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임수

2009. 5. 6. 08:41일기

<속임수>
2009.05.03 일요일

여기는 연천 구석기 축제 행사장이다. 구석기 시대에 살았던 원시인들의 생활 모습을 그대로 보존해 놓은 곳인데, 어린이날을 맞아 엄청난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행사가 열린 넓은 잔디와 꽃밭에는 벌떼처럼 사람들이 모여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요리조리 다니며 구경하다가, 구석기 시대 움막이 세워진 풀밭에서 연극을 한 편 대충 보고 난 후, 간단한 퀴즈 대회를 연다고 해서 구경하는 아이들 틈에 끼어들었다. 북이 울리고 원시인 분장을 한 사회자 아저씨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이 연극에 나왔던 두 부족의 이름은 무엇과 무엇입니까?", "오스트랄로족의 남자가 피테쿠스족의 여자에게 청혼할 때 선물한 것은?", "이 아저씨의 몸무게는?" 하는 문제들을 내었다.

나는 답을 맞히지 못하다가 "오스트랄로족이 맘모스를 사냥하기 전에 한 것은?" 하는 문제에서 손을 들었다. 이 연극을 처음부터 보지 않아서 그동안 선뜻 손을 들지 못했지만, 용기를 내어 "제사!"라고 두드려 맞혔다. "거의 근접했으나 아깝게 틀렸어요!" 그렇게 그 문제에서 아무도 답이 안 나오고 시간이 흘렀다. 보다 못해 힌트가 나왔다. 바로 'ㅇ'과'ㅅ'이 두 글자였다. 나는 문득 영우랑 어릴 때, 인형을 침대 높은 베개에 올려놓고, 절을 하고 춤을 추는 '의식' 놀이를 하였던 기억을 떠올렸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손을 번쩍 들고 "의식입니다!" 대답했다. 사회자는 "네, 맞습니다! 그럼 이 의식에 쓰여진 제물은 남자였을까요? 여자였을까요?" 나는 여기서 '결국 경품은 놓치는구나!' 생각을 하다가 '아니야 내가 구석기 인이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만약에 남자를 제물로 바치면 어떻게 될까? 남자들은 밖에 나가서 사냥하고 여러 가지로 집안에 필요할 텐데 그런 남자가 집에 없으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먹고 살기가 어려워지겠지! 전쟁 때도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이 가난했잖아!' 나는 자신 있게 "답은 여자입니다!" 하고 또박또박 말하였다.

사회자는 여자 역으로 나온 사람과 귓속말로 몇 마디 주고받더니 "맞습니다! 여자예요!" 하고 경품으로 퍼즐을 주었다. 퍼즐을 받으니 기분이 짜릿해지면서, 나는 경품을 더 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엄마, 아빠가 쉬고 계신 돗자리로 달려가서, 경품을 내려놓고 엄마에게 선글라스를 벗어달라고 부탁했다. "변장을 하고 가서 퀴즈를 맞추고 또 경품을 타려고요!", "어, 안돼, 도수가 안 맞아!"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이 안경만 벗어놓고 맨얼굴을 하고 다시 진행장으로 달려갔다. 그 사이, 퀴즈를 푸는 것에서 맘모스 역할을 한 배우와 가위바위보를 해 이기는 사람이 경품을 타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줄을 섰다 내 차례가 오니까, 사회자가 금방 날 알아보았다는 듯이 "저기 아까전에 퀴즈로 타가신 분 아닌가요?" 하니까, 나는 "아니,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은데요?" 하고 능청맞게 대답했지만, 목소리는 아주 어색하고 떨렸다. 그러자 사회자는 눈꼬리를 올리며 "저희 원시인들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답니다. 어떤 원시인은 아이큐가 140이나 되는 것도 있어요!" 하였다. 나는 내 속임수가 들킨 것을 인정하고, 순순히 자리로 돌아가는데, 안경이 없어서 길을 헤매다가 몇 번이나 풀밭에 넘어질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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