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도서관에서 먹은 라면

2010. 10. 12. 09:00일기

<종로도서관에서 먹은 라면>
2010.10.09 토요일

오늘은 주말에 집에서 뒹굴지 않고, 열심히 시험공부를 해보려고, 종로도서관 자율 학습실로 갔다. 중간고사 기간이라 중학생, 고등학생 형들이 줄을 많이 서 있었다.

나는 어렵게 구한 번호표를 가지고, 제4 자율 학습실로 들어가 공부를 하였다. 밖에 사직공원에서는 무슨 운동회가 열리는지,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고 "어기여차,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하는 소리로 한창 시끄러웠다.

그래도 나는 운동회에서 흘러나오는 <우유송> 리듬에 맞추어 즐겁게 수학 문제를 풀었다. 어느새 길고 어려웠던 수학 1단원이 끝나고, 시계는 3시 30분을 가리켰다. 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하였다. 나는 아빠가 두고두고 쓰라던 만원을 들고, 지하 1층의 매점으로 한달음에 겅중겅중 소리 없이 뛰어갔다.

도서관 식당도 도서관만큼이나 조용하였다. 어떤 중학생 누나들은 자율 학습실 자리를 못 구했는지, 식당에 자리를 잡고 공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아저씨가 양복을 차려입고 라면을 쯔읍꺽~ 쯔읍꺽~ 먹는 것을 본 순간, 라면을 먹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외가댁은 할아버지께서 채식주의자라 라면을 거의 안 드시는 편이기 때문에, 이상하게 밖에 나오면 라면이 땡긴다. 종로 도서관 식당은 다른 곳에 비해서 싼 편이다. 그리고 식당에 직접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매점에서 식권을 사서 식당에 내면, 음식을 받을 수 있다. 나는 이렇게 해보는 것이 처음이라, 매점 앞에서 쭈뼛 쭈뼛거리고 있었다.

매점 아주머니는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하신 듯 "뭐 줄까?" 하고 내게 물으셨다. 나는 작게 "라면 하나 주세요~" 속삭이며 기어들어 가는 듯한 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는 "잉~ 그려." 하시면서, 코팅된 초록색 작은 정사각형 모양의 종이를 내미셨다. 거기에는 검고 큰 글씨로 No.9 라면이라고 쓰여있었다. 나는 식당으로 쫄래 쫄래 뛰어가서는, 그 초록색 식권이라는 것을 식당 아주머니께 내밀었다.

아주머니는 한구석에 그 식권을 몰아넣고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셨다. 한 3분 정도 식당 앞을 서성거리니, 아주머니는 아무 말 없이 식당 입구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을 내놓으셨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 받고, 라면과 요즘 비싸서 보기 어려운 배추김치를 받아들고서, 식당의 한쪽 긴 식탁에 앉아 고개를 쑤셔 박고 푸르릅~ 쿠르륵~! 라면을 먹었다.

도서관에서 먹는 라면은 신기하게도 집에서 먹는 라면과는 다르게, 왠지 도서관의 조용하고 과묵함, 그리고 책 냄새가 배어 있는 듯 느껴졌다. 나는 라면을 마지막 국물까지 쫘악~ 들이켰다. 국물이 얼얼 시원하였다! 가슴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며, 머리가 맑아지고 배는 불러왔다. 마지막으로 김치를 와삭와삭 씹으며, 이번에는 사회 공부를 하려고 자율 학습실로 가는 계단을 상큼하게 밟았다. 거하게 꾸우욱~ 트림을 하고서 내 자리 247번을 찾아!

종로도서관에서 먹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