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잉어 뽑기

2010. 5. 13. 16:00일기

<왕잉어 뽑기>
2010.05.11 화요일

오늘은 1년에 한 두 번 열리는 야시장이, 4단지에서 열리는 날이다. 여러 가지 볼거리와 먹을거리들이 가득해서, 우리 반은 아침부터 야시장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친한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만날 시간을 정했다. 나와 석희도 7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었는데, 석희가 사정이 있어서 나오지 못하여, 영우와 엄마를 졸라 산책하러 나갔다.

4단지에 들어서니 색색의 천막이, 4단지 시작 부분에서 도로 끝 부분까지 이순신 장군의 일자진을 친 듯 휘황찬란하였다. 천막마다 여러 가지 노점상과 즉석 음식점이 나와서, 밝게 핀 등불 아래 오색으로 빛나는 물건들을 잔뜩 풀어놓았다. 책과 장난감, 아이스크림과 문어 빵, 떡볶이, 어묵, 통닭, 작은 바이킹, 술과 안주 가게, 금 매매 하는 곳, 그리고 한약재와 초밥 파는 곳까지 눈이 어지러웠다.

나는 그중에서도 꼭 하고 싶어 벼르던 것이 있다. 바로 <뽑기>이다. 오늘 오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어떤 아이들 한 무리가 한 천막 앞에서 뭉쳐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왠지 궁금하여서 그 옆으로 슬쩍 끼어들었다. 간판에 '추억의 뽑기'라고 쓰여 있어서, 옛날에 이사 오기 전 동네에서 하던 뽑기가 가물가물 생각이 났다. 그런데 그 뽑기와는 많이 달랐다.

일단 번호가 1에서 100까지 적힌 번호판 위에, 상품의 이름이 적힌 나무도막을 번호 칸 안에 맘대로 놓는다. 그리고 제비뽑기를 하여서 나온 번호 위에 상품 이름이 겹쳐 있으면, 상품 모양의 설탕 과자를 준다. 옆에서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아휴~ 찡그리며 주먹을 쥐는 아이, 와~ 얼굴에 생기가 도는 아이! 모든 뽑기 놀이가 다 그렇듯, 절망과 기쁨이 교차하는 재미있는 놀이인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진짜로 한다고 생각하니 100%가 아니라 꽝도 있기 때문에, 만약 실패하면 천 원을 생으로 날리는 일이었다.

간판에는 '기쁨과 아쉬움을 드리는 뽑기'라는 말이 쓰여있었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아쉬움'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새겨져서 더 두려워졌다. 엄마는 이런 내 걱정을 아셨는지 "한 번 해보는 것도 경험이지!" 하고 내 어깨를 탁~ 치셨다. 나는 눈을 감고 될 대로 되라 하는 심정으로 제비를 뽑았다. 살짝 눈을 떠보니 56이라는 번호가 쓰여있었다. 나는 천천히 내 번호표를 바라보았다. 56번... 주인아저씨의 놀라는 소리와 함께 56번에는 왕잉어가 있었다!

순간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제일 작은 선물 하나라도 걸리면 기도라도 드리려고 했는데, 전혀 뜻하지 않게 이 집에서 제일 큰 왕잉어 설탕 과자가 나온 것이다. 양팔을 써서 안아줘야 했던 왕잉어는, 먹기에 너무 아까워 장식용으로 써야겠다. 오늘 야시장에서 나와 영우가 자랑스럽게 들고 가던 왕잉어는 인기가 그만이었다. 왕잉어를 들고 가는 곳이면, "와와~!" 어김없이 감탄이 쏟아져나와, 꼭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랄까? 별거 아니지만 남보다 우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야시장을 몇 번씩 돌아다녔다.

왕잉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