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 판화는 살아있다!

2008. 5. 31. 17:54일기

<고무 판화는 살아있다!>
2008.05.27 화요일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이면지를 나누어 주시며 "너희들이 판화에 새기고 싶은 그림을, 이 이면지에 밑그림으로 여러분 마음껏 그려보세요!" 하셨다. 나는 이면지에 화분에 심은 예쁜 꽃 한 송이를, 물결 치는 듯한 느낌으로 그렸다.

밑그림을 다 그리고 나자, 이제 우리가 이면지에 그려놓은 그림을 보고 고무 판화에 옮겨 조각칼로 새기기 시작했다. 이 작업이 상당히 까다로워, 우리는 땀을 흘리며 끙끙 조각칼로 그림을 새겼다. 나는 조금 더 쉽고 잘 그릴 수 없나 생각하다가, 이면지에 그린 그림을 고무 판화에 올려놓고, 연필 자국을 따라 칼로 살살 본을 떴다.

그렇게 하니까 힘도 덜 들고 새기는 것이 더욱 즐거워졌다. 이면지를 치우고 고무 판화 위에 남은 꽃 모양을 더 크고 굵게 새겼다. 여기서 보통 네모난 조각칼로 흠을 팠는데, 칼날이 넓적해서 잘 파지지도 않고, 빡빡해서 잘못하면 손을 다칠 수도 있었다.

나는 v자 모양으로 생긴 모난 칼을 꺼내어 파 보았다. 그랬더니 빡빡하지 않고 술술 잘 파졌다. 조각칼이 잘 새겨지니 달콤한 솜사탕을 입에 문 채, 순풍에 사사 사삭 미끄러지는 배를 탄 기분에 빠져 나는 판화를 새겨나갔다.

드디어 한지 위에 판화를 찍는 작업에 돌입하였다. 교탁 옆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줄을 서서 차례가 되면, 자기가 새긴 고무판을 신문지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롤러에 먹물을 묻혀 고무판에 페인트칠을 하듯 스르륵 문지른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이 신이 나서 어깨가 우쭐우쭐하였다. 마치 우리가 크리스마스 때, 어린이들에게 줄, 특별한 고무 판화 선물을 제작하는 산타 할아버지들이 된 기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나누어 주신 한지를 고무판 위에 척 얹고, 마른 천으로 싹싹 문질렀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판화가 찍혀 나왔을까 궁금해서 심장 소리가 쿵쿵 울리는 것을 느끼며, 투우사처럼 한지 윗부분을 두 손으로 얍! 하고 들어 올렸다. 그랬더니 깃발처럼 펄럭이는 한지 위에, 살아서 꿈틀대듯 이글거리는 흑백 꽃 그림이, 춤추듯 살랑살랑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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