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동물원에 간 날 - 1탄

2010. 5. 5. 08:30일기

<할머니와 동물원에 간 날 - 1탄>
2010.05.02 일요일

과천 동물원 입구에서 표를 내고 들어서니 "아, 이제 동물원에 확실히 왔구나!"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우리 가족은 아침 내내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한 배낭씩 둘러메고 지하철을 타고 대공원 역에서 할머니와 만나, 동물원으로 향했다.

그 길이 너무 멀어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코끼리 열차를 타고 매표소 입구까지 가는 길은, 상쾌한 오월의 바람에 가슴이 빵~ 부풀어 터질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눈부셨다. 오랜만에 갠 날씨는 100년 만에 경험한 것처럼 푸르고 새로웠다.

할머니와 동물원에 간


동물원에 들어서자 <아프리카 어드벤쳐> 간판 문이 눈에 띄었고, 물소와 기린을 볼 수 있는 전망대와 분홍빛과 하얀빛이 우아한 홍학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홍학 옆에는 기린이, 긴 목과 다리를 쭉 뻗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특별히 기린을 보기 위해 만들어진 원두막에 올라가 기린을 구경하였다. 거기엔 사람들이 많았으나, 나는 몸을 웅크려 뚫고 나가 좋은 자리를 찾았다. 서너 마리의 기린은 먹이통에서 먹이를 한가롭게 먹고 있었다.

제일 키가 큰 엄마처럼 보이는 기린은 자기를 보는 인간들이 신기한지, 원두막 앞에 서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람들을 쳐다보며 눈을 꿈뻑꿈뻑 거렸다. 그런데 꼭 병든 것처럼 얼굴과 목 주변에 두드러기 같은 것이 나 있었다. 기린은 앞에 있는 나무를 아이스크림이라도 되는 것처럼, 긴 혀를 쑥 내밀어서 핥았다. 그리고 갑자기 뒤를 돌아 친구들과 같이 여물통에 얼굴을 묻고, 커다란 알사탕이 입 안에 있는 것처럼 한쪽 볼을 부풀렸다가, 다른 쪽 볼을 부풀렸다가 하면서 밥을 질꺽질꺽 씹었다. 나는 왠지 기린이 하늘만 보고, 자기 발밑에 펼쳐진 광활한 땅은 보기 어려울 것 같아서, 긴 목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우와! 저게 다 뭐야?" 하시며 계속 사진기를 눌러대셨다. 우리는 새장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우리가 아주 어릴 적에 왔을 때는 출입문이 닫혀 있었는데 지금은 열려 있었다. 꼭 철창이 서커스 천막처럼 아주 거대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새들이 출입문을 열어놓으니 날아서 나갈 수도 있고, 사람들을 위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새들은 이 안에서도 충분히 자유로워 보였다. 철창에 크기가 엄청나서 새들도 그렇게 넓은 하늘을 욕심내지는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소나무 둥지 위에 있는 학은 평화로워 보였고, 주황색 햇살을 받으며 날개로 하늘을 슈웅~! 가르는 모습이 행복 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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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돌고래쇼장으로 발걸음을 급히 옮겼다. 사람이 워낙 많아서 역시나 표가 매진되었다. 그런데 아빠가 운좋게 딱 한장 남은 표를 구하셨다. 할머니와 나와 영우는 앞줄에 자리를 잡고, 엄마, 아빠는 맨 구석진 곳에서 관람하셨다. 물개와 돌고래 쇼는 재미있었다. 나는 특히 돌고래를 보면 마음이 진정되고 편하다. 돌고래들은 정말 영리하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조련사들이 연기를 잘할 때마다, 주머니에 먹이통에서 먹이를 던져 주는 것을 보면, 아까 전에 새들처럼 자유로워 보이지가 않았다.

조련사가 돌고래 등에 서핑보드 타듯이 타고, 푸촤아~! 물을 가르며 질주하는 것이 시원했고, 다섯 마리의 돌고래가 물속에서 탐방 퉈어어~! 점프할 때, 매끄르르 빛이 나며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돌고래들이 꼬리를 들어 우리에게 인사하는 모습이, 정말로 마음이 통하는 것 같아 신기하고 인상깊었음에도, 나는 예전처럼 돌고래 쇼가 꼭 환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돌고래에게 먹이를 주며 맹훈련하겠지만, 혹시 그것이 돌고래가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어릴 때처럼 마냥 흥분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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