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gwooDiary.com(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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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의 라틴 댄스
2009.11.22 일요일 포천 허브 아일랜드 연못은 벌써 살얼음이 얼었다. 추워서 덜덜 떨며 걷다가, 우리는 라틴 댄스 공연을 하는 임시 야외무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야외무대를 둘러싼 울타리 바깥에서 공연을 지켜보았다. 나무로 만든 무대 끝 사람들 앞으로,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어린 무용수들이 줄지어 걸어나왔다. 모두 석고상같이 하얀 얼굴에 고양이처럼 길게 올라간 눈 분장을 하였다. 남자 아이들은 가슴이 파진 검은 블라우스에 꽉 끼는 검은 바지를 입었고, 여자 아이들은 화려한 비키니 수영복같이 거의 살이 드러나는 무대 옷을 입고 나왔는데, 바람이 차가운데다 빗방울까지 날려서 참 딱해보였다. 대부분 키는 나보다 조금 커 보이는데, 몸은 내 반쪽만큼 말랐을까? 추워서 그런지 긴장해서 그런지 다 ..
2009.11.23 -
찬솔이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2009.11.20 금요일 1교시 수업 시작을 앞두고 주위를 한번 비잉 둘러보았는데, 찬솔이 자리가 오늘도 텅 비어 있었다. 어제 찬솔이가 결석했을 때는 '에구, 이 녀석 시험 점수 나오는 날이라 안 온 거 아냐?' 했는데, 오늘은 왜 안 왔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도 반바지를 입고 와서, 선생님께 제발 긴 바지 입고 다니라고 걱정을 들을 만큼 건강한 찬솔이가 어디 아픈 건 아닐까? 나는 내 짝 수빈이에게 "오늘 찬솔이, 왜 안 온 줄 아니?" 하고 물었다. 수빈이는 아무 말 안 했는데, 그때 나보다 두 칸 더 앞에 앉은 경모가 약간 찡그린 얼굴로 속삭였다. "찬솔이 할아버지, 돌아가셨어어~!" 나는 머리가 멍했다. 순간 1교시 수업 준비를 하며 평화롭게 술렁거렸던 교실 안이..
2009.11.21 -
벼락공부
2009.11.16 월요일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후닥닥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어제 풀던 수학 문제집을 찾으며 엄마를 애타게 불렀다. "엄마, 엄마~ 어제 수학 부탁드린 거, 채점하셨나요?" "어, 그래, 상우야, 여깄다~" 엄마는 닥닥 둑 발소리를 내며 급하게 내 방으로 오셨다. 마침 엄마는 나갈 준비를 하고 계셨다. "어때요? 많이 틀렸나요?" 건네받은 문제집을 푸루루 펴보는데, 엄마 표정이 좀 묘했다. 어제 밤늦게까지 수학 문제를 풀다가 시간이 늦어서 엄마에게 채점을 부탁했었다. 이번 시험은 중간고사를 건너뛰고 보는 시험이라 범위가 아주 넓어졌다. 나는 계속 감기가 낫질 않아 수업 시간에 집중력이 흐트러진 경우가 많았고, 다른 때보다 의욕도 떨어지고 시험준비도 너무 힘들었다. 엄마는..
2009.11.18 -
장래 희망
2009.11.09 월요일 우리 반은 지난주, 말하기 듣기 쓰기 시간에 이란 시를 공부했다. 이 시의 내용은 이렇다. 아버지가 문 짜는 공장 직공인 주인공은, 사회시간에 장래 희망을 발표한다. 나도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아 문 짜는 기술자가 희망이라고. 그러자 반 아이들이 그게 무슨 희망이냐고 모두 비웃는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앞뒤 생각 없이 대통령, 국회의원, 의사, 변호사 하는 것보다 백배, 천배 나은 꿈이라며 칭찬하시고, 주인공은 그제야 어깨를 편다는 내용의 시다. 그리고 숙제로 똑같은 제목의 시를 써서 오늘 발표하기로 했다. 드디어 선생님께서 "90쪽 펴기 전에 지난번에 했던 숙제 89쪽 펴보세요! 자아~ 9번!" 하셨다. 마침 내가 딱 걸렸다. 나는 내가 공들여 쓴 장래 희망이란 시를 더듬더듬 ..
2009.11.10 -
매운맛은 싫어!
2009.11.05 목요일 이른 저녁 아빠와 상가 병원에 갔다가, 상가 2층 식당에서 뼈 해장국을 먹었다. 그런데 밥을 다 먹었을 때쯤 갑자기 잔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잔기침을 없애는 데는, 매운 음식을 먹는 것이 도움된다고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났다. 그래서 나는 눈앞에 보이는 반찬 그릇에 담긴 파란 고추 중에, 내 셋째 손가락만 한 크기의 제일 작은 고추를 하나 집어들었다. 이제 된장에 푹 찍어서 한입 뿌드득~ 베어 물었는데, 그 순간은 푸릇푸릇한 고추가 맛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씹으면 씹을수록 뭔가 맛이 쓰고 이상했다. 난 속으로 '애걔걔, 내가 벌써 12살인데 겨우 이런 고추 하나를 못먹나?' 하며 더욱더 꽈직꽈직~ 씹어먹었다. 쓴맛이 점점 매운맛으로 변하더니, 그냥 매운 게 아니라 혀가 잘리는..
2009.11.07 -
순수 퀴즈를 즐겨요!
2009.11.02 월요일 6교시 실과 시간에 재미있는 퀴즈 놀이를 했다. 선생님께서 "자, 이 퀴즈는 7살, 8살 어린이들이 문제를 낸 것인데 문제를 맞추는 열쇠는, 여러분의 관점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TV 화면 하얀색 바탕에 라는 예쁜 파란색 글자가 둥~ 떠올랐다. 나는 왠지 그 글자가 마음에 들었다. "먼저 손을 들고 자기 이름을 크게 부르는 사람에게 맞출 기회를 줄게요. 개인이 얻은 점수는 그 모둠의 점수가 됩니다!" 하며 선생님이 칠판 중간에 분필로 모둠 점수판을 차례차례 똑 또 뚝 써넣으셨다. 첫 번째 문제는 '이것은 쓸 때마다 인사를 해요!'였다. "저거 뭔 줄 알겠어?", "나도 몰라~." 문제가 나가자마자 아이들은 난리가..
2009.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