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못가는 아이

2013. 11. 23. 20:58일기

<고등학교에 못가는 아이>


2013.11.22 금요일


나와 우리 반 친구들은 모두 4개월 후면, 각기 다른 교복을 입고 고등학교 교실에 앉아서, 고등학교 수업을 듣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두'라는 단어에 끼지 못하는 친구도 있다.


대부분의 학생은 성적이 썩 좋지않아도 인문계 고등학교는 들어 간다. 물론 못하는 학생이 들어가서 설렁설렁 하면, 잘하는 아이들 밑바닥을 폭신하게 깔아주는 매트릭스 역할을 하겠지만, 그래도 학교에 입학은 시켜준다.


아주 간혹, 성적은 물론 출석, 봉사활동, 수행평가까지 엉망인 아이들은 인문계 고등학교도 못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백분율로 따졌을 때, 약 98퍼센트 이후부터 인문계 고등학교를 못간다고 하니, 해마다 꾸준하게 고등학교도 못가는 아이는 나오는 것이다. 그럼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다행스럽게 중졸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성적과는 아무 상관없이 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이들에게는 남아있다. 2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라는 학교에서 '사회적 배려 대상 전형'의 전형으로 들어가면, 성적과는 무관하게 3년동안 등록금을 안내고 학교에 다닐 수 있다고 한다. 돈 빵빵하고 인맥이 빵빵한 재단의 명문학교에서, 사회적 배려 대상에게 자선사업하는 취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또 하나의 경우는 여러 분야의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고등학교 3년 재학 후 무조건 취업을 약속하면, 성적과 상관없이 입학시켜 준다고 한다. 다만, 이 경우는 무조건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 면접을 통해서 학생을 선발하고, 또 학교에 입학해서도 취업을 위한 노력을 계속 해야한다고 한다. 사실 우리반에서도 인문계 못갈 것 같은 아이들이 눈에 보이기는 했다. 나도 절대 어디가서 공부 꾀나 했다고 으시댈만 한 성적은 아니지만, 그 아이들을 보고있자면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노는 걸까? 싶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이 유독 많은 우리반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전교에서 8명이 성적 미달로 고등학교를 못가는데, 그중에서 우리반 아이들이 4명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사연도 참 가지각색이다. '갑'은 집이 아주 잘 살고, 사교육도 많이 받았었다. 중3밖에 안되는 나이에 술과 담배를 하며, 여자아이들이랑 메시지 주고 받기 바쁜 아이지만, 약한 아이를 괴롭히거나 돈을 뺏거나 하는 소위, '일진'이라는 부류는 절대 아니다. 자기가 학교생활 엉망인 건 찔리는지 선생님들 눈치도 은근히 본다. 다만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 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선생님께서도 항상 그러셨다. '갑'은 불쌍하고 멍청한 아이라고, 절대 나쁜 아이는 아이다.


'을'이라고 하는 아이가 있다. 내 키가 중3치고 절대 작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학기 초, 교실에 들어온 '을'의 키는 내 키가 작아보일 정도로 훤칠했다. 얼굴은 무척 어두웠고, 몸도 길고 호리호리하기만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을'은 우리보다 한살이 많은 형이었고, 예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1년을 유급하고 강제 전학을 당한 아이였다. 사실 딱 얼굴에 '나 좀 불량해!'하고 써놓고 다니는 아이지만, 전 학교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모르겠는데, 학교에서는 정말 순한 양이었다. 다만 심각한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1학기 중반 정도부터 큰 키의 '을'이 없으니, 내가 올려다 볼 아이가 없었다. 한동안은 아주 안 나오더니, "고등학교는 나와야 사람 노릇하지, 임마!"하는 선생님 말씀에 언제나 늦게 와서 1교시는 하고 다시 집에 간다. 그런 생활을 해도 선생님께서는 '을'을 위해 출석을 했다고 출석부에 기록을 거짓으로 해주셨다. 담임 선생님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적과 봉사활동, 수행평가를 챙기지 않아서 결국, 고등학교를 못가는 전체 8명 중 한명에 이름을 올렸다. 풍문을 통해 들었을 때 '을'은 1학년 때까지는 성적도 우수하고 반장도 했던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2학년 때 틀어졌다. 뭐가 문제였을까?


'을'은 무시무시한 경기도 '일진'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담배 피우고 술을 마시며, 그 큰 키와 세상 그늘 다 드리운 얼굴을 하고서 학교에 나오면, 선생님 말씀도 고분고분 듣고, 심지어 자기 키보다 훨씬 작은 반 아이들의 잔소리도 듣는다. 학교에 와서 앉아있으면, 지나가는 아이들마다 모두 '을'의 등짝을 두들기며, "야, 이놈아, 학교 좀 꼬박꼬박 챙겨 다녀!"하고 한소리씩 하고 지나간다. 나머지 두 아이, '병'과 '정'이는 경우가 좀 다르다, 그 아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술 담배도 하지않으며, 무단으로 빠지는 일도 없고, 친구 관계도 원만하다. 이 두아이는 정말로 성적이 바닥인 거 하나로 인문계 고등학교를 못간다. 


두아이는 대부분의 수업시간에 모두 엎드려 있다. 아마 잠 든 시간을 세는 것보다 깨어있던 시간을 세는 게 빠를 정도다. 1학년 때부터 그랬는지, 아주 꾸준하게 수업시간에 수면을 보충했었는데, 왜 그랬는지는 알턱이 없다. 얼굴도 어려 보이게 생겨서 초등학생 같지만, 두아이들은 아직 생각이 너무 어려서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선생님과 부모님은 얼마나 많은 훈계와 얼마나 많은 걱정을 했을까마는 그아이들은 끈질기게, 끝끝내 3년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 하지만, 난 정말 모르겠다. 아이들만을 탓하며 고등학교도 안 보내주는 것이 옳은 일인지... 혹시 이 아이들이 커서 어떤 어른이 될 지 누가 아는가? 이 아이들의 미래를 꿈꿀 기회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 책임은 누가 지는지...?



위 사진의 출처는 http://www.panoramio.com/photo/49534718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