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형과 걸으면 밤길이 무섭지 않아!
2011. 2. 6. 10:01ㆍ일기
<사촌 형과 걸으면 밤길이 무섭지 않아!>
2011.02.03 목요일
'집합이... 부분 집합... 공집합에...' 나는 너무 심심해서 할아버지 댁 안방 의자에 앉아, 중학교 수학을 노트에 필기해보고 있었다. 그때 '비리비리비! 비리 비리비리~!' 하는 초인종 소리가 귀속을 파고들었다. 나는 '막내 고모네가 오신 건가?' 기대하며 현관으로 나갔다.
문이 열리더니 제일 먼저 막내 고모, 그리고 고모부, 나와 동갑인 혜영이, 그리고 내가 그렇게 기다리던 정욱이 형아가 모습을 나타내었다. 나는 정욱이 형을 보자마자 형아 등을 두드려주며 웃었다. 형아도 그러는 나를 보고 살며시 웃었다.
형아는 마지막으로 본 할머니 칠순 때랑 그다지 달라진 점이 없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이 조금 길었나? "안녕, 형아?", "그래, 안녕!" 거실에서 가족들이 인사를 나누는 동안 우리는 조용한 안방으로 들어갔다. 정욱이 형아는 원래 그랬듯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상우야, 너는 글을 참 감성적으로 쓰더라!" 했다. "그게 내 스타일이야!"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형아 옆에 딱 붙어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다.
"중학교에 가면 공부는 많이 어려워져?", "수학은 중학교 초반이 초등학교 6학년보다 더 쉬운 것 같아.", "형아도 혹시 유희왕 카드 해?", "1년 전엔 했었는데, 엄마가 다 버리셨어!", "형아도 애들이랑 축구를 많이 해?", "축구는 가끔씩 하고 2학년 선배들이랑 하기도 해. 그리고 중학교 가면 축구보다 농구를 훨씬 더 많이 하게 돼!" 내가 이렇게 형아를 기다린 이유는, 대구에 넓은 할아버지 집에서 내 또래의 마음 놓고 얘기할 수 있는 상대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정욱이 형은 중학교 2학년, 나보다 두 살 많고, 어릴 때부터 명절이면 만나서 같이 뒹굴며 놀았었다. 정욱이 형아는 1년에 한 두 번 얼굴을 보지만, 가족이라 그런지 친하게 느껴져서 형아 오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또 집안이 너무 고요하고 영우는 까불기만 하고, 둘째 고모에 딸인 지현이 누나와 수연이는 대화하기가 쑥스러웠다. 나는 형아랑 걷고 싶어서 "형아, 우리 바깥에 나가서 산책이라도 할까?" 하였다. 형아는 "음, 글쎄, 그럴까나?" 하였다.
마루에 모여 앉아 다과를 즐기는 어른들에게 "저~ 저랑 형아 밖에 나가서 산책 좀 하고 올게요!" 하고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왔다. 우리가 나가는 길에 영우는 "껌 하나 사오면 고맙겠어!" 하였다. 아파트 밖을 나오자 대구는 밤이 되어, 남쪽이라는 것이 무색하게 추워서 옷깃을 여며야 했다. 낮에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창가에서 일광욕했었는데, 이제는 추위에 떨고 있으니 책 속의 태양을 잃어버린 종족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아파트 앞에는 슈퍼와 비디오방 하나만 문을 열고, 분식집, 미용실, 치킨집, 중국집, 약국, 모든 게 닫혀 있어서 유령 도시 같았다.
어둠속에서 나와 정욱이 형아는 입김을 호호~ 불며 앞으로 나갔다. 나는 뭐 재미있는 게 없나 찾아보다가, "형아, 있잖아, 우리 문구사를 찾아서 카드 한 번 뽑아볼까?" 하였다. 형아는 "그래, 그러자! 그런데 이 시간에, 게다가 설날인데 문을 연 문방구나 가게가 있을까?" 하였다. 형아의 말대로 가도 가도 문방구는 보이지 않았다. "상우야, 이거 어째 너무 멀리 나와버린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더 가는 것은 그저 시간 낭비가 될 것 같아! 이 앞을 봐! 도로만 끝없이 펼쳐져 있잖아!" 어느덧 우리는 아파트 상점가 끝에 난 도로변에 와 있었다.
나는 그래도 "형아, 조금만 더 가보면 안 될까?" 하고 팔을 잡아끌었다. 형아는 어쩔 수 없이 이끌리듯이 나를 따라왔다. 이럴 때 보면 형아는 참 듬직하고 착한 사람 같다. 나 같으면 동생이 말도 안 되게 조르면, 매정하게 집에 갔을 텐데 말이다! 형아는 키가 나보다 조금 크고, 근육도 길러서 힘도 셀 것 같았다. 형아는 "상우야, 이 골목을 좀 봐! 이런 골목이 불량 청소년들이 많이 나오는 골목이야! 조심해야겠다. 이럴 때는 세뱃돈을 노리는 녀석들이 있기 마련이거든!" 하였다. "형아가 때려눕히면 되잖아! 고등학교 3학년 12명 정도는 끄떡없겠지?"
"그건 좀~ 만약에 모두 다 장애인이거나 다리가 부러졌다면 모를까? 고등학교 1학년 한 명 상대하기도 어려워!" 나는 문득 이렇게 어둡고 으슥한 길을 걷고 있으니, 우리가 설날 집을 나온 불량 청소년 같다는 상상을 했다. "형아, 형아는 혹시 불량 청소년이 되고 싶어?", "아니, 웬만한 재난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어느새 농협이 보였고 형아는 조금 지쳐 보였다. 문득 날 위해 귀찮아하지 않고 여기까지 와 준 형아가 고마웠다. "형아, 이제 집에 가자!", "하, 그래 그러자꾸나!" 우리는 영우 껌 하나를 사서 사이좋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집으로 향했다. 말썽꾸러기 동생 때문에 항상 볶이던 나에게 믿음직한 친형이 생긴 기분이었다.
2011.02.03 목요일
'집합이... 부분 집합... 공집합에...' 나는 너무 심심해서 할아버지 댁 안방 의자에 앉아, 중학교 수학을 노트에 필기해보고 있었다. 그때 '비리비리비! 비리 비리비리~!' 하는 초인종 소리가 귀속을 파고들었다. 나는 '막내 고모네가 오신 건가?' 기대하며 현관으로 나갔다.
문이 열리더니 제일 먼저 막내 고모, 그리고 고모부, 나와 동갑인 혜영이, 그리고 내가 그렇게 기다리던 정욱이 형아가 모습을 나타내었다. 나는 정욱이 형을 보자마자 형아 등을 두드려주며 웃었다. 형아도 그러는 나를 보고 살며시 웃었다.
형아는 마지막으로 본 할머니 칠순 때랑 그다지 달라진 점이 없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이 조금 길었나? "안녕, 형아?", "그래, 안녕!" 거실에서 가족들이 인사를 나누는 동안 우리는 조용한 안방으로 들어갔다. 정욱이 형아는 원래 그랬듯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상우야, 너는 글을 참 감성적으로 쓰더라!" 했다. "그게 내 스타일이야!"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형아 옆에 딱 붙어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다.
"중학교에 가면 공부는 많이 어려워져?", "수학은 중학교 초반이 초등학교 6학년보다 더 쉬운 것 같아.", "형아도 혹시 유희왕 카드 해?", "1년 전엔 했었는데, 엄마가 다 버리셨어!", "형아도 애들이랑 축구를 많이 해?", "축구는 가끔씩 하고 2학년 선배들이랑 하기도 해. 그리고 중학교 가면 축구보다 농구를 훨씬 더 많이 하게 돼!" 내가 이렇게 형아를 기다린 이유는, 대구에 넓은 할아버지 집에서 내 또래의 마음 놓고 얘기할 수 있는 상대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정욱이 형은 중학교 2학년, 나보다 두 살 많고, 어릴 때부터 명절이면 만나서 같이 뒹굴며 놀았었다. 정욱이 형아는 1년에 한 두 번 얼굴을 보지만, 가족이라 그런지 친하게 느껴져서 형아 오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또 집안이 너무 고요하고 영우는 까불기만 하고, 둘째 고모에 딸인 지현이 누나와 수연이는 대화하기가 쑥스러웠다. 나는 형아랑 걷고 싶어서 "형아, 우리 바깥에 나가서 산책이라도 할까?" 하였다. 형아는 "음, 글쎄, 그럴까나?" 하였다.
마루에 모여 앉아 다과를 즐기는 어른들에게 "저~ 저랑 형아 밖에 나가서 산책 좀 하고 올게요!" 하고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왔다. 우리가 나가는 길에 영우는 "껌 하나 사오면 고맙겠어!" 하였다. 아파트 밖을 나오자 대구는 밤이 되어, 남쪽이라는 것이 무색하게 추워서 옷깃을 여며야 했다. 낮에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창가에서 일광욕했었는데, 이제는 추위에 떨고 있으니 책 속의 태양을 잃어버린 종족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아파트 앞에는 슈퍼와 비디오방 하나만 문을 열고, 분식집, 미용실, 치킨집, 중국집, 약국, 모든 게 닫혀 있어서 유령 도시 같았다.
어둠속에서 나와 정욱이 형아는 입김을 호호~ 불며 앞으로 나갔다. 나는 뭐 재미있는 게 없나 찾아보다가, "형아, 있잖아, 우리 문구사를 찾아서 카드 한 번 뽑아볼까?" 하였다. 형아는 "그래, 그러자! 그런데 이 시간에, 게다가 설날인데 문을 연 문방구나 가게가 있을까?" 하였다. 형아의 말대로 가도 가도 문방구는 보이지 않았다. "상우야, 이거 어째 너무 멀리 나와버린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더 가는 것은 그저 시간 낭비가 될 것 같아! 이 앞을 봐! 도로만 끝없이 펼쳐져 있잖아!" 어느덧 우리는 아파트 상점가 끝에 난 도로변에 와 있었다.
나는 그래도 "형아, 조금만 더 가보면 안 될까?" 하고 팔을 잡아끌었다. 형아는 어쩔 수 없이 이끌리듯이 나를 따라왔다. 이럴 때 보면 형아는 참 듬직하고 착한 사람 같다. 나 같으면 동생이 말도 안 되게 조르면, 매정하게 집에 갔을 텐데 말이다! 형아는 키가 나보다 조금 크고, 근육도 길러서 힘도 셀 것 같았다. 형아는 "상우야, 이 골목을 좀 봐! 이런 골목이 불량 청소년들이 많이 나오는 골목이야! 조심해야겠다. 이럴 때는 세뱃돈을 노리는 녀석들이 있기 마련이거든!" 하였다. "형아가 때려눕히면 되잖아! 고등학교 3학년 12명 정도는 끄떡없겠지?"
"그건 좀~ 만약에 모두 다 장애인이거나 다리가 부러졌다면 모를까? 고등학교 1학년 한 명 상대하기도 어려워!" 나는 문득 이렇게 어둡고 으슥한 길을 걷고 있으니, 우리가 설날 집을 나온 불량 청소년 같다는 상상을 했다. "형아, 형아는 혹시 불량 청소년이 되고 싶어?", "아니, 웬만한 재난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어느새 농협이 보였고 형아는 조금 지쳐 보였다. 문득 날 위해 귀찮아하지 않고 여기까지 와 준 형아가 고마웠다. "형아, 이제 집에 가자!", "하, 그래 그러자꾸나!" 우리는 영우 껌 하나를 사서 사이좋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집으로 향했다. 말썽꾸러기 동생 때문에 항상 볶이던 나에게 믿음직한 친형이 생긴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