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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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한 날
2009.06.15 월요일 나는 아침부터 이상한 꿈에 시달리다, 어느 순간 간신히 눈을 떠서 시계를 보았다. 오전 8시 40분! 순간 방안이 흔들리도록 "으악~ 완전 지각이다, 망했다~!" 하고 소리치며, 방바닥에 쌓여 있는 옷을 아무거나 입고, 가방을 들고 뛰어나갔다. "어? 상우야, 그냥 쉬지~." 하시는 엄마의 말소리를 뒤로한 채. 학교 가는 아이는 아무도 없고, 아파트 입구에서 엄마와 손을 흔들며, 유치원 버스를 타는 어린아이들을 보니 왠지 쓸쓸해졌다. 그보다 더 마음을 괴롭히는 건, 아무리 빨리 걸어도 지각을 면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급하게 뛰어나오느라, 난 내가 밤새 아팠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걸을수록 기침이 콜록콜록 쏟아지고, 머리는 산처럼 무겁고, 하아하아~ 가슴이 쥐어짜듯 아팠다...
2009.06.18 -
응급실에 가신 선생님
2009.06.09 화요일 점심시간, 여러 반이 급식실 입구에서 차례를 기다리느라, 잠시 급식 줄이 꽉 막혀 서 있을 때, 갑자기 앞줄 어딘가에서 "응급실~ 웅얼웅얼웅얼~" 하는 소리가 들려왔을 때도, 나는 그것이 우리 선생님께서 연락을 받고, 응급실에 가신다는 소린지 상상도 못했다. 5교시가 시작되자 우리 선생님 대신에, 5학년 1반 선생님께서 교탁 앞에 계셔서 조금 놀랐다. 1반 선생님께서는 술렁이는 우리를 조용히 시키시고, 충격적인 한마디를 던지셨다. "고지연 선생님께서 응급실에 가셨어요!" 아이들 모두 콰아앙~ 폭발하듯 불안한 표정으로 다시 술렁거렸고, 난 그 순간 머릿속이 걱정스런 생각으로 한꺼번에 슈우욱~ 뭉쳐 덩어리가 되는 것 같았다. 불안하고 걱정스런 생각이 진액처럼 끈끈하게 엉키고 엉켜 ..
2009.06.11 -
꼴찌는 지겨워!
2009.05.01 금요일 어제 중간고사가 끝났고, 오늘 작은 체육대회가 열렸다. 마지막 5학년 반 이어달리기 시합, 드디어 내가 출발선에 섰다. 나는 주먹을 으드드 쥐어보았지만, 반대로 다리는 힘이 풀렸다. 뒤따라 주먹을 푼 손도 핸드폰 진동처럼 부르르 떨렸다. 사실 난 아침에 달리기 시합 때문에 일어나기가 싫었다. 달리기를 안 할 순 없을까? 왜 꼭 달리기를 해야 하는 거지? 여차하면 중간에 다른 곳으로 새야겠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난 지금 고개는 앞으로 향하고 오른손을 뒤로 뻗어, 애타게 우리 반 선수에 바톤을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내 손에 하얀 바톤이 들어왔다. 나는 땅을 보고 다리를 한껏 벌리려고 애썼다. 그리고 두 손을 귀밑까지 번갈아 올려가며 속으로 '핫둘, 핫둘!' 뛰었다. 계속 뒤로..
2009.05.03 -
친구 설득시키기
2009.04.28 화요일 선생님께서 오는 5월 28일, 동두천 교육청에서 지정한 어떤 산에 올라가서, 식물이나 곤충을 관찰하고 그 자리에서 직접 보고서를 써내는 대회가 열릴 예정인데, 여기 참가하고 싶은 사람은 지금 손을 들라고 하셨다. 나는 바로 손을 번쩍 들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중간고사 시험 준비로 피곤해선지,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고, 하필 5월 28일 전날이 우리 학교 캠핑 야영하는 날이라 그나마 손을 들었던 두 세 명의 아이들도 다 손을 내렸다. 나는 난처해졌다. 왜냐하면, 2인 1조로 참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선생님께 꼭 참가하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함께 할 친구를 다른 반에서 알아보겠다고 허락받았다. 난 같이 나갈 친구를 곰곰히 생각하다 4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선호가 딱 좋겠다고..
2009.05.01 -
걱정
2009.04.22.수요일 아침 일찍, 영우와 나는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나는 앞서 걸으며 영우를 재촉했다. 오늘은 영우가 어린이 대공원으로 현장 학습을 가는 날이다. 김밥과 간식이 든 소풍 가방을 메고, 영우는 마음이 들떠 눈하고 입가에서 깨알 같은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환하게 웃는 영우를 보며 난 걱정이 앞섰다. 나도 낼모레면 현장 학습을 갈 거지만, 며칠 전 뉴스에서 현장학습을 가다가 사고가 난 버스 이야기와, 엊그제 우리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끔찍한 이야기가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여러분에게 지난번에 들려준 버스 안전에 대한 중요성 이야기 기억하죠? 이 이야기는 너무 끔찍하여 안 하려고 했는데, 버스 안전에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겠어요! 오래전 땡땡 ..
2009.04.23 -
선생님 특기는 과일 자르기
2009.04.16 목요일 '쉬익~'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한 덩이였던 내 사과가, 깔끔하고 깨끗하게 반으로 쩍~ 갈라졌다. 정확히 딱 반이었다. 1초도 안 되는 순간이라서, 마치 무협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의 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과를 통과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달달한 냄새 나는 사과 물을 뚝뚝 흘리며, 선생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 교탁 위에는 모세가 바닷물을 가르듯이, 내 사과가 두 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오늘 미술 시간에는 과일이나 채소, 나뭇잎을 가져와, 선생님이 과일과 채소를 잘라주시면 단면을 그림으로 그리고, 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맛있게 먹는 수업을 했다. 나는 겉이 약간 올록볼록하고, 한 부분은 잘 익은 빨간색이고, 나머지 부분은 주황, ..
2009.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