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밭에서

2013. 12. 12. 20:31일기

<눈밭에서>

2013.12.12 목요일


4교시 후, 안국동 북촌한옥마을 체험학습을 위해 학교 문을 나섰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 같지만, 북촌한옥마을의 정확한 위치를 잘 몰라서, 학교에서 나눠 준 지도를 토대로 우리가 직접 찾아가는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안국동 지역을 샅샅이 알고 있다는 형진이를 앞장 세웠다.


마침 하늘이 온통 하얀색이었고, 그 사이사이로 작은 알갱이들이 마구 휘날렸다. 언제부터 내렸을까? 벌써 운동장은 갈색 모래바닥보다 하얀색 눈밭이 더 많았다. 아침부터 꾸물꾸물 하늘이 온통 잿빛이더니, 결국에는 제설기가 터진 것처럼 하늘에서 눈이 우수수수 떨어졌다.


아이들의 반응은 선명하게 두가지로 나뉘었다. 아직 동심이 살아 있는 걸까? 맨손이 불에 덴 것처럼 새빨개진 채로, 아무 감각도 없어질 때까지 눈뭉치를 만들어 온몸이 눈 녹은 물과 땀으로 젖거나, 점잖빼면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모자를 푹~ 눌러 쓰거나! 나는 후자였다. 눈을 처음 본 순간 아주 조금 설렜지만, 눈을 맞으며 걸을 것이라 몸 고생할 생각이 먼저 들었다. 눈은 점점 더 거세져서 모자를 푹 눌러 쓰지 않으면, 바로 얼굴이고 목이고 전부 눈발에 파묻힐 정도로 휘날렸다.


나는 모자를 다시 푹 눌러 쓰고 고개는 땅으로 푹 떨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폭설 속의 행군을 시작 했다. 원래 청색이었던 내 잠바는, 눈이 너무 많이 쌓여서 하얀 바탕에 파란 점박이가 붙은 것처럼 보였고, 가끔 내가 너무 뒤쳐지는 게 아닌가, 앞을 보기 위해 고개를 빼꼼 들었다. 다행이 내 주변에 시끄럽게 떠들며 서로 눈을 던지기 바쁜 아이들이 체험학습 가는 길에 길잡이를 해주고 있었다. 사실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몇년 전에도 나는 분명히 친구들과 휘몰아치는 눈밭에서 걸었었다.


참 슬프게도 그때 같이 눈속을 뒹굴었던 아이들은 이사 후 연락이 잘 되지않고 심지어는 이름도 가물가물하다. 참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저 스쳐 지나간 순간이었던 걸까? 나는 언젠가부터 적극적으로 친구를 사귀려 하지 않는 것 같다. 가끔 옛날 친한 친구 한 두명만 보고싶어 미친듯이 먼 거리를 달려가 만나기도 하지만... 과연 먼훗날, 5년, 10년쯤 지났을 때 과거를 돌이켜보면, 친구들과 함께 했었던 것이 다 기억 날까? 물론 내 기억력이 안 좋아서 그럴 수도 있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친구를 사귀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직도 일기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면, 지난 날을 돌이켜 볼 때 '그땐 그랬구나.' 또는 '내가 살아온 삶이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 쓰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지난날의 일기를 잘 펼쳐보지 않는다. 그저 그순간에 느꼈던 것들을 정말 토하듯이 써놓을 뿐이다. 글을 쓰다 보면 토하는 느낌도 난다. 이런 내 이상한 성격으로 말미암아, 나는 가벼운 인간관계에 별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주변에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던지, 내가 생각하는 나는 정말 한심하고 성격도 꼬인 녀석이다.


분명히 몇년 전에 썼던 눈밭에서 뒹굴었던 글에는 나의 이런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일까? 몇년 사이에 달라진 게 무엇일까? 순수한 동심의 마음으로 글을 쓸 때와, 지금처럼 자학으로 얼룩진 글을 쓸 때와 내가 달라진 것은 거의 없는 것 같은데... 다만, 어릴 때는 나와 세상을 감싸고있던 투명한 장막이 너무 두꺼워서, 불투명한 벽 너머로 그저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희망했던 것 같다. 이제 점점 얇아져만 가는 벽은 나에게 부정적인 미래만을 보여준다.


다가오는 미래가 부정적인 이유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부조리가 무슨 호러 영화에서 나오는 이야기처럼 극에 달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펑펑 넘치고, 그저 어리다고 행복하게 살기에는 너무나 마음이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현실을 한탄 하면서, 정작 아무 것도 하는 게 없다. 이게 더 힘들다! 힘들 때 나를 변호하기 위한 달콤한 말들은 너무 많다. 집이 가난해서 사교육을 받지 않았다, 아직은 나이가 어리다, 우리나라는 빈부 격차가 심한데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공부는 못해도 성격은 아직 순수하잖아...


정말 많은 언어로 나 자신에게 갑옷을 입히고 편하게 지나갈 수도 있다. 그리고 몇년동안 그랬다. 하지만 그 자기 변호의 갑옷을 부수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내가 16년동안 살면서 온갖 말들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아직은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나는 너무나 나태하고 무엇하나 진드근하게 노력한 것이 없다. 어릴 때 나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행복했는데, 이제 나는 순간의 즐거움보다는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엄청난 노력으로 세상을 대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많이 얇아져서 이젠 바깥이 보이는 벽 너머를 보면 두렵다. 장막에 쌓여있던 나는 겁을 내며 움츠러든다.


여기 앞이 보이지 않는 끝없는 눈밭에서 마음 약하고, 집에 돈도 없고, 무엇하나 변변하게 잘 하는 일도 없는 아이의 미래가 장막 너머로 보여서 자꾸 나의 목을 조른다. 눈발은 점점 더 거세져 바람이 쓰나미처럼 밀려 온다. 아뿔싸! 주변에 아이들을 보니 이미 너무 멀리 가버린 기분이다. 몸을 너무 웅크려서 아직 윗쪽은 견딜만했지만, 교복 속으로 껴입고 있는, 얇고 닳아빠진 내복 하의는 파고드는 추위를 막아내지 못한다. 다리 관절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다. 나는 벌벌 떨며 간신히 일행을 찾아내었다. 도대체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가 없다. 눈속에 파묻힌 북촌마을은 가도가도 미로였으니까.


자꾸 새로운 길만 나오는데 목적지에서 1시간 정도는 뱅뱅 돈 것 같다. 나중에는 엄마, 아빠가 지난 가을 새로운 가게터를 알아보러 다녔던 외딴 골목까지 지나가게 되었다. 나는 투덜투덜 길가에 굴러다니던 눈뭉치를 탁~ 발로 차 풀어헤쳤다. 앞장 섰던 형진이가 잘못 찾아 헤매고 다녔던 길 위에서, 아이들은 얼굴이 새빨갛다 못해 검은빛이 나고, 머리는 목욕탕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반지르르 물에 젖을 때까지 서로에게 눈뭉치를 던졌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를 이 눈싸움은 이제 누구끼리 하는지도 모르게 난장판이 되었다. 아이들은 형진이를 원망하면서도 그냥 아무나 보이면 눈을 막 던지고 계속 눈싸움을 하며 걸어갔다. 모두 얼이 빠져, 우리가 왜 이렇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