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28. 23:22ㆍ일기
<아픈 꽃, 카페 '그'>
2013.11.28 목요일
<방화역 3번 출구, 쭈꾸미 식당 오른쪽 골목>! 이 두가지 키워드로, 나는 카페 '그'를 찾아 갔다. 저녁 6시, 생전 처음 와보는 방화역에서 내려, 한 500 미터쯤 다리 사이를 붙이고 추운 몸을 잔뜩 움추린 채로 어기적어기적 걸었다.
걷다가 걷다가 쭈꾸미 마을이라는 식당이 보였고, 오른쪽 골목으로 쏙 들어가니 카페 '그'가 보이고, 카페 '그'가 보이는 건물 옆, 나란히 붙어 있는 넓은 집 대문에 '새들도 둥지가 필요하다. 하물며, 카페 '그'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저녁 칼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우리 가게 생각이 났다. 우리 가게에도 저런 푯말이 걸려있었다. 아니, 건물 담벼락 자체를 피 끓는 현수막으로 무장시켰었지. 현수막을 보니, 그당시에 내가 느꼈던 기분도 다시 떠올랐다. 애써 웃음을 띄고있지만,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것은 어떻게 막겠는가? 크고 무거운 돌이 갑자기 내몸을 짓누르는 기분이 든다.
심장에 돌이 떨어지듯 무거운 마음으로 현수막 앞을 지나니, 드디어 카페 '그'가 초롱초롱 불을 밝힌 채 나를 맞아주었다. 강제철거를 앞둔 가게라 불도 끄고 간판은 떨어져 나가지 않았는지 걱정했는데, 카페 '그'는 아직 멀쩡했다. 내가 길을 잃고 싸늘한 거리를 헤매다가 마음까지 얼어붙어 있을 때 발견한 친구처럼, 카페 '그'는 오히려 따뜻한 불을 밝히고 있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니, 안경에 온통 새하얗게 김이 서려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김 서린 안경을 잠깐 내려놓으니 아빠가 나를 알아보고 손을 들었다. 아빠는 요즘 카페 '그'에 출퇴근 하여 언제 닥칠지 모르는 명도집행에 대비하고 계신다. 아빠가 나를 아는 척 하자 카페에 있는 여러 사람들이 앞다투어 내게 인사를 걸어오셨다. 아빠를 통해 말로만 들어오던 분들이라, 누가 누구인지 몰라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겉으로는 내색 하지 않고 그저 나도 씩~ 웃었다.
카페 '그'는 그리 큰 규모의 가게가 아니었다. 그러나 골목길 카페의 개성이 물씬 넘쳤고, 조명은 기분 좋은 노랑이고, 미술을 전공한 카페 '그' 여주인 두분이 열심히 가게를 정성스럽게 꾸며서, 카페를 감상 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 했다. 직접 카페 벽면에 그린 그림이 아주 멋있었고, 연대하고 있는 다른 곳을 돕는 표어나 포스터도 많이 붙어있었다. 벽에 걸린 책장이나 선반에도 온갖 아기자기한 물건과 소품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전혀 어지럽지 않고 어릴적 동화에 나오는 마법사의 집을 연상케 했다.
나는 카페 안을 조심스럽게 둘러보다가, 엉거주춤하게 긴의자의 끄트머리에 낑겨앉아서 어색하게 책만 보고 있었다. 조금 뒤, 카페 '그' 주인 한 분이 녹차라떼를 만들어 직접 내 앞에 놔주셨다. 그분은 '선민'이라는 분으로 나보다 짧은 머리에 안경을 쓰셨고, 카페를 지키느라 카페에 붙박이로 계셔서 오래 씻지 못한 티가 났고, 옷차림도 자다가 막 일어난 것 같았다. 애써 밝게 웃고 계셨지만, 속앓이를 하고 계실 생각을 하니 나도 속이 탔다.
나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달지 않으니깐. 그런데 녹차라떼는 정말 좋아한다, 달고 녹차의 쌉쓰르한 향도 있다. 부모님이 커피 전문점을 하셨을 때 마셔 본 녹차라떼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어쩌다 커피 가게에 들어가면 무엇을 시킬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녹차라떼다.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잘하는 집에서는 머금고 삼켰을 때 입 안이 개운하며, 못하는 집에서는 삼켰을 때 입안에 뭔가가 잔뜩 묻은 기분이다. 그리고 다 마셨을 때 녹차 앙금이 많이 남아 있지 않고, 잘 풀어진 녹차라떼의 맛이 좋았다.
카페 '그'는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 여기서 내몰리면 갈곳이 없을 정도로 코너에 몰린 상황이고, 건물주는 대궐 같은 마당에 나무까지 기르는 사람이지만, 무슨 심보인지 카페 '그' 주인들의 작은 가게를 8개월 만에 빼앗으려 하신다. 건물주의 집은 아까 현수막이 쳐 있었던 카페 '그' 바로 앞에 있었는데, 지금은 이사를 가 아무도 살지 않으며, 자기 집과 카페 그를 부순 뒤 61억 짜리의 새로 큰 건물을 올린다고 한다. 건물주가 가지고 있던 집은 2층에다가 자식들도 키우고, 부모님도 모셔와서 봉양하고 남을 만큼 넓은 집이었는데, 뭐하러 카페 '그' 주인들의 작은 보금자리를 부수고, 카페 '그' 주인들을 차가운 겨울 길바닥으로 내동댕이 쳐가면서까지 더 큰 부를 쌓으려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 나는 한심하게 카페 '그'에 앉아, 녹차라떼 한 잔의 맛 평가나 하고 있구나. 하지만 녹차라떼는 진짜 맛있었다. 거품이 부드럽게 있었지만, 그냥 양을 많아 보이게 하려고 기포만 잔뜩 낸 거품이 아니고, 촉촉하고 풍부한 거품이 마르고 거친 목을 축여주었다. 어쩌면 부모님의 옛날 가게에서 먹었던 녹차라떼보다 맛이 좋았을지 모른다. 카페 '그'에 앉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따뜻한 음료잔을 두손으로 잡고, 언손을 녹이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나도 녹차라떼를 훌훌 들이키는데, 또 다른 주인 '지원'이라는 분이 가까이 다가오셨다. "상우군, 글로만 보다가 오늘 처음 보네요."하셨다. '지원'이라는 분도 짧은 파마머리에 안경을 끼셨고 웃고 계셨지만, 얼굴엔 고뇌가 서려있었다.
비록 거대한 건물주의 손아귀 앞에 흔들리는 촛불이 돼버린 카페 '그'였지만, 그 촛불은 정말 많은 사람이 지키려고 애를 썼고, 그 덕분인지 아름답고 부드럽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목요일마다 열리는 공연이 시작되었다. 카페 안이 좁아 모두 다닥다닥 옹기종기 모여서 손뼉을 쳤고, 김밥을 나누어 먹으며 공연을 관람 했다. 카페 '그'는 작지만, 사람들의 온기와 애정으로 꽉 차게 빛났고, 거기에 사람 사는 세상이 있었다. 카페 '그'를 지키기 위한 공연이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어떤 가수가 기타줄을 맞추면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린 모두 각각의 소중한 꽃이잖아요. 그런데 왜 가진 사람들은 꽃을 짓밟으려고 하는지..."
이제 곧 명도집행이 이뤄진다고 한다. 이제는 정말 딱딱한 폰트로 만나는 길바닥이 아니라, 생생한 엉덩이로 만나는 길바닥이 될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이다. 카페 '그'가 명도집행 당하는 것을 방관할 수는 없다. 우리 아빠를 비롯해, 비슷한 처지였거나, 또는 아니였거나, 가난하고 억울한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여러 사람들이 연대하여 카페 '그'를 지킬 것이다. 하지만, 난이도가 더 올라간 느낌이다. 옛날 아빠, 엄마 카페에서는 임차인 승리의 성지인 두리반까지, 건들건들 팔다리 흔들면서 걸어가도 5분이면 되는 거리였지만, 카페 '그'는 서울 맨 끝자락 방화동에 있기 때문에, 서울 시내에서 아무리 빨라도 1시간은 걸린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에는 한계가 있고, 건물주는 지능적이다. 우리 카페 건물주는 우리가 집회 하는 걸 보기만 했지만(물론 보고 모른 척 했지만), 카페 '그'의 건물주는 카페 '그'가 집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기가 먼저 카페 '그' 앞에 집회 신고를 했다. 심지어 그 집회의 이름은 '철거 공사 반대 규탄 집회'라고 한다. 정말 코메디가 따로 없다. 나는 사실 내성적인 성격이고,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정말로 못한다. 음식점에서도 물 달라는 말 하기 머쓱해서 동생을 시킨다. 하지만, 카페 '그'를 지키기 위해 부탁 한 번 해야겠다.
혹시 이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 한겨울에 카페 '그'가 피도 눈물도 없는 건물주와 법에 떠밀려 바닥으로 내쫓기는 것을 부당하다고 느끼신다면, 다음 주 월요일, 화요일, 언제라도 카페 '그'에 놀러와 주세요! 굳이 명도집행을 막아달라는 말까지는 안 하겠지만, 가만히 카페 안에 앉아있다가 집행관 손에 들려 나가셔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전 SNS를 할 줄 모릅니다. 지금 핸드폰도 없고요, 현장에 오기 힘드신 분들은 제 글과 카페 '그'의 절박한 사정을 빨리빨리 퍼다날라 주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