 사진도 찍었다. 햇살과 땀에 절어 몸이 노골 노골 했지만, 동물원에 왜 가족이 함께 와야 하는지를, 새삼 느낀 감사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