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gwooDiary.com(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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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을 입은 손가락
2009.12.10 목요일 점심을 먹고 나서 아이들 대부분이 운동장으로 나가 놀았는데, 나는 기침이 나와서 교실로 올라왔다. 진석이와 경석이도 여느 때와 다름 없이 교실 뒤편에서 진드기처럼 딱 붙어 장난을 치고 있었다. 진석이는 경석이 등에 고동이 조개 잡는 모양으로 대롱대롱 달라붙었다가, 두 팔을 집게처럼 벌려 경석이 머리를 꽉 안고 격투기 하듯이 찍어눌렀다. 경석이는 으어어~ 하면서 진석이를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둘은 서로 쫓고 쫓기다 교실 문이 있는 사물함 옆까지 바짝 갔는데, 그만 다리가 엉켜 중심을 잃고 온몸을 기우뚱거렸다. 바로 그 옆을 지나가던 나는, 아이들이 넘어져서 머리라도 다칠까 봐 받치려고 오른손을 뻗었는데, 아이들 밀치는 힘에 밀려 갑자기 교실 문이 내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틈..
2009.12.11 -
눈 내리는 점심 시간
2009.12.08 화요일 4교시 과학 시간이 끝나고, 현국이와 학교생활 이야기를 하며 교실 뒤를 나란히 어슬렁어슬렁 걷는데, 갑자기 현국이가 "눈이다~!" 하며 창문 쪽으로 푸두두닥~ 뛰어갔다. 뛰어가면서도 "눈이다!" 하는 현국이의 짧고 큰 외마디가, 벌써 내 눈을 시원하게 깨우는 것 같았다. 나도 몇 분 전부터 공기가 이상하게 움직이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는데, 이제 하늘에서 눈이 퐁야퐁야 내리고 있다. 나도 창문으로 달려가 "나도 좀 보자!" 하고 현국이를 밀어내고, 창밖을 바라보며 "후아아~!"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사탕에 개미가 꼬이듯 바글바글 창 앞으로 모여, "진짜 눈 와?", "와! 눈이다아~! 눈이야아~!" 외쳤다. 눈은 촘촘하게 짜진 그물처럼, 엄마가 나물 위에 뿌리는 깨처..
2009.12.09 -
기적의 태양
2009.12.03 목요일 5교시 과학 시간 그렇게 기다려왔던, 우리가 사는 태양계를 배우는 우주 단원에 처음 들어갔다. "모두 과학책 65쪽을 펴세요!" 하는 선생님의 말씀과 함께 아이들은 모두 매끄럽게 수루락~ 책을 펼쳤다. 우주 단원의 첫 장은, 보석처럼 총총총 우주에 박힌 별들과 인공위성, 그리고 가장 멀리에서 찬란한 빛을 비추는 태양이 있는 그림으로 시작하였다. 그 그림을 보는 순간, 마치 내가 우주선의 해치를 열고 우주와 맞닥뜨린 것 같은 충격에 사로잡혔다. 선생님께서 리모컨을 멋지게 잡고 TV 화면 쪽으로 손을 쭉 뻗어 버튼을 누르셨다. TV에는 과학책과 비슷한 그림이 떴다. 선생님이 바로 의자에 앉아 컴퓨터 마우스를 토돗~ 네 번 누르시고 나니까, TV 속 그림 위에 노란색 네 가지 글귀들..
2009.12.05 -
쉬는 시간의 풍경
2009.12.01 화요일 2교시에 있을 한자 인증 시험을 앞두고, 우리 반은 여느 때와 같이 쉬는 시간을 맞았다. 기말고사가 끝나서 긴장이 풀렸는지 한자 공부하는 아이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아니면 나만 빼고 모두 시험 준비를 마쳐서 자신에 넘쳐 있거나! 나는 문제지에 나온 한자 위에 손가락을 대어 덧써보다가, 아이들이 너무 자유롭고 신나게 노는 걸 보고, 나만 이러고 있는 게 잘못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일어서서 의자를 앞으로 밀어 넣고 교실 뒤로 걸어나간다. 원래 미술실이었던 우리 교실 뒷부분은 다른 반 교실보다 엄청 넓다. 그중 제일 오른쪽 구석 바닥에 처박히듯 털썩 주저앉는다. 나는 옷 뒤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쓰고 벽에 기댄 자세로 느긋하게 앉아서 아이들이 노는..
2009.12.02 -
신종플루 백신을 맞아요!
2009.11.25 수요일 오늘은 우리 학교 전체가 신종플루 백신 주사를 맞는 날이다. 보건소에서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나오셔서, 강당에서 직접 백신을 놔주셨다. 강당 안은 톡 쏘는 알코올 소독약 냄새가 솔솔 흘렀다. 강당 안 제일 오른쪽은 주사 맞기 전에 상담하는 줄, 중간은 주사 맞는 줄, 왼쪽은 주사 맞고 나서 변화가 있나 20분 동안 관찰하는 줄이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먼저 예진표를 보고 "축농증 있다고 하던데 괜찮니?"하고 물으셨다. 나는 대답을 하려는데, 갑자기 기침이 켈륵켈륵 나왔다. "음~ 기침은 좀 하고 다른 증상은 없어?", "네, 토도 가끔 나와요." 그러자 "백신 맞는 데는 이상 없겠구나, 그럼 가서 백신 맞으렴! 다음!" 하셨다. 나는 백신을 맞을 수 있게 된 사실에 안심..
2009.11.28 -
밥 두 공기
2009.11.24 화요일 오늘은 늦잠을 자서 아침밥을 거른 채 학교에 갔다. 그래서 오전 내내 배가 고팠다. 어제저녁에 먹었던 아주 질고 맛없던 밥도 옛날처럼 아쉽고 그리워졌다. 배가 한번 고프기 시작하니 뱃속에서 고골고골 앓는 소리가 나면서 배가 밑으로 폭삭 꺼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수업을 들으면서도 때때로 혀를 힘없이 쏙 내밀고, 손으로 꽈르륵거리는 배를 계속 사알살 문지르며 달래주어야 했다. 급식 시간이 되자 나는 오징어 볶음을 밥에 비벼서 푸바바밥!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치웠다. 그러나 활활 타는 소각로에 휴지 한 조각 넣은 느낌이 들 뿐, 별로 배가 차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밥을 열 그릇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오늘은 수업 끝나고 1학년 6반 교실을 청소하는 날이었다..
2009.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