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gwooDiary.com(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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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힘든 아이
2008.02.02 토요일 학교는 개학을 맞아 활기가 넘친다. 방학 때는 입을 굳게 다문 얼음 궁전처럼 차갑기만 했던 학교가, 교실마다 보일러 가동하는 소리와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로 추위를 몰아냈다. 4교시 수학 시간을 앞두고 교실 안은 여전히 아이들 잡담 소리로 떠들썩하였다. 나는 3교시 수 맞추기 수업이 너무 재미있어서, 다음 시간은 어떨까 기대에 부풀어 딸랑딸랑 눈을 예쁘게 뜨고 앉아 선생님을 기다렸다. 갑자기 교실 문이 끼익 열리면서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그래도 아이들은 잡담을 멈추지 않고 계속 떠들어댔다. 누군가 선생님께 나아가 무언가를 이르듯이 말했다. 처음엔 무슨 이야긴지 잘 들리지 않았으나, 말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아이들도 일제히 잡담을 뚝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우리 반 호봉이가 3학년..
2008.02.03 -
얼어붙은 호수
2008.1.27 일요일 호수는 살얼음이 얼었고, 그 위로 흰 눈이 얇은 담요처럼 깔렸다. 호수 전체가 햇살을 반사해 반짝반짝 빛난다. 호수는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얼었는지, 속을 알 수 없을 만큼 드넓다. 언 호수 위에 놓인 나무다리가, 마치 한 세계와 또 한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처럼 보인다. 나는 무엇에 끌려가듯 성큼성큼 그 다리로 뛰어간다. 나는 나무다리를 삐걱삐걱 밟고 내려가, 다리 위에 털썩 주저앉아 언 호수를 내려다본다. 언 호수와 내 발끝은 닿을락 말락 가깝다. 멀리서 보았을 땐, 얼음이 얇아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돌처럼 단단해 보인다. 신기하게 호수 위 쌓인 눈에 발자국이 나있다. 그것도 온 호수를 가로질러 촘촘하게 눈도장을 찍은 것처럼! 누군가 언 호수 위에 이름을 남기려 죽음을 무..
2008.01.28 -
구사일생
2008.01.21 월요일 피아노 학원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께서 잘했다고 주신 젤리를 냠냠 먹으며 돌아올 때, 공원에 쌓인 눈이 나뭇가지로 새어들어 오는 햇살을 받으며 짠 녹고 있었다. 그러자 공원 길 전체가 이제 막 녹기 시작한 거대한 얼음 덩어리처럼 꿈틀거리는 것 같았고 무지 미끄러웠다. 나는 문득, 지금은 방학이라 한동안 가보지 않았지만, 학교 다닐 때 우석이랑 잘 다녔던 우리만의 지름길인 가파른 언덕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언덕은 풀이 많고 몹시 경사가 험해서, 한번 발을 내딛으면 중력의 작용 때문에 높은 곳에서 아래로 쉬지 않고 굴러 떨어지는 사과처럼, 단숨에 와다다다 멈추지 않고 아래로 뛰어내려 와, 우리 집과 우석이네로 갈라지는 길 위에 떨어지게 된다. 언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하..
2008.01.22 -
영풍문고가 좋아!
2008.01.19 토요일 주말을 맞이하여 오랜만에 차를 타고 서울, 영풍문고로 향했다. 3학년 1학기 교내 음악제에 나갔다가 부상으로 받은 도서 상품권을 책상 서랍 속에 꼭꼭 모셔 두었었는데, 드디어 오늘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리고 영풍문고는 아주 오랜만에 가보는 것이라 마음이 떨렸다. 차를 타고 달리며 바깥을 구경하니 세상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로 옆에는 거대한 아파트 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하늘에는 얇은 비행기가 바람을 타고 위태롭게 날았다. 아빠가 그건 비행기가 아니라 글라이더라고 하셨다. 나는 처음 세상 구경을 하러 나온 산골 소년처럼 차 창문에 코를 박고 바깥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영풍문고 지하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차에서 뛰어내렸다. 도서 상품권 봉투..
2008.01.20 -
난타 연습
2008.01.17 목요일 오늘은 피아노 학원에서 난타와 합창 연습이 있는 날이다. 합창 연습을 마친 뒤, 학원 중앙 복도에 난타 연습하는 학생들만 모여 앉았다. 선생님들께서는 중앙 복도 괘종시계에 커다란 악보를 붙이고 계셨다. 악보에는 의 음표와 박자, 여자와 남자가 따로 연주할 부분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되어 있었다. 준비가 너무 길어 심심해진 나는 두 손을 쫙 펴서 꼿꼿하게 만든 다음, 옆자리에 앉아 있는 김기수에 등을 콱 찔렀다. 그러자 기수도 손모양을 나처럼 하고 내 어깨를 찔렀다. 우리는 계속 서로 몸 여기저기를 찌르며 장난을 쳤다. 그러다 뭔가 뜨거운 눈초리가 느껴져 번갯불을 맞은 듯 흠칫하였다. 원장 선생님께서 "거기 둘, 나가!" 하셨고, 우리 둘은 피아노 학원 들어서는 입구로 ..
2008.01.18 -
사법연수원에서 술래잡기
2008.01.15 화요일 우리 가족은 사법연수원 졸업생 가족 대기실을 찾아 허둥지둥 뛰어갔다. 제2교실에서 수료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막내 삼촌을 찾아보려고 애썼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교실 입구부터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어서, 뚫고 들어가기가 힘들었고, 어른들 키에 가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영우 손을 꽉 잡고 단단한 돌을 밀어내듯이 사람들 사이를 헤쳐나가, 고개를 자라같이 쑥 내밀고 교실 안을 둘러보았다. 졸업생들이 수료증을 받으려고 책상 앞에 대기하고 앉아 있다가, 이름이 불리면 차례대로 교탁 앞으로 나와 수료증을 받았다. 하나같이 양복을 입고 있어서 다 삼촌같이 보였다. 삼촌은 뒷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놀랍게도 우리를 먼저 알아보고 번쩍 손을 흔들어 주었다. 마치 우리를 애타게 기다..
2008.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