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낭콩과 채송화

2008. 6. 30. 08:46일기

<강낭콩과 채송화>
2008.06.28 토요일

기말고사를 앞두고 나는 과학 과목 중 강낭콩 단원을 공부하였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서 문득 강낭콩의 한살이와 사람의 한평생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낭콩에 싹이 트고 줄기와 잎, 가지가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또 다른 씨앗을 남긴다. 이걸 사람의 한살이로 치면, 태어나고, 점점 자라나고 인생이 만발해지고, 자식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아무리 하찮게 보이고 값어치 없게 보일지라도, 생명이 처음 탄생할 때와 죽을 때까지의 과정이 모두 고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하느님이 신비해진다. 하느님은 가장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고 귀하게 만든 사람과, 말 못하고 단순한 식물의 한살이 과정을 똑같이 만드신 걸 보니, 공정하시구나!

순간 나는 2학년 때 썼던 관찰일지가 떠올라, 책꽂이에서 뒤적뒤적 찾아 꺼내 들고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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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 토요일>

나는 오늘 채송화 씨와 강낭콩 씨를 심었다.
먼저 마루에 신문지를 쫙 펴놓고, 화분 밑에 양파 그물을 깔아 놓고, 아빠는 베란다에서 어떤 화분을 들고 나왔다. 그 화분에는 흙이 두 개의 화분에 들어갈 만하게 있었다.
나는 흙을 촘촘히 중간 정도 쌓아올렸다. 그 위에 채송화 씨와 강낭콩 씨를 각각 화분에 심었다. '무럭무럭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라.'라는 마음으로 말하였다.

그리고 꽃씨를 다 심어 갈 때쯤에, 팻말을 붙이자고 했다.
그래서 아빠는 씨 봉투에 붙어 있는 이름을 뗘다가 붙였다. 그리고 집에서 쓰는 비커에 물을 담아서 식물에게 주고 베란다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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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6일 목요일>

처음에 나는 채송화 씨도 강낭콩 씨도 아주 안나는 줄 알았다.
지금껏 햇빛도 많이 주고 물도 너무 많이 주면 다 떠밀려 갈까 봐 적당히 주고 정성껏 잘 보살펴 주었는데 말이다.
나는 두 화분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런데 채송화를 심은 화분에 싹이 조금 돋아있었다. 나는 엄마와 아빠에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아빠는 이미 알고 있었고 엄마는 축하한다고 말했다.
나는 싹이 났으니 좀 더 정성껏 보살펴 주어야겠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보았다.
정말 작은 새싹이었다. 아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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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 일요일>

나는 오늘도 채송화와 강낭콩이 들어 있는 화분을 보았다. 채송화는 처음 폈을 때랑 다름없었다.

그런데 강낭콩 화분에 싹이 나 있었다. 그것은 마치 꽃봉오리 같았다.
허리가 할아버지처럼 구부러져 있었고, 봉오리 같은 부분에 점이 나 있었고 흙이 묻어 있었다. 마치 무당벌레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 싹이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허리만 나와 있어서 모양이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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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 월요일>

채송화는 아직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렇지만, 강낭콩은 아주 많이 변해있었다.

어떻게 변했냐면 할아버지 허리처럼 꼬부라져 있던 등이 조금씩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무당벌레처럼 있었던 부분도 조금씩 벌어졌는데, 마치 무당벌레가 날개돋이를 하는 모습 같았다. 그리고 그 틈에 잎사귀가 있었는데 반딧불의 전등 같았다.

나는 많이 컸구나 했다. 채송화 씨도 빨리 컸으면!



<4월 13일 목요일>

채송화는 아직도 변화가 없지만, 강낭콩은 무인도에 야자수처럼 보이게 컸다 개미들에 우산이자 그늘인 것 같다.
나도 그 강낭콩 싹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인자하고 부드러운 사람 말이다. 그리고 나도 그 푸른 잎사귀처럼 피어나는 새싹이 되고 싶다.
그런데 강낭콩 싹은 자라는 모습을 보면 죽은 싹이 다시 나는 것 같다. 풀이 죽어서 있다가 조금씩 위로 피는 걸 보니 말이다.
그리고 옆에 어린 새싹이 또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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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 화요일>

채송화 씨는 오히려 타락한 것 같다. 우리가 너무 잘 보살펴주지 못한 것 같아서 슬프다.

반면에 슬픔이 있으면 기쁨이 있다는 말처럼, 강낭콩 싹에 콩이 날 정도로 강낭콩이 많이 자라났다. 그리고 모든 곤충들의 대궐처럼 장대하고 우람하게 컸다.

채송화도 강낭콩처럼 우람하고 위대한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 채송화야, 잘 길러주지 못해서 미안해, 앞으론 잘 보살펴 줄게.

<4월 23일 일요일>

채송화는 아주 죽어버린 건 아닐까? 아니면 지금은 밤이라서 잘 안 보이는 걸까?
채송화는 처음부터 뭔가 꼬여버린 건 아닐까?
강낭콩은 탑처럼 근사하고 뾰족산처럼 우뚝 솟아있는데, 왜 채송화는 싹도 제대로 틔우지 못하고 죽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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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 토요일>

채송화는 아주 죽은 것 같아서 더 이상 관찰하기를 포기했다.
하지만, 강낭콩은 하늘을 뚫고 나갈 것처럼 우람하게 컸다. 마치 파라다이스 같았다.
그중에는 요즘 날씨가 너무 더워서 말라 비틀어진 것도 있었다. 그리고 꺾여 버린 것도 있다.

그것을 계속 보고 있으면 마치 무인도 같기도 하고, 내가 다른 세상에 와서 춤을 추고 있는 것도 같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처음에 가지가 났는데 그 가지 위에 또 가지가 나고, 그 위에 또 가지가 나고 계속 그렇게 진행되었다.

강낭콩 싹아!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부탁인데 제발 채송화 몫까지 쑥쑥 커다오! 우리가 도와줄 테니까, 나도 너처럼 열심히 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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