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회장 선거

2009. 3. 14. 09:09일기

<전교 회장 선거>
2009.03.13 금요일

선생님은 얼마 전에 교실에 새로 들어온 TV를 자랑스럽게 켜셨다. 그리고 전교 회장 선거가 열리는 우리 학교 강당이 나오는 화면에 채널을 맞추시고, 회장, 부회장 후보의 연설을 들으라고 하셨다.

5, 6학년 중 자원한 열 몇 명 되는 후보들의 연설을, 하나하나 방송으로 들으며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연설을 들으며 무엇보다 화면에 비추는 후보들의 눈빛을 자세히 관찰했다. 나는 눈빛을 통해 그 사람의 속마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어떻게 눈빛을 통해 아느냐고?

그 기준은 간단하다. 자신을 사랑하고, 삶에 대한 의지와 목표가 있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은 눈에서 푸른 빛이 나온다. 아니, 눈빛에서 푸른 희망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눈빛은, 나이가 아주 많은 할아버지도 함께 기분이 좋아지는 웃음을 지을 수 있게 만든다. 그러니까 전교 회장이 되려면 회장이 되겠다는 의지와, 책임감과 자신감이 눈빛으로 서려나오는 후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후보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대부분 목욕탕에 들어가면 안경에 끼는 김처럼, 눈이 초점 없이 흐린 편이었다. 나는 계속 맑은 눈빛을 찾으며 연설을 들었다. 어떤 사람은 중간에 연설할 것을 까먹고 흐지부지하고, 어떤 아이는 전교 회장 선거에는 어색한 톨스토이를 들먹이며, 너무 거창하게 굴었다.

어떤 후보는 내가 잘 아는 아이였는데, 난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평소에 그 아이는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굴었기 때문이다. 후보들이 갑자기 나와서 이런 걸 하려니, 긴장해서 힘들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아주 통쾌하고 활기찼던 지난해 회장 선거 후보들의 연설이 떠올라서 아쉬웠다.

지금의 후보들은 너무 답답하고 수줍은 것 같다. 전교 회장이란 어떤 자리인가? 일년내내 학교를 위해 자기 몸 가리지 않고 봉사활동 하는 건 기본이고, 학생들의 소리를 한데 모아 불합리한 제도를 선생님께 건의해서 뒤바꿀 수도 있는 막중한 자리이다! 그래서 비실비실한 말 여러마디보다는 '수요일의 전쟁'에 나오는 베이커 선생님처럼, 짧지만 강하게 심장에 박히는 말을 할 수 있는 자세가 꼭 필요한 것 같은데...

꽤 지루한 선거 연설 때문에, 갈수록 방송을 보는 아이들의 태도는 산만해졌고, 선생님은 자꾸 날카로워 지셨다. 나는 끝까지 쏙 맘에 드는 후보를 발견하진 못했지만, 그중 엄마가 시켜서 나온듯한 연설을 한 후보와, 자신의 행동은 돌아보지 않고 권력이 탐이 나서 나온듯한 후보는 빼고, 말투와 눈빛이 어눌해도 뭔가 의지의 불씨가 엿보이는 후보를 골라 남자 한 명, 여자 두 명, 이렇게 적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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