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공부

2009. 11. 18. 08:57일기

<벼락공부>
2009.11.16 월요일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후닥닥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어제 풀던 수학 문제집을 찾으며 엄마를 애타게 불렀다. "엄마, 엄마~ 어제 수학 부탁드린 거, 채점하셨나요?"

"어, 그래, 상우야, 여깄다~" 엄마는 닥닥 둑 발소리를 내며 급하게 내 방으로 오셨다. 마침 엄마는 나갈 준비를 하고 계셨다. "어때요? 많이 틀렸나요?" 건네받은 문제집을 푸루루 펴보는데, 엄마 표정이 좀 묘했다.

어제 밤늦게까지 수학 문제를 풀다가 시간이 늦어서 엄마에게 채점을 부탁했었다. 이번 시험은 중간고사를 건너뛰고 보는 시험이라 범위가 아주 넓어졌다. 나는 계속 감기가 낫질 않아 수업 시간에 집중력이 흐트러진 경우가 많았고, 다른 때보다 의욕도 떨어지고 시험준비도 너무 힘들었다. 엄마는 얼굴을 찌푸리고 입을 쏙 내미시며, "그런데 상우야, 난 괜찮은데 네가 충격받을까 봐 두려울 뿐이야!" 하시는 거였다.

난 순간 가슴이 철렁하며 "에이, 왜 그러세요? 얼마나 틀렸길래요? " 하고 문제집을 펼쳐보았다. 75점, 75점, 70점, 40점! 이게 웬일인가? 갈수록 떨어지는 꼴이, 거대한 날개로 힘겹게 하늘을 날다가, 땅에 떨어져 퍽 박힌 것처럼 비참했다. 나는 꼭 뭉크의 절규 그림처럼 입을 벌리고, 오목하게 들어간 볼을 두 손으로 쓸어내렸다. '안돼~ 난 할 일이 많다고! 공부를 열심히 잘해서 돈 많이 벌어 아빠 엄마 고생도 덜어 드리고, 의사가 돼서 어려운 사람들도 도와야 하는데, 이 점수로 어떡해?' 난 바람 빠진 튜브처럼 한숨이 나고 당장 내일이 시험날인 것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만 우에에 울어버리고 싶어서 입을 삐죽거리는데, 엄마가 재미있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왜 그러니? 시험 끝나기라도 했니? 생각해 봐. 너에겐 오늘이라도 주어졌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만약 너에게 오늘 하루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고 그냥 시험을 쳤다면 어땠을까? 아직 기회는 있단다. 마지막 역전의 기회! 틀린 것을 잘 보렴. 어떤 공식 하나를 잘못 이해해서 그것과 관련된 문제가 줄줄이 틀렸더라." 나는 우와~하고 달려들어 엄마를 끌어안으며 고맙다고 하자, 엄마는 켁켁하며 내 등을 한번 두드리고 "밥 차려놨으니까 영우 밥 주는 거 잊지 마라!" 하고 나가셨다.

나는 더 떨어질 곳이 없다고 생각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앉아 틀린 문제를 다시 풀어보았다. 문제가 너무 많아 조급해지지 않으려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서 한문제 한문제, 다시 풀고 답을 맞혀 나갔다. 영우랑 밥을 먹을 때도 놀지않고 한 손에 문제집을 들고, 젓가락으로 무나물 반찬에 소수 곱셈을 쓰며 먹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덧 천 길로 추락했던 나에게 다시 하늘이 보이고, 이제 올라갈 곳만 남았다는 자신이 생겨났다. 그러면서 흐흐 웃음이 나왔다. '나 참~ 매일 이렇게 공부하면 시험이 문제가 아니라 도사가 되겠어!' 나는 벼랑 아래서 다시 쭉쭉 올라가는 기분이 들어 공부할수록 마음이 가벼워졌다.

벼락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