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는 아기

2009. 2. 25. 09:53일기

<욕하는 아기>
2009.02.22 일요일

일요일 저녁, 아빠 친구 가족을 만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우리는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틈을 타서 밥을 대충 먹고, 식당 안에 있는 놀이방 게임기 앞에서 기웃거렸다. 오락기 앞에는 아이들이 전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신나게 타다다닥~ 버튼을 두드리고 있었다.

아쉬운 대로 구경이라도 하려고, 게임을 하는 아이 자리 뒤에 바짝 파고들어 앉았는데, 바로 옆에서 째지는 소리가 들렸다. "야 이, 병신아, 꺼져! 여기는 내 자리야!" 그 소리의 주인공은 아직 걸음걸이와 몸짓도 엉성한 아기였다. 한 3살쯤 되었을까?

우리 바로 옆자리에서 어떤 중학교 2학년 형아가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조그만 아기가 비키라고 호통을 치는 것이다. 그것도 욕을 하면서! 중학교 형아는 아기를 보고 어이가 없어서, 입을 동굴처럼 떡 벌리고 눈도 부엉이처럼 동그래졌다. 그러나 형아는 곧 귀찮다는 듯이, 다시 고개를 돌려 게임에 열중했다.

아기는 형아에게서 오락기를 뺏으려고 계속 욕을 했다. 나는 보다 못해 아기를 달래는 말투로 "저기, 얘야~ 그런 말은 안 좋은 말이거든~ 어릴 때부터 그런 말을 쓰면," 하고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 새끼야, 넌 빠져, 쨔샤!"하는 욕이 돌아왔다.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아이는 분명히 아기였다! 볼도 빨갛고 눈도 반짝반짝 빛나는...

그 아기는 형아의 오락기를 뺏으려고 떼를 쓰다가, 실수로 오락기를 두드리는 형아의 팔에 부딪혀서 방바닥에 넘어져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다. 종업원 누나가 놀이방을 지나치다 그 아기를 보고 달래주었다. 아기는 누나 옆에서 우리를 보고 메롱 메롱 하다가, 누나가 가고 나니까 이번에는 두 주먹을 쥐고 한쪽 주먹을 하늘로 높이 쳐들면서 "슈퍼맨~ 야, 이 악당 새끼들아, 꺼져!" 하고 쩌렁쩌렁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아기는 아기의 엄마가 밥 먹자고 데리러 와서, 엄마의 품에 안겨 오락실 밖으로 나갔지만, 나는 한숨이 나왔다. 더 놀이방에 있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생긴 것도 제법 귀엽게 생긴 아기가 왜 그런 욕을 입에 달고 살까? 파파팟 총을 쏘고 치고받는 게임기 화면을 보다가 순간, 머릿속에 온갖 폭력 장면이 많은 텔레비전 만화 영화, 거친 말투의 개그 프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험악한 분위기의 드라마, 이런 것들이 막 한꺼번에 떠올랐다.

만약 저 아기가 아침에 눈을 떠서 하루 종일 보고 듣는 것이 그런 것들이라면? 생각만 해도 섬찟하다. 난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텔레비전을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 엄마가 왜 텔레비전을 어릴 때 못 보게 하셨는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나는 식당을 나가면서 그 아기의 가족이 앉은 자리를 지나가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기를 쳐다보고 잠깐 기도를 했다. '하느님, 부디 저 아기를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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