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옷을 입은 손가락

2009. 12. 11. 09:01일기

<갑옷을 입은 손가락>
2009.12.10 목요일

점심을 먹고 나서 아이들 대부분이 운동장으로 나가 놀았는데, 나는 기침이 나와서 교실로 올라왔다. 진석이와 경석이도 여느 때와 다름 없이 교실 뒤편에서 진드기처럼 딱 붙어 장난을 치고 있었다.

진석이는 경석이 등에 고동이 조개 잡는 모양으로 대롱대롱 달라붙었다가, 두 팔을 집게처럼 벌려 경석이 머리를 꽉 안고 격투기 하듯이 찍어눌렀다. 경석이는 으어어~ 하면서 진석이를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둘은 서로 쫓고 쫓기다 교실 문이 있는 사물함 옆까지 바짝 갔는데, 그만 다리가 엉켜 중심을 잃고 온몸을 기우뚱거렸다. 바로 그 옆을 지나가던 나는, 아이들이 넘어져서 머리라도 다칠까 봐 받치려고 오른손을 뻗었는데, 아이들 밀치는 힘에 밀려 갑자기 교실 문이 내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틈 만큼 끼유욱~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런데 하필 운 나쁘게 내 가운데 손가락이 그 문틈으로 들어갈 줄이야!

그리고는 진석이가 문쪽으로 쓰러지며 빠지직~ 문이 닫히고, 내 손가락은 푸학~하는 소리와 함께 심하게 찧고 말았다. 나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러나 왼손으로 문을 당겨 얼른 손을 빼내고 손가락을 살펴보았다. 손가락의 앞면은 괜찮았지만, 뒷면이 좀 패여서 넓게 찢어져 있었다. 나는 뼈가 괜찮은지 살피려고 평소처럼 뚝~ 하는 느낌이 나는가? 손가락을 구부려 보았다. 다행히도 뚝하는 느낌이 났다. 혹시라도 뼈나 인대가 다쳤으면 평소처럼 소리가 나지 않았을 텐데 하고 일단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곧 너무 아파지기 시작했다. 계속 시큰시큰 못으로 찍는 것 같이 아파서, 나는 다친 오른손을 축 늘어뜨리고 온몸을 덜덜 떨고, 입을 작고 오목하게 벌려 "우후후후! 우후후후후!" 소리를 냈다. 경석이와 진석이도 놀라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불안에 빠진 표정으로 다가와 "상우야, 괜찮니?" 하고 물었다. 나는 계속 추운 사람처럼 으드드 몸을 떨다가, 간신히 "응? 어음~" 하고 대답하였다. 경석이는 그걸 듣고 "그래! 남자가 그 정도 가지고 아파하면 안되지!" 했다.

나는 떨떠름하게 웃으며 "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때 상처 부위에서 한점으로 시작한 핏방울이, 종이 위에 잉크가 떨어지는 것처럼 순식간에 번지는 것이었다. 피는 푹 패인 상처 위에 빨간 호수처럼 뭉실뭉실 차올랐다. 경석이는 놀라면서 "어! 상우 피나네!" 하였다. 나는 '세균이 들어가기 전에 보건실에 가야겠어!' 생각하며 급하게 움직이는데, 멀리서 인호와 민웅이가 다가와 "어? 상우야, 너 괜찮아?", "상우야, 너 안 아파? 빨리 보건실 가!" 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웃으면서 "응, 매우 아파 보건실 가려네~" 하고 노래를 불렀다.

보건실에는 보건 선생님과 치료를 받으러 온 두 명의 어린 학생과, 책상에 앉아 차를 마시는 또 다른 선생님이 계셨다. 차를 마시던 선생님은 내 상처를 보고 "허어어!" 하고 놀라셨다. 하지만, 우리 보건 선생님은, 남자 아이들 놀다가 다치는 끔찍한 모습을 자주 보셔서 그런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신속하게 연고를 바르시고, 보통 밴드와 다른 표면이 매끄럽고 길쭉한 H자 밴드를 다친 내 손가락 위에 착~ 붙여주셨다. 보건실에서 특이한 의료 기구를 많이 보긴 하였지만, 이건 정말 특이한 밴드였다. 그리고 꼭 옛날 서양 장군들이 입고 싸웠던, 금빛 갑옷을 내 가운데 손가락이 입은 것 같았다. 그것은 밴드 속으로 얼핏얼핏 보이는 핏자국이, 그 밴드를 더 갑옷처럼 보이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갑옷을 입은 손가락