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이웃 할아버지

2009. 10. 5. 09:40일기

<부드러운 이웃 할아버지>
2009.10.03 토요일

나는 엄마, 아빠가 최근에 알고 친분을 갖게 되신 어떤 할아버지 댁을 방문하였다. 아빠, 엄마가 월요일 저녁마다 공부하는 학당에서 만난 할아버지인데, 우연히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이었던 것이다.

그 할아버지 댁은 3단지였는데,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니 따뜻하고 편안한 인상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우리를 바로 맞아주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두 분만 사시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거실 벽과 책장 유리면에, 귀여운 아기들 사진과 가족사진이 수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께 "권상우입니다!"하고 인사를 드리자, 학원을 몇 개나 다니느냐고 물으셔서, 안 다닌다고 했더니, "잘했네! 오랜만에 학생다운 학생을 보는구나!" 하며 웃으셨다.

할아버지는 영우와 나를 번갈아 보시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우리 처남 사는 포천에 처남이 하는 농장이 있는데, 거기 토끼, 개, 닭은 물론이고 당나귀도 있는데, 당나귀가 재미있게 입 모양을 이렇게 하면서 운단다!" 하셨다. 그러면서 입을 자유롭게 이쪽 저쪽 움직이며 "비히히힘~ 비히후에후히!"하고 당나귀 소리를 실감 나게 흉내 내셨다. 난 나도 모르게 흐후~ 입이 벌어지며, 어린 우리에게 엄하게 대하지 않고, 편하게 대하시는 좋은 할아버지란 생각이 들었다.

아빠와 엄마와 할아버지 내외는 마루에 작은 상을 놓고 둘러앉아, 할머니께서 깎아주신 유기농 사과와 배를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셨다. 그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먼바다에서 반갑게 울려오는 뱃고동 소리처럼 깊이 있고 부드러웠다. 나는 소파 위에 점잔을 빼고 앉았지만, 소파가 너무 폭신해서 몸이 소파처럼 펑퍼짐해지는 것 같았고, 할아버지의 풍부한 세상 경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까, 그 소리가 자장가처럼 나른하게 느껴져 자꾸 드러눕고 싶어졌다.

그런데 지루해진 영우가 참지 못하고, 소파에서 두 팔을 벌리고 누워 깃털처럼 미끄러지는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계속 미끄러지기를 하다가, 소파 위에서 물구나무를 서서 배꼽을 보이고, 나한테 달려들어 두 팔을 내 목에 착~ 감고, 내가 나뭇가지인 것처럼 원숭이 자세로 딱 붙었다가, 다시 소파 위로 올라가 아래로 미끄러지고, 다시 누워 발을 동동 구르고 일어서서 뛰어내리기까지 했다.

당황한 엄마는 할아버지 말씀을 들을 땐 빙그레 웃으셨지만, 고개를 돌려 영우를 무서운 눈초리로 노려보며 주의를 주셨다. 그러나 영우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원숭이처럼 날뛰자, 손으로 영우를 붙잡고 말리셨다. 영우가 날뛰는 것을 보니, 사실 나도 뛰놀고 싶은 생각이 슬그머니 올라왔지만, 장남인 나마저 그래 버리면 할아버지께서 우리 집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걱정이 되어 계속 바른 자세로 앉아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괜찮아요, 애는 애답게 놀아야지!" 하셨지만, 엄마가 계속 영우와 옥신각신하는 걸 보다 못해, 나는 "헤~ 너무 폐가 되는 것 같아서요. 놀이터에 나갈게요~" 하고 일어서서 영우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데 이상하게 놀이터에 나와서도, 할아버지의 자상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특히 할아버지께서 완성되면 데려가 주시겠다는 포천 농장 생각이 계속 들었다. '좋은 분 같은데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고 싶다! 우선 영우 철 좀 들이고 나서!'하고 생각했다.

부드러운 이웃 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