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퀴즈를 즐겨요!

2009. 11. 5. 08:55일기

<순수 퀴즈를 즐겨요!>
2009.11.02 월요일

6교시 실과 시간에 재미있는 퀴즈 놀이를 했다. 선생님께서 "자, 이 퀴즈는 7살, 8살 어린이들이 문제를 낸 것인데 문제를 맞추는 열쇠는, 여러분의 관점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TV 화면 하얀색 바탕에 <순수 퀴즈>라는 예쁜 파란색 글자가 둥~ 떠올랐다. 나는 왠지 그 글자가 마음에 들었다. "먼저 손을 들고 자기 이름을 크게 부르는 사람에게 맞출 기회를 줄게요. 개인이 얻은 점수는 그 모둠의 점수가 됩니다!" 하며 선생님이 칠판 중간에 분필로 모둠 점수판을 차례차례 똑 또 뚝 써넣으셨다.

첫 번째 문제는 '이것은 쓸 때마다 인사를 해요!'였다. "저거 뭔 줄 알겠어?", "나도 몰라~." 문제가 나가자마자 아이들은 난리가 났다.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연필! 수도꼭지! 이름! 같은 답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뭘까? 생각하다가 순간,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플라스틱 컵과 그 안에 있는 보리차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감기를 오래 앓아서 집에서 보리차를 자주 끓여 먹었는데, 물이 다 끓으면 주전자를 들어 조심조심 숙여서 꼬로록 물을 따랐다. 그때마다 주전자가 인사하는 것 같아서, 나도 같이 마주 인사하는 흉내를 내곤 했는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순간, 아~! 하고 마음속 눈이 커지며 저절로 손이 번쩍 올라갔다. 민웅! 현국! 리주! 하고 자기 이름을 외치며, 열심히 손을 드는 아이들 목소리를 뚫고, "상우우~ 사앙우우~!" 하고 애타게 외쳤다.

그랬더니 우리 반 전체가 조용히 내 쪽을 돌아보며 웃음을 터뜨렸고, 선생님도 흠후~ 웃으시며 "그래, 상우~" 하셨다. 나는 자랑스럽게 "주우 저언 자아~!" 하고 띄엄띄엄 힘주어 말했다. 선생님은 두 손을 턱밑에 마주 보고 세운 채, 볼을 옴폭 들어가게 해서 입을 쏙 내밀고 호오오~ 하셨다. 나는 내가 답을 맞힌 것을 알고 두 주먹을 꼭 쥐고 흔들면서 이야아아~ 했다. 우리 모둠 아이들도 오~ 감탄했다. 선생님도 "상우, 정말 천재적인데! 선생님은 단 한 문제도 힌트가 나가기 전까지는 못 맞힐 줄 알았어!"

바로 다음 문제를 1모둠 중진이가 멋지게 맞히고 난 뒤, '엄마는 놀라고 아빠는 눌러요!'라는 문제가 나왔다. 나는 다시, 어린 시절 내가 경험했던 머릿속 필름을 찬찬히 풀어보다가, 문득 한 장면을 건졌다. 내가 어릴 적 외할머니댁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이달의 할 일과 주의점을 직접 적어놓으신 벽에 걸린 작은 칠판 뒤에서, 코코아색 고구마를 닮은 작은 것이 스멀스멀 기어내려왔다. 그때 엄마와 할머니는 으왓! 놀라셨고, 아빠는 휴지를 집어들고 무술 영화에 나오는 사람처럼 고구마 물체를 푸왁! 쳤다. 그리고는 땅에 떨어진 그 물체를 휴지로 싸서 버리셨다. 가까이서 보니 그것에 다리가 달려서 기기기긱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당당하게 손을 들며 "상우! 바퀴벌레!" 하고 소리쳤다. 이번에도 또 아이들 사이에서 우와! 우오!~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번엔 거의 마지막 문제, '아빠한테서 전화가 오면 엄마가 이말 먼저 해요!'가 나오자, 나는 또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들고 "상우! 어디야?" 했다. 우와와~! 또 한 번 환호 소리가 터졌다. 우리 모둠은 문제를 잘 맞히던 중진이가 속해있는 1모둠을 4대 2로 누르고 승리하였다. 이 놀이는 시합이라기보다는 마음을 비우고 즐기는 놀이란 생각이 들었고, 내가 아직 마음이 어려서 문제를 잘 맞춘 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상우가 아주 아주 어릴 때 그린 그림>
순수 퀴즈를 즐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