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박물관, 아를 식물원 - 여름 방학 견학문

2009. 8. 25. 08:51일기

<중남미 박물관, 아를 식물원 - 여름 방학 견학문>
2009.08.22 토요일

1. 중남미 조각 공원

고양시에 있는 중남미 문화원 박물관은,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나누어진 두 개의 건물과 야외 조각 공원, 중간에 작은 식당으로 이루어진 아담한 곳이었다. 미술관, 박물관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고, 작품을 만지거나, 작품 앞에 그어놓은 빨간 선을 넘으면 안되었는데, 영우가 자꾸 그것을 어기는 바람에 혼쭐이 났다.

불안한 마음으로 감상하고 나와서, 야외 조각 공원으로 들어설 때야 비로소 숨을 크게 쉬며 입을 벌렸다. 조각 공원으로 들어가는 아치 모양의 새빨간 벽돌문을 통과할 때,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기분이 들어 눈이 한바탕 빙그르르 돌았다. 거기는 공원이 아니라 꼭 사원 같았다. 공원은 평평하지가 않고, 신전으로 향하는 것처럼 계단과 언덕이 가파르게 이어졌다.

맨 꼭대기에는 '태양의 천사'라고 이름 붙은 동그란 금속 조각이, 진짜로 태양빛을 반사하여 엄청나게 번쩍거리고 있었다. 태양의 천사 앞까지 이르는 동안 양옆으로 늘어선 기이한 모양의 조각들은, 신전을 지키는 수호 조각처럼 엄숙한 느낌이 흘렀다. 태양을 숭배했던 중남미 조상의 뜨거운 마음이, 조각 하나하나에 서려 이상하게 함부로 할 수 없는 차가운 기운마저 감돌았다.

중남미 박물관, 아를 식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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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따꼬

박물관 앞에 있는 식당에서는 쓴 커피 냄새가 진동하였다. '엘 콘도르 파사' 음악이 흐르고, 식당 벽에 걸린 그림들은 밖으로 뛰어나올 것처럼 색깔이 강렬하고 진했다. 확실히 여백이 있고 편안한 우리나라의 그림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그래서 그런지 이 식당의 주 메뉴인 '따꼬'는 한마디로 톡 쏘는 맛이었다. 따꼬는 우리나라에서 타코라고 불리는 멕시코 음식으로, 얇고 동그란 밀가루 전 위에 고기, 양파, 빨간 파프리카, 당근을 얹고, 반으로 접어서 보쌈처럼 압~ 먹으면 된다.

따꼬를 한 접시 시켰는데, 작은 따꼬 하나가 부채꼴 모양으로 딱 네 조각 나뉘어 있었다. '에게, 겨우 요거야?' 나는 배가 몹시 고팠지만, 우리 가족 한 사람 앞에 한 조각씩만 돌아가서, 그거라도 어디냐 하고 뜨거운 따꼬 한 조각을 냉큼 집었다. 나는 챙이 넓은 멕시코 모자를 쓴 상상을 하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꼬를 한입 베어 물고, 헙헙헙~ 씹으며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매콤한 맛과 아주 얇은 밀가루 맛을 천천히 느끼고 있을 때, 영우는 맵다고 양파를 뱉어내기에 바빴다. 나는 "넌 어른이 되려면 멀었구나! 먹기 어려우면 이 형아가 먹어줄까?" 하며 영우 걸 노렸지만, 욕심쟁이라는 핀잔만 돌아왔다. 딱 한 조각 만큼만 맛볼 수 있었던 따꼬의 맛처럼, 문화 박물관에서의 체험은 더 넓은 세계로 나가고 싶다는 욕망을 깨워주는 것 같다. '언젠가 진짜 멕시코에서 따꼬 한판을 다 먹어볼 거야!' 하는 생각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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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를 식물원

이름 모를 중남미 전사들의 영혼에 쫓겨 다니다, 근처에 아를 식물원으로 옮겨온 나는 멧돼지처럼 자유로워졌다. 드넓은 풀밭과 향기로운 꽃과 나무들, 금방이라도 토끼가 뛰어나올 것만 같은 숲 속 돌계단, 다람쥐들이 맘대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무지개 다리 같은 화려한 나뭇가지들! 나랑 영우는 풀밭에 있는 버섯들이 뽑혀나갈 정도로 마음껏 뛰고 또 뛰었다. 우리는 역시 감상 체질이 아니라, 뛰놀기 체질인가 봐!

중남미 식당에서 먹었던 따꼬 한 조각의 아쉬움도, 엄마가 정성껏 싸오신 도시락으로 다 풀었다. 높은 언덕 정자에서, 돗자리를 펴고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 높은 산을 마주 보며 김치하고, 콩나물하고, 햄, 시금치 반찬의 맛난 도시락을 먹으니까, 세상이 다 내것 같았다. 아마 식물원에서 가족과 도시락을 먹어본 사람은, 그 행복한 느낌을 알 것이다.

아를 식물원 안에는, 우리 말고도 몇 가족이 더 있었는데, 그렇게 사람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여기는 어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직접 가꾸는 허브 식물원인데, 일반인들을 위해 개방한 지 얼마 안 된 곳이라고 한다. '우리도 언젠가 집에 이런 식물원이 있는 마당을 만들자, 개도 키우자, 토끼도 키우고!' 그런 상상을 하면서 구름이 흐려지고 빗방울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 칼칼 웃고 식물원이 우리 집인 것처럼 뛰어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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