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 맞는 친구
2009. 10. 15. 09:00ㆍ일기
<주사 맞는 친구>
2009.10.14 수요일
학교 끝나고 친한 친구 석희가, 상가에 있는 소아과에 독감 예방 주사를 맞으러 간다고 했다. 석희가 "상우야, 어차피 집에 가는 길인데 나랑 병원에 같이 가주면 안될까?"해서, 나는 흔쾌히 함께 갔다.
병원 문을 들어서니 석희 할아버지께서 미리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석희는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나, 주사 맞기 싫은데, 꼭 맞아야 돼?" 하며, 할아버지 무릎에 덥석 올라앉아, 어린아이처럼 어깨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난 그걸 보고 흐훗~ 웃음이 쏟아졌다. 대기실 소파에 앉아 석희에게 "주사가 무섭지는 않니?"하고 물었다. 그러자 석희는 할아버지 앞에서 아기처럼 촐랑대던 목소리와는 다르게, 원래 굵은 목소리로 돌아와 당차게, "내가 아기도 아니고, 왜 주사를 겁내?" 하며 입을 쑥 내밀었다. 그때 간호사 선생님이 석희를 부르고 진료실 앞 의자에 앉아 대기하라고 하셨다.
의자에 앉아 석희가 나를 올려다보며 "상우야, 나, 사실 주사가 무서워!" 하며 온몸을 한번 스르륵 떨었다. 그렇지 않아도 호리호리하고 하얀 석희의 얼굴이, 순간 파래지는 것처럼 보였다. 석희가 "나는 이 세상에서 치과랑 주사가 제일 싫어! 저 비명 소리를 들어 봐!" 하며 고개를 수그리니까, 석희의 줄무늬 옷마저 순간 죄수복처럼 절망적으로 보였다.
나는 "저건 어린 아기들 소리란다!" 하며 오른손 바닥을 펴 모으고 석희 등을 둥글둥글 어루만졌다. 그리고 옛날 생각이 났다. 처음 치과에 가 치료를 받을 때였다. 이를 때우는 간단한 치료였지만, 이상하게 성공 가능성이 없는 큰 수술을 받는 것처럼 불안에 덜덜 떨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게 마지막 풍경처럼 간절한 기분이었다. 그때 엄마가 침대에 누워 치료받는 내 발을 만져주셨다.
나는 혼자 어둡고 끝없는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는데, 엄마가 발을 만져주시자 신기하게도 그 구덩이에 빛이 들어와 나를 위로 끌어 올려주는 기분이 들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우울하거나 겁이 날 때 혹은 불안에 떨 때, 어루만져 주는 것이 얼마나 큰 효과가 있는지 크게 알았다. 그 생각을 하며 난 석희 등을 살살 어루만져 주었다. 석희는 확 일어나 진료실로 들어갔다. 석희는 마치 피난민들 틈에 껴서 서로 엇갈리는 가족처럼 "상우야!"하고 부르며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석희가 들어가고, 마치 가족을 수술실로 보낸 것처럼 마음의 방 중 몇 개가 얼어붙은 채로, 대기실 소파에 앉아 석희를 기다리며, 양옆으로 쫙 벌린 다리 사이로 고개를 푹~ 숙이고 기도하듯 두 손을 꼭 맞잡고, 오른 발꿈치를 들어 땅을 툭툭툭~ 치고 흐음~ 타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석희가 진료실 문을 열고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다시 내 앞에 나타났을 땐, 나도 모르게 손뼉을 쳐주고 안아주고 싶을 만큼 석희가 장해 보였다.
2009.10.14 수요일
학교 끝나고 친한 친구 석희가, 상가에 있는 소아과에 독감 예방 주사를 맞으러 간다고 했다. 석희가 "상우야, 어차피 집에 가는 길인데 나랑 병원에 같이 가주면 안될까?"해서, 나는 흔쾌히 함께 갔다.
병원 문을 들어서니 석희 할아버지께서 미리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석희는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나, 주사 맞기 싫은데, 꼭 맞아야 돼?" 하며, 할아버지 무릎에 덥석 올라앉아, 어린아이처럼 어깨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난 그걸 보고 흐훗~ 웃음이 쏟아졌다. 대기실 소파에 앉아 석희에게 "주사가 무섭지는 않니?"하고 물었다. 그러자 석희는 할아버지 앞에서 아기처럼 촐랑대던 목소리와는 다르게, 원래 굵은 목소리로 돌아와 당차게, "내가 아기도 아니고, 왜 주사를 겁내?" 하며 입을 쑥 내밀었다. 그때 간호사 선생님이 석희를 부르고 진료실 앞 의자에 앉아 대기하라고 하셨다.
의자에 앉아 석희가 나를 올려다보며 "상우야, 나, 사실 주사가 무서워!" 하며 온몸을 한번 스르륵 떨었다. 그렇지 않아도 호리호리하고 하얀 석희의 얼굴이, 순간 파래지는 것처럼 보였다. 석희가 "나는 이 세상에서 치과랑 주사가 제일 싫어! 저 비명 소리를 들어 봐!" 하며 고개를 수그리니까, 석희의 줄무늬 옷마저 순간 죄수복처럼 절망적으로 보였다.
나는 "저건 어린 아기들 소리란다!" 하며 오른손 바닥을 펴 모으고 석희 등을 둥글둥글 어루만졌다. 그리고 옛날 생각이 났다. 처음 치과에 가 치료를 받을 때였다. 이를 때우는 간단한 치료였지만, 이상하게 성공 가능성이 없는 큰 수술을 받는 것처럼 불안에 덜덜 떨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게 마지막 풍경처럼 간절한 기분이었다. 그때 엄마가 침대에 누워 치료받는 내 발을 만져주셨다.
나는 혼자 어둡고 끝없는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는데, 엄마가 발을 만져주시자 신기하게도 그 구덩이에 빛이 들어와 나를 위로 끌어 올려주는 기분이 들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우울하거나 겁이 날 때 혹은 불안에 떨 때, 어루만져 주는 것이 얼마나 큰 효과가 있는지 크게 알았다. 그 생각을 하며 난 석희 등을 살살 어루만져 주었다. 석희는 확 일어나 진료실로 들어갔다. 석희는 마치 피난민들 틈에 껴서 서로 엇갈리는 가족처럼 "상우야!"하고 부르며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석희가 들어가고, 마치 가족을 수술실로 보낸 것처럼 마음의 방 중 몇 개가 얼어붙은 채로, 대기실 소파에 앉아 석희를 기다리며, 양옆으로 쫙 벌린 다리 사이로 고개를 푹~ 숙이고 기도하듯 두 손을 꼭 맞잡고, 오른 발꿈치를 들어 땅을 툭툭툭~ 치고 흐음~ 타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석희가 진료실 문을 열고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다시 내 앞에 나타났을 땐, 나도 모르게 손뼉을 쳐주고 안아주고 싶을 만큼 석희가 장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