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바(15)
-
한겨울 밤에 물냉면
2007.12.27 목요일 저녁 8시, 방학을 맞이하여 아빠가 마침 배도 출출한데, 특별히 냉면을 사주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잠바를 입고 신났다고, 집 앞으로 나갔다. 엄마는 추운데 무슨 냉면이냐고 툴툴거리셨다. 영우도 냉면은 싫고 햄버거는 안 되겠느냐고 졸랐다. 아빠는 힘을 주어 "보통 냉면이 아니야. 특별 세일하는 오장동 함흥냉면이라구!" 하셨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으리으리한 고깃집 앞이었다. 영우는 "와! 갈비집이다!" 하며 좋아라고 펄쩍 뛰었다. 엄마는 "어디가 세일이야?" 하며 기웃기웃하셨다. 그때 아빠가 "봐! 저기, 냉면 세일!" 하며 입구에 붙어 있는 행사 세일 메뉴를 손가락으로 찾아내셨다. 고깃집 문을 열자마자 지글지글 고기 굽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람들도 바글바글 불판 앞에 둘러앉..
2007.12.28 -
2007.10.24 기다림
2007.10.24 수요일 학교에서 기침을 너무 심하게 해서 급식도 먹지 않은 채, 조퇴를 했다. 날씨는 화창했고 돌아오는 길은 견딜만했으나 문제는 집에 다 와서부터였다. 벨을 누르고 "상우예요, 상우예요!" 하며 몇 번씩 문을 땅땅 두드렸지만 돌아오는 건, 내가 누른 벨 소리가 집 안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뿐이었다. 나는 아무도 없음을 알고 어떻게 할 줄 몰라 한 동안 서있었다. 아무래도 오래 걸릴 것 같아서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층간 계단으로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엘리베이터 소리가 '띵' 하고 날 때마다 엄마가 아닐까 하고 살펴 보았지만, 대부분 우리 집이 있는 5층에서 서지 않고 다른 층에서 멈추었다. 나는 기다리다 못해 1층으로 내려가서 돌덩이처럼 무거운 가방과 잠바를 벗어..
2007.10.25 -
2007.01.03 싸늘한 운동장
2007.01.03 수요일 영어 수업을 마치고 도시락을 먹으려는데 방학이라서 교실 문들이 모두 잠겨 있었다. 그래서 운동장까지 밀리듯 가 보았다. 나는 운동장 스탠드에 자리를 잡고 앉아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날씨가 얼마나 추웠는지 이가 오들오들 떨리고 주먹밥이 얼음 덩어리처럼 차갑고 딱딱했다. 입을 벌릴 때마다 추위가 솔솔 들어와서 먹고 난 다음에 언 입을 손으로 닫아 주어야 했다.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 때문에 모래 바람까지 날려서 잠바로 도시락을 감싸고 먹어야 했다. 집 나온 거지가 이런 것일까? 눈물이 찔끔 났다. 그러나 내가 북극에 앉아 언 물고기를 먹고 있는 펭귄 같다는 기분이 들어 웃음도 났다. 엉덩이까지 얼어 집에 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언 몸을 이끌고 뚱기적 뚱기적 피아노 학원으로 갔다..
2007.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