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문외과 의사의 단호함

2013. 9. 26. 01:03일기

<항문외과 의사의 단호함>

2013.09.25 수요일


얼굴이 씨뻘개지고 머리에서부터 식은땀이 지리릭~! 전기에 감전되듯 온몸으로 흘러내렸다. 눈앞은 캄캄해지고 머리는 차갑고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결국 나는 안 나오는 똥을 포기하고 변기 뚜껑을 닫았다.


점심 시간이 지나서야 간신히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 오늘 아파서 학교에 못 갔는데요, 진작 전화를 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그래, 상우야, 어디가 아픈데?", "저... 치질 앓고 있던 게 도졌나 봐요. 너무 아파서..."


"어~ 어... 그랬구나, 그럼 내일 결석계 가지고 오너라~" 선생님의 자상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난생 처음 가 보는 항문외과 병원 문을 열자,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간호사 아주머니께서 "오늘은 의사선생님께서 멀리 출장을 갈 일이 있어서 2시가 돼야 들어오셔요, 기다리실 거에요?" 하셨다. 1시가 조금 넘은 시각, 나는 기다리며 마음을 바짝바짝 태웠다.


의사선생님을 기다리는 시간만큼이나 항문외과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커지고, 똑바로 앉아있자니 엉덩이가 아파서 자꾸 흠칫흠칫 몸을 들썩여가며 조금씩 자세를 바꿔가며 앉았다. 2시가 조금 넘자 의사선생님이 오셨고, 나는 지끈지끈한 엉덩이를 두손으로 감싸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잠시 뒤, 나는 병원 침대에 S자로 누워서 한쪽 벽을 보고 있었고, 얼굴은 화끈화끈 달아올랐으며 바지와 팬티를 내린 채 엉덩이를 내놓고 있었다.


의사선생님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내 엉덩이를 이리저리 비집으시며 무언가를 들이밀었고, 나는 난생 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으이~으억흐~" 하고 소리지르며 엉덩이를 움찔움찔거렸다. 의사선생님은 밥집에서 '여기 반찬 좀 더 주세요!' 하는 것 같은 말투로, "도망가지 말아라! 어휴, 이거 상태가 아주 심각한데요, 똥이 아주 딱딱하고 아주 굵어요!" 외치셨다. 일회용 장갑으로 내 엉덩이를 이곳저곳 헤집어보던 의사선생님께서는 단호한 목소리로, "관장을 해야 합니다!! 똥 나오는 약을 넣어서 똥을 빼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긁어서 파내는 수 밖에는 없어요!!" 라고 하셨다.


오, 맙소사, 관장이라니~! 각오는 했지만, 도저히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의사선생님이 내 엉덩이를 벌려서 보는 것만으로도 엉덩이가 부어 있어, 정말 눈물이 쏙 빠지게 아픈데 관장까지 해야 된다니~! 나는 원인이 궁금했다. 100% 음식물 탓이라는 의사선생님의 단호한 대답을 들은 후, 내가 그동안 뭘 먹고 살았는가 떠올려보았다.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은, 고추장 반, 밥 반의 비율로 섞은 비빔밥! 나는 내 고민의 답답함과 스트레스를 음식의 매운 맛으로 푼 것이다. 입이 부르트고 혀끝이 얼얼하고, 위가 통증을 느낄 정도로 매운 맛을 고집한 결과가 심한 변비로 돌아왔구나. 진료를 마친 후, 아직까지 얼얼하고 욱씬욱씬한 엉덩이를 부여잡고 관장하는 방으로 간호사를 따라 들어갔다.


관장하는 방 안에는 구급차에서 응급환자를 실어나를 때 쓰는 것 같은 이동식 간이침대가 있었고, 그위에 아까처럼 S자로 엉덩이를 내놓고 누은 채로 한쪽 벽을 바라보았다.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기계음이 여러번 나더니, 엉덩이를 헤집는 손길이 또 다시 느껴졌다, 이번엔 무언가 크고 딱딱한 게 깊이 들어오는데, 똥을 누려고 힘을 주다가 엉덩이가 많이 부르터 있어서 엉덩이로 겁나게 매운 라면을 먹는 느낌이었다! 그냥 들어오기만 하는 것도 죽을 것 같이 아파서 눈 앞에 있는 철창 같은 침대 난간을 두손으로 꼭 붙잡고, 이를 악물고 "으허으어억~!" 고통에 계속 울부짖었다.


그런데 "이거 호스가 너무 굵어서 잘 안 들어가는데요!" 하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과 함께, 엉덩이로 들어가던 게 다시 빠져 나오고 들어가던 게 빠져 나오고 하는 끔찍한 고문의 시간이 흘렀다. 너무 아파서 1분이 하루종일처럼 길게 느껴졌고, 마음 속으로는 '하나님, 왜 제게 이런 벌을 내리시나요?' 하고 잠 자던 신앙심까지 샘 솟았다. 지옥 같던 굵은 호스와 엉덩이의 사투가 간호사 선생님이 좀 더 가는 호스를 가져오시는 걸로 끝났고, 가는 호스로 관장 할 때는 정신이 반쯤 나가서 두눈은 천장을 바라보고 입은 헤~ 벌리고 있었다. 관장이 끝나고 십 몇년만에 기저귀를 찬 뒤, 간호사 선생님으로부터 "당장 똥이 마렵겠지만, 약이 좀 더 잘 퍼지게 정말 못 참겠을 때까지 기다리세요!" 하는 말을 듣고 화장실로 비척비척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