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는 지겨워!

2009. 5. 3. 08:52일기

<꼴찌는 지겨워!>
2009.05.01 금요일

어제 중간고사가 끝났고, 오늘 작은 체육대회가 열렸다. 마지막 5학년 반 이어달리기 시합, 드디어 내가 출발선에 섰다. 나는 주먹을 으드드 쥐어보았지만, 반대로 다리는 힘이 풀렸다. 뒤따라 주먹을 푼 손도 핸드폰 진동처럼 부르르 떨렸다.

사실 난 아침에 달리기 시합 때문에 일어나기가 싫었다. 달리기를 안 할 순 없을까? 왜 꼭 달리기를 해야 하는 거지? 여차하면 중간에 다른 곳으로 새야겠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난 지금 고개는 앞으로 향하고 오른손을 뒤로 뻗어, 애타게 우리 반 선수에 바톤을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내 손에 하얀 바톤이 들어왔다. 나는 땅을 보고 다리를 한껏 벌리려고 애썼다. 그리고 두 손을 귀밑까지 번갈아 올려가며 속으로 '핫둘, 핫둘!' 뛰었다. 계속 뒤로 밀려나는 땅만 쳐다보고 뛰다가, 상황이 어떻게 되었나 보려고 고개를 들었는데, 나 혼자만 달리고 있고 주위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내가 1등인 줄 알았다. 나는 '드디어 꼴찌 신세를 면하는구나!' 하고 마음이 편해졌다.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니, 바람이 내 얼굴을 시원한 붕대처럼 감싸 안았고, 솜사탕 같은 구름 사이로 퐁퐁 구멍 난 하늘이 보였다. 나는 영화 '말아톤'에 나오는 주인공 초원이처럼 입을 샤~ 벌리고 웃으며 뛰었다.

바톤 연결 지점으로 들어올 때서야, 우리 반 아이들이 날보는 눈빛을 느꼈다. 심상치가 않았다. 아이들 눈에서 별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지구가 멸망할 때, 탈출에 성공한 마지막 인류의 눈동자에, 지구가 폭발하는 꼴이 반사되는 것처럼 끔찍했다. 나를 기다리는 우리 반 여자 선수에게 바톤을 넘겨줄 때, 비로소 내가 1등이 아니라 다시 한번 꼴찌가 된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벌써 멀찌감치 앞서 달리는 다른 반 여자 아이들이 보였고, 우리 반 여기저기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는 이마를 부여잡고 쓰러지는 시늉을 하였다. 우리 반은 나 때문에 전체 순위 4위에서 5위로 밀려났다. 달리기가 끝나고, 보물찾기에서 내가 운 좋게 사무용 가위를 상품으로 받았을 때, 애들은 이렇게 말했다. "달리기에서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저런 애가 왜 선물을 받지?" 체육 대회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올 때, 아이들이 흘겨보며 내게 물었다.

"넌 달리기가 뭐라고 알고 있니?", "있는 힘껏 다리를 빨리 움직여 달리는 것이지!" 하니까, 아이들은 "그렇게 잘 알면서 왜 걸었어?" 하며 삐쭉삐쭉하였다. 심지어는 학교 끝나고 4단지 운동장에서 나 좀 보자고 으름장을 놓는 아이도 있었다. 선생님께서 잔뜩 골이 난 아이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그래도 오늘 우리 반이 1등이에요! 질서를 제일 잘 지켰거든요!" 하셨다. 그러자 아이들이 일제히 흥분하며 "뭐가 1등이에요? 상우 때문에 다 망쳤어요! 몸이 아픈 순호보다 더 못 뛰었단 말이에요!"하고 외쳤다. 난 고개를 숙인 채, 책상 밑으로 삐져나온 내 뭉툭한 발등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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