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바(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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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장나게 추운 날
2009. 12.15 화요일 계단 청소를 마치고 교실을 나섰는데, 이미 아이들은 집에 가고 복도엔 아무도 없었다. 복도 창틈마다 차가운 바람이 위이잉 하고 새어나올 뿐! 바람은 복도를 물길 삼아 돌다가, 가스가 새듯이 흘러들어 복도 안을 불안하게 워~ 돌아다녔고, 나는 이 바람이 몸을 스르륵 통과하는 유령처럼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신을 때, 내 몸은 눈사태 같은 추위에 파묻혀버렸다. 나는 추위에 쪼그라든 몸을 최대한 빨리 일으켜 얼음처럼 딱딱한 신발을 후닥닥 갈아신었다. 정문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내려갈 때 내 몸은, 바람에 밀리는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바람을 가르는 운석처럼 타타타타~ 굴러 떨어졌다. 그러자 정문은 괴물처럼 입을 쩍 벌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더 큰 바람을 쿠후우..
2009.12.16 -
이웃 할아버지와 강아지똥
2009.10.16 금요일 나는 부드러운 이웃 할아버지 댁 인터폰을 눌렀다. "똥동 두루두루 삐익-"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구세요?" 하는 할머니 목소리가 달착지근하게 들려왔다. "할머니, 저 상우인데 기억하시나요?", "어! 그래, 그래~" "네~ 할아버지께서 제 블로그에 댓글로 무슨 책을 주신다고 하셔서 받으러..." 하는데, 그때 인터폰 너머로 따뜻한 할아버지 목소리가 뭉글뭉글 들리는 것 같았다. 문이 열리고 할아버지 댁으로 올라가니, "어어~ 들어와!" 하시며 할머니께서 반갑게 문을 여셨다. 할머니가 "할아버진 저기 계시단다!"하며 서재를 가리키시자, 막 할아버지는 강아지똥 책을 들고 마루로 나오고 계시는 중이었다. "안녕? 상우야! 앉거라! 밥은 먹었니?", "네, 먹고 왔어요.", "집에 엄마..
2009.10.19 -
갈매기의 습격
2009.06.13 토요일 우리 가족은 한참을 돌다가, 바닷가 솔밭 가장자리에 돗자리를 폈다. 솔밭은 한여름이 아닌데도, 캠핑 나온 가족들과 텐트로 빽빽하였다. "우리도 텐트를 가져올걸~" 하고 영우가 부러운 투로 말했다. "야영하는 거 아니고 고기 구워 먹으러 온 거잖아~" 아빠는 숯불을 피우기 시작하셨다. 먼저 발이 달린 우주선 같이 생긴 그릴 밑바닥에, 까맣게 그을린 숯을 집어넣고 불을 붙이셨다. 그런데 바람이 너무 힘차게 불어서 불은 잘 붙지 않고, 우리 머리카락만 이마가 당길 정도로 뒤로 넘어가며 날렸다. 불은 바람 때문에 좁쌀만 한 불씨만 남겼다가 꺼졌다가 했다. 나는 주위에 있는 나무껍질을 모아다 그릴 속에 자꾸 집어넣었다. 어느 순간 빨간 불꽃이 조금씩 피어오르다가, 드디어 하얀 연기가 바..
2009.06.15 -
던져라, 눈 폭탄!
2009.01.17 토요일 나는 오후 늦게 영우와 집 앞 놀이터로 나갔다. 소복소복 쌓인 눈을 밟으니 너무 행복해서 눈이 뒤집히는 줄 알았다. 뽀드득 치익~ 내리막길을 미끄러지자, 놀이터 입구에 우뚝 솟은 오두막 집이 보였다. "어! 저기 경훈이다!' 나는 오두막 옆쪽에서 걸어나오는 친한 친구, 경훈이와 동생 지훈이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나와 영우는 "툭 파사사~" 눈길을 제치고, 경훈이와 지훈이 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우리가 달려오는 걸 알아차린 경훈이가, 본능적으로 어깨를 움츠리며 지훈이에게 말했다. "쟤네들 분명히 우리한테 눈 던진다!" 경훈이 말이 딱 맞았다. 나는 경훈이에게, 영우는 지훈이에게 눈 뭉치를 던졌다. 내가 던진 눈이 경훈이 잠바에 "펑~!" 맞으며, 경훈이가 "오메~!" 하고 소..
2009.01.18 -
날씨가 추워져요!
2008.10.23 목요일 오늘,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놀랐다. 아침에 학교에 가려고, 아파트 입구를 나서며 경비 아저씨께 인사를 할 때, 갑자기 매서운 칼바람이 내 몸을 쓱~ 휩쓸고 갔다. 나는 너무 추워서 온몸이 핸드폰 진동처럼 즈즈즈즉 흔들렸다. 그리고 '후~' 숨을 한번 내뱉었는데, 입에서 입김이 눈보라처럼 흘러나왔다. 나는 속으로 '아! 그동안 그렇게 덥더니, 드디어 제대로 된 추위가 오는구나!' 생각했다. 깡 말라서 쪼글쪼글 비틀어진 나뭇잎들이 칼바람을 못 이기고 후두 두둑 떨어져 내렸다. 나는 다리를 오므리고 으으~ 하면서 걸었다. 영우는 아흐흐흐~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바람에 대항하듯,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걸었다. 자꾸 바람이 얇은 잠바 옷깃으로 스며들어 와서, 뼛속까지 관통하고 빠져나..
2008.10.24 -
아침
2008.03.04 화요일 4학년의 첫 아침이다. 나는 아주 당연한 일처럼, 다른 때보다도 훨씬 일찍 일어나, 아직 자고 있는 엄마를 깨워 밥 달라고 졸랐다. 엄마가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밥을 준비하시는 동안, 나는 졸음기를 이기지 못하고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잤다 깼다를 반복하였다. 집을 나선 시간은 7시 30분, 날은 흐리고 우중충했다. 게다가 공원 입구는 시커먼 구름과 안개가 깔려있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거대한 용이 엎드려 있는 것처럼 으스스한 느낌이 났다. 어제는 입었던 겨울 잠바가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땀을 많이 흘렸다. 그래서 오늘 얇은 잠바로 갈아입고 나왔더니, 이번엔 뼈가 으들들거릴 정도로 춥기만 했다. 나는 이게 학교 가는 길이 맞나? 의심이 들었다. 왜냐하면, 공원 길엔 학교 ..
2008.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