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와 수박

2008. 7. 8. 08:59일기

<외할아버지와 수박>
2008.07.05 토요일

기말고사를 마치고 오랜만에 서울에 계신 외할아버지댁을 찾아나섰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날씨가 엉망이었다. 비가 오려면 시원하게 올 것이지, 약 올리게 툭툭 떨어지고 하늘은 곰팡이가 핀 것처럼 어둡고, 무덥고 습기가 차서 기분까지 꿉꿉하였다.

영우랑 나는 자꾸 짜증을 부리며 차 안에서 티걱태걱 싸웠다. 할아버지 사 드리려고 토마토 농장을 들렸는데 비가 와서 천막을 친 문이 닫혀 있었다.

시내로 접어드니까 차가 막혀 몇 시간을 꼼짝도 못하게 되었다. 꽉 막힌 도시 안에서 낡은 건물들 위로 번개가 빠방! 치고, 하늘은 더 새카매지고, 빗줄기가 신경질 부리듯 쏟아졌다. 영우랑 나는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었는데, 저녁이 되었고 푹 꺼지듯 배가 고팠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 사시는 동네는 촛불집회가 매일 열리는 광화문 바로 옆이었다. 우리는 전경 버스가 둘러싸인 도로와 좁은 골목길을 구석구석 뚫고 다니며, 할아버지 사다 드릴 토마토를 찾아보았다.

안 좋은 날씨처럼 잔뜩 인상을 찌푸린 전경 아저씨들이 늘어선 골목길을 몇 번씩 뱅뱅 돌며, 과일 가게를 찾기란 미로찾기처럼 힘들었다. 어렵게 골목 한 귀퉁이에 과일 가게를 찾아냈는데, 거기서 우리는 생각이 바뀌었다.

아빠가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힘이 없어서 무거운 수박을 사드시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수박이 어떨까? 하셨다. 나와 영우는 맞아! 그거야! 하면서 달려들어 크고 탱탱한 왕수박을 골랐다. 할아버지 댁에 도착해 자랑스럽게 수박을 내려놓았을 때, 나는 긴 시간을 달려온게 뿌듯했다.

왜냐하면, 할머니께서 "아이구, 그렇지 않아도 수박이 무거워서 올여름 들어 한 번도 못 사먹었는데 정말 잘됐구나!" 하셨고, 아프신 할아버지께서도 방글방글 웃으시며, 떨리는 목소리지만 또박또박 "오호~ 수박이 먹고 싶었는데~!" 하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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