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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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 청소
2008.08.22 금요일 며칠 뒤 개학을 앞두고, 오늘은 우리 반이 학교에 청소하러 가는 날이다. 나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맘이 들떠서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우렁차게 외치고 집을 나섰다. 밖에는 나무젓가락처럼 길고 굵은 빗줄기가 '타닥타닥' 땅을 후려치듯 내리고 있었고, 아직 세상은 어둠 속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나는 준비한 우산을 펼쳐서, 파란 우산 지붕을 머리 위에 이고 힘차게 다리를 쫙쫙 벌려 걸었다. 학교 가는 길엔 아무도 없었고, 정문 앞에 다다르니, 8시 30분에 정문 앞에서 만나기로 한 경훈이가 아직 나와 있지 않았다. 밤새 내린 비가 아침까지 그치지 않아 세상은 물에 잠긴 듯, 온통 축축하고 싸늘했다. 하늘은 퀘퀘한 담배 연기 색깔이었고, 가끔..
2008.08.26 -
친구에게 낚이다!
2008.06.19 목요일 학교 끝나고 성환이와 수영이와 김훈이와 나랑 영우랑, 4단지 놀이터에서 온몸이 땀에 흠뻑 젖도록 뛰어놀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성환이와 수영이가 "우리 학원 때문에 집에 가야겠다!"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막 놀이가 물이 올라 재미있어지려고 하는데, 애들이 간다고 하니까, 섭섭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성환이와 수영이도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다음에 또 놀자!" 하며 놀이터 바깥으로 가버렸다. 그런데 훈이까지 "난 시간은 있지만 나도 가야겠어!" 하며 아이들 뒤를 따라 '쌩'하고 가버렸다. 나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맥이 탁 풀려 울상이 되어서, 영우랑 힘없이 미끄럼틀 타기만 반복하였다. 얼마가 지났을까? 갑자기 김훈이가 다시 놀이터 입구에 뽀르르 나타났다. 나는 반갑..
2008.06.21 -
책, 나의 둘도 없는 친구
2008.05.21 수요일 이 이야기는 내가 책과 어떻게 만났고, 내가 책과 어떻게 친해졌으며, 지금은 어떤 관계인지 정리해 본 글이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읽은 책은, 아주 얇고 그림이 있는 짧은 동화책이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가을날의 단풍나무 사진처럼 마음속에 따뜻하게 남아있다. 내가 잠이 잘 오지 않는 밤이나, 햇살이 내리쬐는 아침에, 엄마는 책을 읽어주셨다. 나는 엄마 곁에 딱 붙어 구름 침대에 누운 기분으로 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들곤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나는 이상하게도 친구가 없었다. 학교에 들어오면 책에서 읽은 것처럼 마음이 따뜻한 친구들을 만날 거라고 잔뜩 기대했는데, 막상 친구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책을 좋아해서 책에 나오는 인물들 이야기나, 대화를 흉내 내기 ..
2008.05.26 -
끔찍한 축구 시합
2008.05.16 금요일 4교시 체육 시간, 운동장에 나가 남자는 축구, 여자는 피구시합을 하였다. 남자들은 제일 축구 잘하는 아이 2명을 주장으로 뽑고, 뽑힌 주장 2명이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자기 팀에 넣고 싶은 애를 차례대로 집어넣었다. 팀이 다 채워져 가고, 나 말고 3명이 남았다. 나는 이성환이라는 애가 주장인 팀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성환이는 나를 자기 팀에 넣어주지 않았다. 시합 시작하기 전, 아이들은 나는 수비수 할 거야! 나는 공격 미드필더 할 거야! 하면서 역할을 정하는데, 나는 뭘 해도 못하니 딱히 할 게 없어 팔짱을 낀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런데 내가 몸집이 커서 공을 잘 막을 것 같다고, 아이들이 우르르 나를 골키퍼로 몰아세웠다. 난 마음속으로는 '어어, ..
2008.05.20 -
맘모스와 호랑이 놀이
2008.03.19 수요일 2교시 쉬는 시간, 나는 우석이를 만나러 옆반 4학년 3반 교실에 들러보았다. 거기서 우석이와 잠시 놀고 나가려는데,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였던 우빈이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나를 덮쳤다. 우빈이는 양팔로 자기 어깨를 감싼 자세로 계속해서 내 어깨를 밀어붙였다. 나는 어어 밀리다가 맞서서 같이 밀어붙였다. 우리는 팔짱을 낀 상태에서 코뿔소처럼 씩씩거리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밀고 밀리다가, 우석이까지 합세하여 밀기 놀이에 열을 올렸다. 갑자기 복도를 지나가던 고학년 형아들이 우리를 보더니, 나와 우빈이에게는 "뚱뗑이!" 하고 외쳤고, 우석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뼈다귀!" 하고 외쳤다. 그 말을 들은 우석이는 화를 내며 "나 뼈다귀 아니야~! 얘들도 뚱뗑이 아니구!" 하고..
2008.03.21 -
편지
2008.01.02 수요일 오랜만에 추위가 녹은 잔잔한 날씨였다. 피아노 학원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우리 집 우편함에 쌓여 있는 수북한 우편물 더미 속에서, 내 앞으로 온 편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크리스마스 때 내가 보냈던 편지에 대한 답장이, 어렸을 적 미술 학원 선생님에게서 온 것이다. 멋진 솔부엉이 우표도 함께 붙여져서! 선생님의 답장을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신기하게도 미술학원 시절의 기억들까지 한장 한장 책을 펼치듯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 이야기가! 5살 때던가, 내가 처음 미술학원에 들어가 적응을 못 하고 낑낑대다가, 바지에 똥을 쌌을 때, 나를 화장실로 데려가 번쩍 안아 들고 수돗물로 닦아주셨던 기억부터, 7살 졸업반 마지막 사진 찍을 때까지 나를 돌보아주셨던 기억들..
2008.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