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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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와 수업하는 아이들
2008.05.29 목요일 3교시 체육 시간이 끝나고 중앙 화단에서 실내화를 갈아 신는데, 화단 풀숲 여기저기에서 달팽이가 보였다. 실내화를 갈아신던 아이들은 달팽이를 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집어 올리기도 하고, 만져보기도 하였다. 달팽이를 자세히 보니, 조그만 게 귀엽기도 하고, 툭 튀어나온 까만 눈에 뭔가 닿으면, 눈을 살 속으로 집어넣었다가, 다시 쑥 나오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하나둘씩 제각기 달팽이를 몰래몰래 교실로 가져갔다. 수업 시간 내내 아이들은 달팽이를 나름대로 보관하며 수업을 들었는데, 나는 그 모습이 신기하여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떤 아이는 언제 준비했는지, 커다란 병뚜껑에 휴지를 깔고, 물을 적셔 그 위에 풀잎을 몇 장 얹어, 달팽이를 올려놓았다. 또 어떤 아이는 책상 위에..
2008.06.02 -
꼴찌를 위하여
2008.05.06 화요일 5일간에 기나긴 휴일이 끝나고 다시 학교 가는 날이다. 그리고 오늘은 운동회 날이기도 하고! 무거운 책가방은 벗어던지고, 모자를 쓰고 물병만 달랑 손에 들고 가니 발걸음이 가볍다 못해, 붕 뜨는 것 같았다. 아직 교실에는 아이들만 몇몇 와있고, 선생님은 안 계셨다. 나는 김훈이라는 아이와 미국 광우병 수입 소 이야기로 한숨을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교실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선생님께서 쌩하고 들어오셔서 칠판에 '운동장으로 나가기'라고 적어놓고 다시 급하게 나가셨다. 운동장에는 벌써 많은 아이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우리는 교장 선생님 연설을 듣고, 국민 체조를 하고 본격적으로 운동회에 돌입하였다. 오늘은 소 체육대회라서 그렇게 많은 행사는 없었다. 줄다리기, 각 반에서 모..
2008.05.07 -
전학 첫날
2008.04.28 월요일 나는 교탁 앞에 서서, 나를 지켜보는 수많은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듯 놀란 얼굴로, 눈을 다람쥐처럼 일제히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에, 이쪽은 서울에서 온, 어, 서울에서 온 거 맞니?" 하시며 선생님께서 뜸을 들이신 다음, "신능초등학교에서 온 권상우라고 한다!"하고 내 소개를 하셨다. 그러자 아이들은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오오~!"하며 바람 소리 같은 것을 내었다. 선생님께서 "상우야, 친구들한테 할 말 있니?" 하셔서, 나는 "네~."하고 웃으며 말을 시작했다. "얘들아, 안녕? 우리 앞으로 학교생활 같이 재미있게 잘해보자!" 나는 웃고 있었지만, 혹시나 아이들이 내가 다른 데서 왔다고 따돌리거나 무시..
2008.05.03 -
진단 평가 문제 없어!
2008.03.11 화요일 오늘 1교시부터 5교시까지 내내 진단 평가라는 시험을 보았다. 갑자기 보는 시험이라, 공부를 하나도 안 하고 보는 바람에, 조금 긴장을 했는지 등에 오싹 한기가 느껴졌다. 내 주위에 있는 아이들 얼굴도 하나같이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시험 직전까지 를 읽으며, 또 다른 긴장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무렴 진단 평가가 디멘터(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사들의 감옥인 아즈카반의 간수로, 거의 살인마에 가까움)보다 무서우랴? 그런데, 첫 번째 시험인 국어 과목부터 아주 쉬워서 '푸'하고 웃음이 나왔다. 모두 다 3학년 교과서에 나왔던 것들이라서, 시험을 친다기보다는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기분이었다. 인사하는 기분으로 시험 문제를 다 풀고 나서, 주위를 쓱 둘러보았더니 아이들 얼굴도 서서..
2008.03.12 -
선생님 눈에 맺힌 뜨거운 눈물
2008.02.14 목요일 오늘따라 선생님은 유달리 바빠 보이셨다. 내가 헐레벌떡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선생님이 오셨나 힐끔 교탁을 보았을 때, 의자에 선생님 외투가 걸려 있었고, 잠시 자리를 비우신 듯했다. 잠시 후 교실로 돌아오신 선생님은 어딘가 급히 전화를 거시더니, 3학년 연구실로 또 가버리셨다. 종업식 날조차 바쁘신 선생님이 나는 아쉽기만 했다. 나는 조금이라도 더 선생님의 모습을 눈에 담고 싶어, 오뚝이 눈알처럼 두 눈을 왔다갔다하며 선생님을 부지런히 쫓았다. 우리는 방송으로 교장 선생님의 따분한 연설을 들으며 종업식을 맞이하였다. 선생님은 오늘 좀 달라 보이셨다. 머리를 완전히 풀고 오셨기 때문이다. 항상 머리를 뒤로 깔끔하게 묶고 다니셨는데, 머리를 푸시니까 자유로운 대학생처럼 보이셨다. 내..
2008.02.15 -
길 잃은 양들
2007.11.30 금요일 박영은 선생님께서 이틀째 안 나오고 계신다. 어제는 교사 연수 때문에 못 나오셨고, 오늘은 작은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못 오셨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반은 다른 때보다 시끄럽고 어수선하다. 한 교시마다 다른 선생님들께서 교대로 봐 주시기는 하지만, 틈만 나면 여기저기 흩어져서 모이를 쪼고 짹짹짹 떠드는 참새들처럼 질서가 없다. 단, 1학기 임시 선생님이셨던 서미순 선생님이 들어 오실 때만 빼고. 4교시 체육 시간이 되자 우리 반은 어떤 선생님이 오실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선생님은 들어오지 않으셨다. 우리 반 아이들은 점점 떠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속닥속닥 재잘재잘하던 소리가 갈수록 거세게 번지면서 툭탁툭탁 캉캉캉 천둥소리처럼 바뀌더니 교실이 코끼리 발 구르듯..
2007.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